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의 나날, 코바야시 츠네오 애니2006. 7. 17. 18:22
미돌이의 정체는 바로 '녹색'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울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몰입하지 못한 탓인지 슬프다는 느낌도 없이 그저 그렇게 영화가 끝이 났다. 감정이 메마른 탓은 아닐테고... 아마 늘 그렇듯이, 보기 전에 이미 슬프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자리잡아, 영화를 보면서 색다른 감정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탓이었으리라 싶다..
시종일관 차분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본 애니라 하면 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만 접해보곤 하는 나로선, 색다른 컬러의 애니였지만, 어찌보면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과 본능에 어필하는 전형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반딧불의 묘의 감독인 디카하다 이다오는 자신의 작품을 하야오의 작품과 차별화시키며, 미야자키는 천재이고 자신은 현실주의자라고 했다. 이 작품 '반딧불의 묘'에서 일본의 피해의식이 드러나 있긴 하지만,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그렇듯이, 역시 평화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그에게서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애니의 시작인 "소화(昭和) 28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의 첫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짐을 지운다. 별개의 생각이나 문득 전쟁을 생각하니, 인간의 목숨에 경중을 가르고, 그 생명의 가치가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이 다르다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씁쓸하다.
이 애니메이션은 소설 [반딧불의 묘지]를 원작으로 삼았다고 한다. 원작자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나는 '적어도 소설 『반딧불의 묘지(火華るの墓)』에 나오는 오빠처럼만 동생을 귀여워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며, 지금도 그 무참하게 뼈와 가죽만 남은 모습을 떠올리면 괴로운 감정에 사무쳐, 그 안타까움을 소설 속의 세타(靑太)에게 집어넣었다. 나는 그처럼 동생에게 상냥하지 못했다."
"나를 규정한다면, '폐허 뒷골목 도망파(燒跡闇市逃亡派)'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 지 모른다. 공습을 받아 페허와 혼란 속에서 육친을 잃고, 나 혼자만 살아 남았다. 그런 꺼림칙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결국 소년원에 들어갔고, 배고픔과 추위로 차례차례 죽어가는 소년들 틈에서 마치 동화 속의 주인공 같은 행운을 만나, 그곳에서 벗어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왔다. 자신에게 응석부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역시 꺼림칙하다. 나는 언제나 도망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칭 '현실주의자' 디카하다 이다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상주의자는 이상이 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미야자키도 언제나 괴로운 얘기만 하지 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