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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 30. 10:43

[애니메이션] 모야시몬, 야노 유이치로 애니2009. 1. 30. 10:43

잘 그린 애니메이션. 그림이 깔끔해서 선택했다.
내용은 '균'과 '농학'을 소재로 한 다소 색다른 애니메이션이나,
관심을 가진 분야가 아니라서 아쉽게도 그다지 몰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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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전형적인 일본 TV 애니메이션.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 버르장머리 없는 소녀가 시골생활을 하며, 자연을 벗삼아 '좋은 아이'로 탈바꿈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역시 어린아이들의 성장에는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대전제로 깔고 있다. 일본어 학원에 다닌 역효과인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하나같이 잊어버리고 있다. 여러 캐릭터가 등장을 했고, 역시 애니메이션다운 비현실성, 신비스러운 체험 등등을 소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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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 20. 09:08

[애니메이션] 볼트, 디즈니 애니2009. 1. 20. 09:08

친구녀석이 페니의 모습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픽사에서 또 하나 만들었냐
아니? 이건 디즈니건데..
근데 여자주인공이 인크레더블하고 똑같은데?
어?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네...


그렇다. 만든 사람이 같으니 비슷한 캐릭터가 나올 수 밖에. '볼트'를 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바닥이 그 바닥이다. 픽사 스튜디오에 몸담고 있었던 존 라세터가 디즈니로 옮기면서 볼트가 탄생했다. 고로 디즈니 옷을 입고 나왔지만 본질은 픽사다. 픽사와 디즈니의 오랜 제휴는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결국 합병이라는 종착역을 맞이했고, 픽사의 스티브 잡스는 이제 디즈니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그동안 픽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작품들이 디즈니의 배급망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었다. 디즈니 독자적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들은 번번히 실패를 맛보았다. 과거 여러 동화 작품들을 훌륭하게 애니메이션화시켰던 모습들은 잊혀지고, 스토리와 구성이 빈약해지면서 하락 일로를 걸었다. 그냥 예전작품을 그대로 3D화 했으면 차라리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디즈니 스튜디오가 픽사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두개의 스튜디오에서 좋은 애니메이션들이 계속 탄생할 수 있다면 관객 입장에서는 더없이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의 부활'이라고 한다면 부활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간에 지루한 부분들이 아쉽다는 평이 대체적으로 있지만, 그래도 볼트는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화 초반의 강아지 묘사에서 캐릭터의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흥미를 끄는데 성공했다. 실제 강아지를 보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귀여운 이미지가 잘 전달되었다.
 
2008년은 쿵푸팬더, 월E, 볼트 등 굵직굵직한 애니메이션의 등장으로 한 획을 그은 의미있는 해였던 것 같다. 드림웍스가 픽사를 위협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디즈니는 픽사의 기술을 전수받아 '밝은 미래'를 선보였다. 그래서 2009년과 2010년은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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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 19. 08:57

[애니메이션] 키미키스, 카사이 켄이치 애니2009. 1. 19. 08:57

스토리보다는 작화 때문에 계속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 역시 그 비밀은 감독에 있었다. 허니와 클로버 그리고 노다메 칸타빌레의 카사이 켄이치 감독. '허니와 클로버'에서의 유화풍의 고풍스러운 느낌의 작화는 아니었지만, 노다메 칸타빌레 풍에 가까운 작화를 선보였다. 개인적으로 선명한 인물에 다소 흐릿한 배경은 잘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보통 너무도 아름다운 배경이 도드라지면 인물들이 죽거나 혹은 배경을 방해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배경을 약간 죽임으로써 인물들을 살릴 수 있는 것 같다. 눈이 거의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전형적인 애니메이션의 인물들이지만, '카논 리메이크'의 인물들처럼 거북스럽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작화에는 아주 만족한다.
 
일본의 문화는 굉장히 예의가 바른 문화이다. 어쩌다보니 이치로 같은 선수도 나오기 마련이지만, 기본적으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자기 자신을 많이 낮추어서 어떨때는 너무 자신감이 떨어져 보이거나 바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초반에 몇 번 줄곧 주인공들이 '나라도 괜찮다면...'이라고 수줍게 이야기할때,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그런 분위기에 전염되는거 아닌지 걱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나다보면 연극부를 이끄는 남학생과 후타미라는 여학생처럼 자신만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다소 안하무인격인 등장인물도 존재한다. 세월이 흐르고, 문화의 세계적인 교류 및 융합 때문에 일본의 문화도 예전과는 많이 다른 솔직하고 개성있는 분위기의 문화로 많이 탈바꿈하리라 여겨진다.

 
극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대충 윤곽이 잡힌 것을 보면, 카이의 마음을 이리저리 뒤집고 흔들어버린 마오는 카이를 버리고 코이치에게 올인하게 된다. 물론 내 예상으로 코이치는 역경과 고난의 과정을 많이 겪겠지만 결국엔 마오 누님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코이치의 단짝 아이하라는 후타미에게 기습 키스를 한번 당한 뒤로 후타미의 노예가 된다. 찌질스러움을 계속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후타미의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후타미와 가까워지고 후티미의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정통이지만,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보면 이 녀석 역시 코이치처럼 마오 누님에게 끌려가게 되는걸까. 그리고 여자에 관심없는 듯 하다가 마오에게 일격을 맞고 정신못차리고 주저앉아버린 카이까지. 카이같은 부류들은 마오같은 부류들을 정말 조심해야 된다. 카이의 입장에서 보면 마오가 충분한 관심을 자신에게 갖고 있다고 여기고, 자신 역시 그런 분위기에 충분히 젖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뒤통수를 맞는 것이거든. 마오는 그런 갑작스러운 전개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극의 전개가 너무도 임팩트가 없긴 하지만 여유를 갖고 본다면 무난한 것 같다. 각자 자신의 사랑을 꿈꾸고,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으니까. 개구리 인형을 들고 나오는 2명의 소녀들이 그렇지 않아도 다소 유치스러운 면을 안고 있는 극의 전개에 버터를 바르고 있긴 하다. 깔끔한 작화를 선보인 카사이 켄이치 감독과의 만남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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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 14. 09:19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 애니2009. 1. 14. 09:19

평점이 굉장히 높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실사체에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지나친 비현실성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장점은 무엇보다 '세상밖으로'에 있다.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에 열광하는 애니메이션 애청자로서 금속의 로봇에게 감정을 부여한 것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동물이든 '아이언 자이언트'에서의 로봇이든 언제나 의인화된 캐릭터는 어린 아이의 눈에 비추어진다. 어른들은 볼 수 없는, 산타 할아버지가 세상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어린아이의 순수성과 때묻지 않은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린아이의 시각을 이해하고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애니메이션을 이해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로봇, 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애니메이션은 '최종병기 그녀'였다. 아이언 자이언트처럼 '최종 병기 그녀'에서의 그녀는 감정을 가진 금속인간이다. 오히려 인간이 로봇이 된건지, 로봇이 인간이 된건지 작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오묘함을 담고 있다. 사실 무생물체에 생명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늘상 있어 왔다. 이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도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인류애'를 넘어서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담겨 있다.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비애'와 맞닿아 있다. 감정을 가진 로봇이나 백조의 무리에 섞여 있는 미운 오리 새끼, 가위손과 같이 불완전한 신체를 가진 사람, 고독한 천재... 모두가 마찬가지다. 평범하지 못함으로 인해 공동체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또 배격된다. 그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정상적인 비애를 이해하는 몇 안되는 사람만이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지만 대부분 어린아이들이거나 힘없는 망상가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한없이 착한 심성을 갖는 비정상적인 캐릭터들은 영화의 재미를 위해 도저히 해피엔딩으로 결론지을 수 없는 시나리오의 희생물이 되어 씁쓸히 생을 마감하거나 조용히 퇴장한다. 애써 해피엔딩으로 결론지어 공상스러운 내용을 더욱 더 공상스럽게 마무리짓는 작품들도 있는데 누가 뭐래도 '비애'는 언제나 '슬픈 결말'과 맞닿아 있다. 아이언 자이언트 역시 슬픈 결말로 마무리를 짓지만, '아이언 자이언트'의 속편을 연상시킬만큼 기발하게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남겨놓는 센스를 발휘했다.

반대로 멀쩡한 사람으로 태어나 로봇이 되고 싶어하는 캐릭터도 있다. 너무도 유명한 작품 '은하철도 999'에서의 철이가 그렇다. 물론 여정 중에 인간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되어 결국은 그 마음을 다잡는다. 감정을 갖는 로봇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굉장한 고통이나 슬픔의 경험을 지난 사람들에게, 또 그러한 어두운 터널을 건너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진정 인간에게 부여해준 신의 축복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로봇으로서 '감정'을 갖는 고통과 인간으로서 고통과 슬픔으로 로봇이 되고 싶어하는 것.. 그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중간 단계이 있는 존재가 바로 살아있는 생물들이다. 이 존재들에게 의인화를 시키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감정'을 갖고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강아지에게서 애정을 느끼고, 측은지심을 갖는 것 역시 '아이언 자이언트' 영화 속의 주인공 어린아이와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 억지스럽더라도 감정을 갖을 것으로 판단되는 그 모든 것들과 교감을 할 수 있다. 왠지 영화의 메세지가 법정 스님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라' 그리고 시인 윤동주의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너무 엉뚱한 오버일까. 여튼 내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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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