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

« 2024/5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10. 7. 4. 16:23

이웃집 남자, 윤제문 영화2010. 7. 4. 16:23

살다보면 무겁게 침잠할 때가 있다. 온 몸의 에너지가 어디론가 모두 달아나 버려, 한 발자욱을 떼는 데도 힘에 겨운 그런 날들. 요즈음 무엇이 옳은 삶인지, 내 삶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들이 머리속을 가득 메우고 있다. 때론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답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오랜만에 '술을 위한 술'을 마셨다. 긍정적인 삶을 위하여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던 시간들과 관대해지려 노력했던 마음들이 술 잔에 녹아 흔적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 괜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든다. 새삼  아버지의 고민과 슬픔이 궁금해져서 눈물이 그렁그렁... 부끄럽게도 펑펑 울고 싶었다. 지난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마음을 가득 채우니, 그저 막막하다. 참 지독하게도 '몹쓸 사람'으로 태어났구나. 하지만 기운내자. 다시 한계단 한계단 밟아서 올라가자. 패배하고 낙오할 순 없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자. 해답을 찾을때까지. 

돈에 혈안이 되어 가정도, 친구도 뒷전인 '이웃집 남자'. 물질만능. 자본이 지배력을 키워가는 이 시대에 '철학'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극빈층의 삶을 다루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세 아이의 아빠가 평소 자신들에게 애정어린 사랑을 베풀어준 목사에게 그 돈을 맡겼다가 돌려받지 못해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신앙심'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돈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둘씩 팔려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하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자 애썼던 그 마음들은 어디로 갔을까. 욕망 앞에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이 참 무섭다. 내 마음의 성도 언젠가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모래성'일까봐 두렵다. 

모두들 자신들의 가치관대로만 살아갈 뿐, 결국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도 맞다. 그 '선택의 자유'의 허용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인간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와 규범에 대해 개인은 얼마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건인지 등등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다양한 선택들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동산업자인 '이웃집 남자' 상수의 삶은 무언가 찝찝하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그의 바둑알 항변 속에 현대인의 고민이 묻어 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에서, 돈이 많으면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돈이 없으면 무시당하고 말기에 '고매한 삶' 따위를 노래할 여유조차 없다고 말한다. 한때는 치기어린 청춘의 시절도 있었고, '사랑'에 마음졸이던 시절도 있었다는 상수의 지친 읊조림은 지친 현대인들의 '독백'이자 '자화상'이기도 하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의 삶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상수의 비정하고 파렴치한 행위들이 마치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자, 삶 본연의 순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는게 당연하고, 토끼는 풀을 뜯어먹는게 당연한 것처럼. 영역을 위해서는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동물들의 무리가 그렇듯이. 그런 상수와 대척점에 있는, 개발 반대를 외치는 교사의 반인륜적인 과거사가 드러날때는 절망스러웠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랄 수 있겠느냐'는 마음으로 마음 속 어딘가에 '똥덩어리'를 품고 있는 우리들은 일면 통쾌함을 느끼는게 맞는걸까. 그렇게 상수를 동정하고 보듬는 마음으로 상수가 되어가는걸까. 

하지만 틀렸다. 상수의 삶이 동정받을 이유가 있을진 몰라도, 그 때문에 더 큰 희생을 치러야하는 우리의 '또다른 이웃'들이 있어 값비싼 동정은 거두어들여야 한다. '자업자득',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다. 상수의 삶도 들여다보면 마찬가지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이라고 하여 생을 넘나드는 차원까지 넓혀서 이야기하지만, 원리는 똑같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기독교에서도 하나의 결과가 있기까지 '여러가지 관계'들이 작용한다고 믿는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주어야 하고,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견고한 '삶의 철학'의 토대 위에 묵묵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모든 삶은 그저 진폭과 주기만 다를뿐 동일한 '공식'에서 파생하는 셈이다. 
 
온라인 고스톱의 허망한 원리(?) 

며칠간 아이폰 고스톱 때문에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마음도 많이 상했다. 도대체가 '시간때우기'에 불과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이버머니 따위를 위해서, 눈은 피로해지고 성격은 지저분해지는 놀이에 빠져있으니 꽤 한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처음엔 그저 재미로 시작을 했으나,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다. 사람들이 이래서 도박에 빠지고, 패가망신을 하나 싶다. 

처음에 좀 잘쳐지는가 싶다가도 결국엔 어김없이 파산을 당하는 것이 몹시 분하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고스톱도 잘하고 못하고가 분명하게 나누어져서, 내가 고스톱을 지지리도 못치니까 매번 파산을 면하지 못하는건지 슬몃 '자격지심(?)'까지 들었다. 무슨 시덥잖은 게임 가지고 '자격지심' 운운하냐고 묻는다면 할말없다. 실제로 시덥잖은 건 사실이니까. 하하.

중요한 일은 곧잘 포기를 하면서도 꼭 이런 일에는 끝까지 매달려보는 법이다. 파산해도 오뚝이처럼 다시 시작해서 지금은 꽤 '자산(?)'을 키웠다. 물론 아직도 큰 거 한방이면 파산을 면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고스톱도 은근 '경제논리'를 닮아 '큰 돈'은 '작은 돈'을 쉽게 잡아먹는다. '자산의 규모'가 가져다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실제 게임에서도 공격적이면서도 느긋한 플레이를 가능케 해준다. 'Go' 한번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가져다주는 상반된 결과를 생각하면 나름 이해가 갈 것이다. 

또한 고스톱에서는 반드시 '뒷패'가 잘 맞아야 한다. 스스로 온라인 고스톱의 '달인'이라고 자칭하는 사촌여동생처럼 '뒷패예상'의 신공을 부리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나 같은 일반 '아마추어'는 그저 행운을 바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게 신기하게도 흐름이라는 게 있다. 한쪽으로 '뒷패운'이 쏠리기 시작하면, 이건 미션, 싹쓸이, 따닥, 폭탄 할 거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맹폭이 가해진다. 상대편은 그저 속수무책이다. 자본이 충분하지 않다면, 이런 피할 길 없는 '암흑기' 시절에 파산하거나 '회복하기 힘든 지경으로' 초토화가 된다. '뒷패'가 잘 맞을때야 룰루랄라지만, 그 반대의 흐름일때는 스스로가 '지지리도 운도 없는 사람'이 되고, 게임에 뭔가 음모가 개입되어 있는 것 같고... 그리 되면 화가 나고 분하고 하늘을 향해 욕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현실감각을 잃지 않아 아이폰을 뽀갠다거나 내던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흐름에 가장 잘 대처하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다. 투자하지 않는 것, 즉 기다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전략 중 하나라고들 한다. '상황 파악'을 못한 채로 무리수를 두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고스톱에서는 이미 '상대편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싶으면 재빨리 그 방을 빠져나오는 게 중요하다. 이미 나의 흐름이 아닌데도 '잃은 돈'을 만회하겠다는 욕심에 그 순간을 놓치기 일쑤다. 상대편의 실수나 우연으로 그런 위기를 극복해 상황이 반전되기도 하지만, 투자는 확률이다. 시덥잖은 고스톱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파악해본 바로는 그렇다. '상황판단', '인내', '결단'이 성공을 부른다. 또다른 경지에 이르면 '새로운 원리'가 보이려나. 하하. 
:
Posted by retriever
2010. 1. 31. 13:43

매트릭스, 키아누 리브스 영화2010. 1. 31. 13:43


포스터의
'SF액션의 새로운 세기창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더구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턱에서 인류의 미래를 가늠하고 경고하는 '메세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였으니 시기도 기가막히다. 과학기술과 IT기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언제나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매트릭스에서 제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있는 스토리도 어찌보면 색다르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래 시대를 예견하는 중에 언급되었던 내용이다. 그 중심 토대에 살을 입히고, 흥미를 추가시킴으로써 하나의 완성된 영화로 재창조를 시킨 셈이다.

10여년전 '영화 속 현실'은 아직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또다른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새롭게 탄생되어 왔다. 환경, 외계인, 모바일 등의 주제들이 새롭게 우리들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여기에 스토리를 덧입히면 또 하나의 새로운 '영화소재'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아바타'라는 특급 영화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아바타의 성공은 단순히 기존의 영화를 답습하는데서 벗어나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하고 그러한 '스토리'에 걸맞는 기술을 끊임없이 모색했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그런 균형잡힌 병행이 필요하다.
:
Posted by retriever
2010. 1. 17. 20:01

[연극] 보고 싶습니다 영화2010. 1. 17. 20:01


재미있게 기분전환한 작품이다. 동네 건달로 나온 두분이 감초 역할을 잘해주신 것 같다.

:
Posted by retriever
2010. 1. 2. 16:12

[뮤지컬] 스페셜레터, 김남호 영화2010. 1. 2. 16:12


먼저 뮤지컬이 시작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김남호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더라는 점이다. 또다른 뮤지컬인 '김종욱 찾기'에서 너무 인상적이었고, '젊음의 행진'에서도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몇번 접해보진 못했지만, 그의 연기에는 늘상 '웃음'이 담겨 있어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전체적으로 개인적인 기대 수준만큼 '뮤지컬'이 웃기진 않았지만, 김남호님의 활약만큼은 이번에도 만족이었다. 남자들의 군생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으나, 남녀간의 사랑 부분에서는 '남자'의 태도와 행동거지가 일면 한심하게 느껴져 답답하기도 했다.
:
Posted by retriever
2009. 12. 25. 18:40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 영화2009. 12. 25. 18:40



'가이아론'이라고 하던가.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예전이는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졌었다.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화같은 발상'으로만 생각했었다. 영화를 본 회사동료가 말하길, 아바타를 보면서 왠지 만화같으면서도 현실같다고. 생각이 메마른 탓인지 나는 여전히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화 '아바타' 속에 담겨진 의미가 사람들 의식 속을 파고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기의 순환이나 생태계와 같은 지구의 오묘한 '순환시스템'을 감안하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대지를, 숨쉬고 있는 이 공기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애니메이션을 즐기던 나로서는 영화 '아바타' 속에서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엿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아바타'의 감독은 부인하고 있지만,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나 '이웃집 토토로',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에서 볼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선구적인 생각들이 영화 '아바타' 속에 담겨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모방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생각이기에 누가 누구를 모방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미 오래전에 앞선 생각을 펼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앞선 시각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단 2편의 영화로 헐리우드 영화사의 '거장'이 된 카메론 감독도 대단하지만, 평소의 아름다운 생각을 꾸준히 '애니메이션'에 담아온 미야자키 감독이 더 정감이 가는 게 사실이다.   
:
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