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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20. 11:44

옥토버 스카이, 제이크 질렌홀 영화2009. 12. 20. 11:44


열정, 가족, 꿈, 희망, 도전, 끈기... 여러 단어들이 떠오른다. '열정'과는 거리가 먼 곳에 서서 겁이 많은 스스로를 대면하게 되었을때, 아직도 당황스럽고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겁이 많은 自我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되, 절대 비겁해져서는 안된다고 다짐하자. 다짐하고 또 다짐해서 떳떳한 삶을 살자. 

더불어 꿈을 꾸고, 열정을 품고 도전하는 사람들, 그리고 불쌍한 이들을 동정할 줄 아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 사리사욕으로 비겁해지지 않은 용감한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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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2. 13. 23:46

The man from earth, 리차드 쉔크만 영화2009. 12. 13. 23:46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스레 하늘을 올려다보니 희미하게나마 작은 별들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속 필름들... 지난해 여름 강원도에서 죽마고우 진우, 경민이와 함께 올려보았던 밤하늘의 별들,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밤하늘을 가득메우고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을만큼 장관이었다. 어렸을 때는 유난히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았던 것일까. 북두칠성을 찾으면서 놀라 환호하고 달에 드리워진 희미한 그림자가 마치 토끼 현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반겼다.
 
그리고 영화이야기. 

분명히 본 기억은 나지만, 아마도 그땐 끝까지 보지 못한 듯 싶다.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대화 형식을 빌어 영화로 탄생시켰다. '이런 사람을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끌어가보면 어떨까?'로 시작했을 작가 혹은 감독의 아이디어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일단 문제제기가 신선했던 만큼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덜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초반엔 주로 '인류의 진화' 측면을 다루었다. 지질학과 생물학에 관련된 분야들과 연관이 되었다. 그리고는 전, 후반부를 가르는 중대한 화제전환으로 '종교'가 등장한다. 여기서부터는 전반부와는 달리 신학과 정신분석(심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된다.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을 읽을때처럼 파격적인 느낌은 없었지만,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우리가 아는 지식과 믿음'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비유가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그말인 즉, 과거 역사의 진실은 어느정도 '역사의 과정'에서 왜곡이 뒤따른다는 것을 반증한다. 영화 속에서 거론되었듯이 역사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일라치면 그 빈틈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가지가지의 '스토리'들이 생성된다. 때론 진실을 가장한 허구로, 허구를 가장한 진실로.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는 지금에 와서 그 누구도 잃어버린 역사를 찾을 길이 없는 셈이다. 바로 그 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훌륭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영화이다.

그래서 고대 유물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생물학, 지질학적 가설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우리의 진실'은 휘청거리고 우리들의 교과서는 보다 더 그럴듯한 이야기로 또다시 치장된다. 영화 속 후반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모두가 '믿음'을 잃어버린 채로 허둥거리게 된다. 진실은 과연 저 언덕 너머에 있는걸까?
 
특정 종교를 겨냥해 '종교에 대한 회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이라는 평들이 많지만, 감독은 '꿈 속에서 진실을 찾아 나서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론 종교 역시 인류 역사의 부분집합일 수 밖에 없다. '남가일몽'인 인생에서 '믿음'을 부여잡는 우리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다. 도무지 논리와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는 어지러운 꿈 속에서 가장 그럴듯한 혹은 가장 스스로를 구속해주는 스토리에 열광하는 인간의 나약함은 주인공의 폭탄 선언에 놀람과 경악을 금치 못한 여교수의 눈물 속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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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2. 13. 00:52

프로포즈, 산드라 블록 영화2009. 12. 13. 00:52


중년의 산드라 블록이 건재를 과시하며, 다시 한번 유쾌한 '로맨틱 코메디'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기발한 발상'이 무엇보다도 호기심을 증폭시킨 작품이다. 극 중 산드라 블록이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 읽는다고 하는 바람에 나 역시 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폭풍의 언덕'을 읽게 되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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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1. 15. 22:38

아비정전 한장면, 장국영, 장만옥 영화2009. 11. 15. 22:38

장만옥 : "뭘 원하는 거죠?"

장국영 : "친구가 되고 싶어. 내 시계를 일 분만 봐 줄 수 없겠어?"

그녀는 일 분 동안 시계를 바라본다.

장국영 :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일 분 동안 함께했어. 난 잊지 않을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일 분을. 이 일 분은 지울 수 없어. 이미 과거가 됐으니."

그는 이 일 분을 잊겠지만 난 그를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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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내쉬의 균형이론'으로 유명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실제 삶을 다룬 영화로, 글레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우'를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작품이다. 본 기억이 있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해 이번 기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얼마의 시간만 흘러도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몹쓸 기억력' 덕분에 영화를 새로 보는 듯해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미있게 보았다. 

뇌쇄적인 배우, 제니퍼 코넬리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 속 제니퍼 코넬리를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 독특한 멋을 지닌 외모에, 굉장히 매력적인 등장이었고, 특히 파티에서의 우아한 맵시는 다른 영화의 여느 헐리우드 여배우에서 느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의 그녀가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7년이라는 세월이 그녀에게서 그런 '아름다운'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제니퍼 코넬리가 매우 아름다웠고, 내쉬와 그녀의 만남이 워낙에 순식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순간 그녀가 내쉬의 '상상속의 인물'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내쉬의 균형이론에 관한 에피소드

타고난 천재성이 있었지만, 대학때 이렇다할 논문을 써내지 못한 내쉬는 우연히 클럽에서 친구들과 즐기다가 훗날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안겨주게 되는, 경제학사의 큰 업적으로 회자되는 '균형이론'의 모티브를 얻게 된다. 개인이 극히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면 공공의 이익이 달성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이론이 그 상황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섯명이 모두 자신을 위해 여자애들 중에서 가장 예쁜 사람한테만 대쉬를 하면 한 사람한테는 이익이지만, 전체로 보자면 큰 이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예쁜 사람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그보다 좀 못한 다른 여자들에게 접근한다면 오히려 최상은 아닐지라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얻는 것과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 그리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각각 어떤 비율로 나누어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만일 가장 예쁜 여자를 만나는 것이 100점, 다른 여자 4명은 각각 20점,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0점이라고 할때, 한 사람만 만나되 예쁜 여자를 만나면 전체는 100점, 예쁜 여자를 빼고 나머지 4명을 각각 만나는 것은 80점,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것은 0점으로, 한명한테 몰아주는 것이 '공동체에도 가장 이득이 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때로 경제학은 '가정하기 나름'이 아닐까, 의아해질때가 있다.  


상상, 현재진행형일까

존 내쉬 박사의 상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일까. 아직도 실존 인물로 알고 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1994년의 노벨상 수상때도 그의 상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은 어떨지 새삼 궁금하게 느껴졌다. 

내쉬가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요양중일때 대학교때 친구가 그 소식을 알고 놀러왔다. 집 앞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는 내쉬에게 다가가 친구가 맞은 편 의자에 앉으려고 하던 찰나에, 내쉬가 한마디 한다.

"의자 위에 토끼가 있잖아."

깜짝 놀란 친구는 의자위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내쉬의 상태를 비로소 실감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 내쉬가 말한다.
 
"농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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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