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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해당되는 글 149

  1. 2013.07.21 머니볼 (Moneyball)
  2. 2012.12.26 레미제라블
  3. 2011.02.01 메가마인드, 드림웍스 1
  4. 2010.10.19 클릭, 아담 샌들러, 케이트 베킨세일
  5. 2010.08.29 나비, 김민종, 김정은 1
2013. 7. 21. 18:47

머니볼 (Moneyball) 영화2013. 7. 21. 18:47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에이스의 단장 '빌리 빈'의 모델로 만든 영화이다. 시기적으로는 오클랜드가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2002년을 배경으로 삼았다. 영화 속에는 빌리 빈이 단장 보좌역으로 영입한 폴 티포데스타, 아트 하우 감독, 론 워싱턴 코치, 스캇 해티버그, 제레미 지암비, 데이비드 저스티스 등 그 당시 필드안밖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이 투영되어 있다. 폴 티포데스타 본인의 반대로 영화 속에서 그의 실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아트 하우 감독은 영화 속에서 고집스럽고 답답한 감독으로 묘사되어 영화를 보고 나서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실제 빌리빈과의 관계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팀을 떠난 것을 보면 사이가 원만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빌리빈에 대해서.. 그리고 오클랜드 에이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빌리빈은 '출루율'과 '통계'에 기반하여, 야구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기존에 그러한 것을 토대로 전력 분석을 한 사람들이 없진 않았겠지만, 그는 단장으로서 그러한 분석의 결과들을 필드에 풀어놓을만한 권한이 있었다.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졌고, 실제로 그것이 효력을 거두어 오클랜드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또한 빌리 빈이 실천한 철학들을 차용한 보스턴과 같은 팀들이 성공한 것을 보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빌리 빈이 그러한 철학을 필드에 풀어놓을 즈음에 나는 야구를 전력분석의 관점에서 보지 않았고, '판타지리그'를 해서 그런지 선구안을 중요하게 생각하다고 생각만 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팀의 전력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 듯 싶다. 어찌되었던 빌리빈이 가장 초점을 맞추었던 것은 '툴'이 아니라 '스탯'인 것만은 분명하다. '유망주'를 평가할때 모든 팀들이 툴에 초점을 맞출때 빈은 다듬어진 대학 출신 선수들을 선호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오클랜드의 방식이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하나의 모델이 된 지금 그는 어떤 '자신만의 방식'을 새로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일면 다른 팀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듯 하지만,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몇년의 암흑기를 보내고, 팀이 컨덴더로 성장했다.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단장의 역할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단장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여전히 빌리 빈에게는 뼈아프다. 산호세로의 연고지 이전을 골몰하고 있는 요즘이다. 빅마켓과 돈이 주어진다면, 또다른 팀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기는 하다. 연고지 이전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성공을 기원한다. 샌프란시스코가 또다른 방식으로 2번의 우승을 일구어낸 것을 보면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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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2. 12. 26. 01:09

레미제라블 영화2012. 12. 26. 01:09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가 바뀌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신 심신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는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늘상 실수를 하고, 심리적으로도 많은 변화들을 경험하기 때문에 계획했던 일들을 모두 실천에 옮기기가 어렵다. 어느 시점에서든 자신의 마음가짐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계획들을 재검토하는 과정은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물리적이긴 하지만 해가 구분되어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바쁜 한해를 보냈다. 지난해 이 시기를 생각하면 뚜렷한 변화가 있었던 한해이기도 했다. 스스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그 선택에 대해서 더 지켜볼 시기이기도 하다. 치열하게 또 열심히 살자던 다짐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직 며칠이 남아있는만큼 한해의 마무리는 좀 더 미루기로 하자.

레미제라블을 보았고, 꽤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배웠던,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레미제라블은 기구한 운명을 지난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볼까 고민했던 이유도 어린시절의 '명작동화'를 그대로 내 마음 속에 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30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뮤지컬 영화가 취향에 맞았던 것은 아니지만, 시민혁명을 위해서 희생한 젊은이들의 용기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한동안 여운을 남겼다.

무엇이 옮고 그른지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자는 마음가짐에 변화는 없지만, 문득문득 찾아오는 절망감을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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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1. 2. 1. 12:25

메가마인드, 드림웍스 영화2011. 2. 1. 12:25

2011년은 드림웍스가 새해벽두부터 먼저 주사위를 던졌다. 지난해 '드래곤 길들이기'와 '슈퍼배드'를 통해서 입지를 탄탄히 갖춘 드림웍스이기 때문에 올해 '메가마인드', '쿵푸팬더2' 모두 기대작들이다. '메가마인드' 역시 '슈퍼배드'와 마찬가지로 악당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슈퍼배드'에서의 구루는 악당이면서도 어딘지 어수룩하고, 친근하며,인간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캐릭터였는데, 과연 '메가마인드'의 메가마인드는 어떤 인물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러다보니 악당의 정체성도 모호하다. 요즘 아이들도 예전처럼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을 내세워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강요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의 악당이 오늘의 영웅이 되고,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악당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한 시대적인 흐름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 역시 담겨있다.  

영웅 '메트로맨'의 부재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고 마는 메가마인드. 양이 존재하기에 음이 존재하고, 동전의 앞면이 있기에 뒷면이 있으며, '선'이 있는 곳엔 언제나 '악'이 있다. 과학인문학이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는데, 그 책에서 저자는 세상의 원리 중의 하나로 '대칭'을 제시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반으로 포개면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대칭의 원리가 그럴 듯하게 제시되어 있다. 메가마인드의 존재 의미가 그렇듯이 삶은 곧 그러한 대칭을 근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도 사실 어떠한 비교대상을 가지고 있으며, 기준점을 지닌다. 그러한 기준과 비교대상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 또는 '더 나은 것과 더 부족한 것'의 판별을 해낼 수가 없는 셈이다. '기준'은 곧 좌우를 가르는 '대칭점'이 되는 것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불행하다고들 한다. 아니, 목표가 없는 삶은 불행한 것을 넘어 존재 의미가 없다. '넌 목표가 없으니까 살아갈 필요가 없어!'라는 의미가 아니다. 목표가 없는 주체 스스로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항상 고민하면서 반문하고 또 반문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목표를 세우고 또 세우며 생의 의미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삶에 대한 사색을 해주게 하는 또하나의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매트로맨'이다. 매트로맨은 스스로 죽음을 가장하여 '영웅'이기를 포기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음악에 흥미 그리고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이상 '다른 사람들의 영웅'이기를 포기하고, '자기 삶의 주체'이고자 한다. 공동체 속에서 '희생'을 강조하며, 시민사회의 얌전한 '시민'이기를 강요받았던 구시대적인 가치의 종결이라고나 할까.

어렸을때부터 애정 결핍에 시달리며 '악당'이 되어야만 했던 메가마인드는 사랑에 눈을 뜨면서 '영웅'으로 거듭났다. 과연 메가마인드는 '메트로맨'의 전철을 밟게 될까. 아니면 '영웅'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될까. 영화는 끝이 났지만, 메가마인드는 삶은 아직도 현재진형형인 셈이다.

그리고 나의 삶...

메가마인드는 사랑을 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영웅'이 되면서 자아를 찾았다. '악당'으로서 메가마인드는 그저 '메트로맨의 존재' 안에서만 생의 의미를 지니는, 단지 '메트로맨'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메가마인드는 우리에게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가치를 찾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블로그의 많은 글들 속에 나의 지난 생각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중 많은 부분은 '가치'를 찾는 일들이었다. 명백한 해답이 없었고, 유추했던 많은 해답들은 자고 일어나면 그 모습을 달리하곤 했다.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많은 철학가들과 '사색가'들이 같은 고민들을 했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어쩌면 '보편적인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 때문에 정작 '나의 삶'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거 같기도 하다. 

최근엔 매우 바쁘다. 남들보다 여러 시간을 더 살고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겨를도 없다. '나의 삶'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단지 지금의 해답뿐일지도 모른다. 메가마인드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내 삶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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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10. 19. 08:48

클릭, 아담 샌들러, 케이트 베킨세일 영화2010. 10. 19. 08:48

일, 가족 그리고 삶

삶은 참으로 여러 순간순간들로 구성이 된다. 개인에게 있어 행복이라고 하는 '가치'는 다양한 형태로 염원되고 또 이루어진다. 경험과 철학, 가치관에 따라서 개개인에 따라서 다른 형태를 띄고, 한 사람에게서도 시기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소설과 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의 작품들은 '행복'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하면서 여러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다. 영화 '클릭'은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이 경쾌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가정 사이에서 톱니바퀴 다람쥐처럼 살아가는 한 남성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자못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시절에 자신만의 도시를 건설하는 '심시티'라는 게임, 과거 '프린세스 메이커'를 시발점으로 하는 자녀 양육 게임, 나만의 팀을 만들어서 리그를 치르는 'OOTP' 등을 즐겨 했었다. 모두 가상의 세계에서 내 뜻대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조율해가는 게임들이다. 지금도 수많은 형태로 그런 게임들이 가지를 치면서 번지고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가상 현실을 원하는 수요는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영화 '클릭'의 아이디어는 바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한편의 UCC를 만들듯이 자신의 삶을 편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빨리 감기도 하고, 일시정지하기도 하고,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날아가기도 하는 등. 귀찮은 면도와 샤워를 안해도 되고, 잔소리를 피해갈 수도 있으며, 현재를 일시정지해 놓은 상태에서 잠시 과거로의 여행까지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현실을 '가상 현실'로 탈바꿈시켜주는 만능 리모콘을 소유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바램을 기막히게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에서는 삶의 순간순간들의 행복과 감사함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불만에 쌓여서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리모콘을 사용했을 경우 어떤 미래가 닥치는지를 하나의 시나리오로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면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의무에만 충실하려는 수동적이고도 세속적인 삶이 어떤 위험한 미래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휴머니즘'과 '가족애'야말로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도 행복한 가치라는 것이 영화의 최종 메세지다.

딴지를 걸자면, 모든 영화가 마찬가지겠지만 시나리오의 전개상 간과된 부분들이 있다는 점이다. 마치 일확천금으로 횡재한 사람은 모두가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귀결처럼, 리모콘을 소유한 사람은 시간을 낭비할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는 것 같다. 이를테면 리모콘에서 되감기가 된다면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될 것이지만 누구나 생각했을 그런 기능은 없고, 단지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회귀해서 회상하는 것만 가능하다. 더불어 치명적으로 생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기능으로 자동 프로그래밍 기능이 있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기억했다가 훗날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동작시키는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리모콘으로 자신의 삶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100% 사용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리모콘의 결함이 삶을 실패로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인 셈이다.

도박과 스포츠 베팅의 경계

모든 '베팅'은 도박일까. 사실 도박이라는 것을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베팅하는 절대 금액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구분을 지어야 할지, 도박을 즐기는 그룹과 집단을 놓고 따져야 할지. 무엇하나 분명치 못하다. 아무 생각없이 요행만을 믿고 이름도 잘 모르는 코스닥 기업에 투자하는 것과 튼튼해 보이는 말에게 투자하는 '경마 베팅'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답이 없다.

그것을 규정하는 잣대가 개개인에게 허락이 된다면 개인적인 기준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상대적인 투자 금액이다. 여유자본의 일정비율 이상을 넘지 않는 선에서 '베팅'을 한다면 도박보다는 하나의 '놀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투자가 맹목적이냐, 분석적이냐가 일단 중요하다. 투자를 생업으로 삼는 '전문투자자'의 경우 투자금액의 비율이 굉장히 높지만, 맹목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투자의 성격을 띈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는 '도박'과 '투자'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놀이들이 종국에는 '도박'을 변해 큰 화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그러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결국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고, 큰 바램을 갖게 되고, 몰입하다보면 비이성적인 현실인식과 상황 판단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심리 컨트롤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도박'과 '투자'의 경계를 가로짓는 가장 큰 기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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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8. 29. 14:11

나비, 김민종, 김정은 영화2010. 8. 29. 14:11

일주일내내 비가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다. 주말에 집에서 빗소리를 듣고 있을땐 참 운치가 있다. 한 여름 무더워를 날려주는 시원한 가을비의 방문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때묻은 사회 곳곳의 얼룩들을 제거해주는 것도 같다. 비 온 뒤의 청명한 풍경은 또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럼에도 비가 내릴때 외출하는 일은 참으로 불편하다. 

영화 '나비'가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삼청교육대라는 곳의 살벌함일까, 아니면 남녀간의 비극적인 사랑일까, 아니면 권력의 무자비함일까. 아니면 인간 본성의 비열함 내지는 잔인성 같은 것일까. 전체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와 비극적 결말의 결합 때문인지 영화가 후반부에서 왠지 뒤죽박죽 되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몇년 전에 영화를 처음 보았을때는 삼청교육대라는 곳의 비인간적인 모습들과 김정은이 보여주는 음울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초반부의 흐름이 어땠는지를 보고 싶었다. 

시청료 이야기

우연히 책을 읽다가 시청료에 관한 내용을 보았다. 검색을 해보니 요즘 '시청료 인상'에 대한 논란이 있나 보다. 요즘 정부에서 이래저래 공공요금을 인상한다고 하니까 '시청료 인상'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엄연히 전기와 수도요금과 같은 공공요금과 '시청료'는 지금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같은 공공요금은 국가가 공기업을 통해서 사업을 하고, 정부가 요금정책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 사용자인 국민은 일반 다른 요금을 내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하고 납부한다. 통신요금처럼 사용한 만큼 요금 제도에 따라 월별 산정요금을 납부하면 된다. 전기나 물을 사용하지 않겠다면 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시청료 역시 다른 공공요금과 마찬가지로 방송공사법에서 '시청료 징수'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료는 '사용량'에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기본요금을 납부하고 있다.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를 시청하는데 대한 사용료를 내기 때문에 '시청량'을 파악하는게 현재로선 쉽지 않다. 향후 IP TV 체제로 완전히 전환된다면 방송 사업에 대한 큰 변화가 있을 것이지만 현재 체제로서는 그렇다. 문제는 KBS를 시청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TV가 있으면 '시청료'를 납부하는 데 있다. 자의에 따라서 시청을 하고 요금을 내는 부분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즉, TV를 철거해야만 시청료 납부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이야기다.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시청료 징수 대행회사인 한전에 요구해서 시청료 를 고지서에서 빼달라고 하는 고객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경우 그 절차도 번거로울뿐만 아니라 KBS를 전혀 안본다면 모르겠지만, 그 채널만 막아버리지 않는 한 안보려고 마음쓰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불합리하다고 생각을 해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에이, 시청료 올린다고 하면 그냥 안보고 살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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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