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스레 하늘을 올려다보니 희미하게나마 작은 별들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속 필름들... 지난해 여름 강원도에서 죽마고우 진우, 경민이와 함께 올려보았던 밤하늘의 별들,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밤하늘을 가득메우고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을만큼 장관이었다. 어렸을 때는 유난히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았던 것일까. 북두칠성을 찾으면서 놀라 환호하고 달에 드리워진 희미한 그림자가 마치 토끼 현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반겼다.
그리고 영화이야기.
분명히 본 기억은 나지만, 아마도 그땐 끝까지 보지 못한 듯 싶다.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대화 형식을 빌어 영화로 탄생시켰다. '이런 사람을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끌어가보면 어떨까?'로 시작했을 작가 혹은 감독의 아이디어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일단 문제제기가 신선했던 만큼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덜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초반엔 주로 '인류의 진화' 측면을 다루었다. 지질학과 생물학에 관련된 분야들과 연관이 되었다. 그리고는 전, 후반부를 가르는 중대한 화제전환으로 '종교'가 등장한다. 여기서부터는 전반부와는 달리 신학과 정신분석(심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된다.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을 읽을때처럼 파격적인 느낌은 없었지만,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우리가 아는 지식과 믿음'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비유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그말인 즉, 과거 역사의 진실은 어느정도 '역사의 과정'에서 왜곡이 뒤따른다는 것을 반증한다. 영화 속에서 거론되었듯이 역사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일라치면 그 빈틈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가지가지의 '스토리'들이 생성된다. 때론 진실을 가장한 허구로, 허구를 가장한 진실로.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는 지금에 와서 그 누구도 잃어버린 역사를 찾을 길이 없는 셈이다. 바로 그 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훌륭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영화이다.
그래서 고대 유물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생물학, 지질학적 가설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우리의 진실'은 휘청거리고 우리들의 교과서는 보다 더 그럴듯한 이야기로 또다시 치장된다. 영화 속 후반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모두가 '믿음'을 잃어버린 채로 허둥거리게 된다. 진실은 과연 저 언덕 너머에 있는걸까?
특정 종교를 겨냥해 '종교에 대한 회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이라는 평들이 많지만, 감독은 '꿈 속에서 진실을 찾아 나서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론 종교 역시 인류 역사의 부분집합일 수 밖에 없다. '남가일몽'인 인생에서 '믿음'을 부여잡는 우리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다. 도무지 논리와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는 어지러운 꿈 속에서 가장 그럴듯한 혹은 가장 스스로를 구속해주는 스토리에 열광하는 인간의 나약함은 주인공의 폭탄 선언에 놀람과 경악을 금치 못한 여교수의 눈물 속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