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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1. 12:25

메가마인드, 드림웍스 영화2011. 2. 1. 12:25

2011년은 드림웍스가 새해벽두부터 먼저 주사위를 던졌다. 지난해 '드래곤 길들이기'와 '슈퍼배드'를 통해서 입지를 탄탄히 갖춘 드림웍스이기 때문에 올해 '메가마인드', '쿵푸팬더2' 모두 기대작들이다. '메가마인드' 역시 '슈퍼배드'와 마찬가지로 악당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슈퍼배드'에서의 구루는 악당이면서도 어딘지 어수룩하고, 친근하며,인간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캐릭터였는데, 과연 '메가마인드'의 메가마인드는 어떤 인물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러다보니 악당의 정체성도 모호하다. 요즘 아이들도 예전처럼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을 내세워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강요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의 악당이 오늘의 영웅이 되고,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악당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한 시대적인 흐름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 역시 담겨있다.  

영웅 '메트로맨'의 부재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잃고 마는 메가마인드. 양이 존재하기에 음이 존재하고, 동전의 앞면이 있기에 뒷면이 있으며, '선'이 있는 곳엔 언제나 '악'이 있다. 과학인문학이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는데, 그 책에서 저자는 세상의 원리 중의 하나로 '대칭'을 제시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반으로 포개면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부터 시작을 해서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대칭의 원리가 그럴 듯하게 제시되어 있다. 메가마인드의 존재 의미가 그렇듯이 삶은 곧 그러한 대칭을 근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도 사실 어떠한 비교대상을 가지고 있으며, 기준점을 지닌다. 그러한 기준과 비교대상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 또는 '더 나은 것과 더 부족한 것'의 판별을 해낼 수가 없는 셈이다. '기준'은 곧 좌우를 가르는 '대칭점'이 되는 것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불행하다고들 한다. 아니, 목표가 없는 삶은 불행한 것을 넘어 존재 의미가 없다. '넌 목표가 없으니까 살아갈 필요가 없어!'라는 의미가 아니다. 목표가 없는 주체 스스로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된다. 항상 고민하면서 반문하고 또 반문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목표를 세우고 또 세우며 생의 의미를 찾아 나서고 있다. 

삶에 대한 사색을 해주게 하는 또하나의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매트로맨'이다. 매트로맨은 스스로 죽음을 가장하여 '영웅'이기를 포기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음악에 흥미 그리고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이상 '다른 사람들의 영웅'이기를 포기하고, '자기 삶의 주체'이고자 한다. 공동체 속에서 '희생'을 강조하며, 시민사회의 얌전한 '시민'이기를 강요받았던 구시대적인 가치의 종결이라고나 할까.

어렸을때부터 애정 결핍에 시달리며 '악당'이 되어야만 했던 메가마인드는 사랑에 눈을 뜨면서 '영웅'으로 거듭났다. 과연 메가마인드는 '메트로맨'의 전철을 밟게 될까. 아니면 '영웅'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될까. 영화는 끝이 났지만, 메가마인드는 삶은 아직도 현재진형형인 셈이다.

그리고 나의 삶...

메가마인드는 사랑을 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영웅'이 되면서 자아를 찾았다. '악당'으로서 메가마인드는 그저 '메트로맨의 존재' 안에서만 생의 의미를 지니는, 단지 '메트로맨'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을 뿐이었다. 메가마인드는 우리에게 '스스로 존재함으로써 가치를 찾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블로그의 많은 글들 속에 나의 지난 생각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중 많은 부분은 '가치'를 찾는 일들이었다. 명백한 해답이 없었고, 유추했던 많은 해답들은 자고 일어나면 그 모습을 달리하곤 했다.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많은 철학가들과 '사색가'들이 같은 고민들을 했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어쩌면 '보편적인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 때문에 정작 '나의 삶'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거 같기도 하다. 

최근엔 매우 바쁘다. 남들보다 여러 시간을 더 살고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겨를도 없다. '나의 삶'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단지 지금의 해답뿐일지도 모른다. 메가마인드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내 삶도 아직 현재진행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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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