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 평소 찾아서 즐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자주 보는 탓에 종종 보게 된다. 주로 결혼한 부부들의 갈등을 많이 그리는데, 그러다보니 불륜 이야기들이 많고 종종 폐륜에 가까운 스토리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하면 왠지 기호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또는 즐겨보다가 생각이 이상해진다고 경고성 발언을 듣기도 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기도 했다. 좋은 이야기들보다 나쁜 이야기들이 많은데 굳이 볼 필요가 무어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즘 생각해보면, 그것이 나쁜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나에게 있어서는 아직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공감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 시간이 흐르면서 내 생각도 많이 변하고 있어,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하면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가 되기 쉽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의 허구성과 과장에 대해 충분히 감안하고, 경계심을 갖는다면 나쁠 건 없다고 본다. 드라마나 영화 역시 보편적인 사실보다는 특수한 상황 설정 하에 스토리가 나온다. 어쨌든 그럴듯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은 셈이니까.
그 중 어제 본 한편을 나름 재미있게 잘 봤다. 하마터면 거의 울 뻔 했다. 동생하고 엄마랑 같이 보는데 우세스러울뻔 했지ㅋ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구성했다고 하니 다소 허구로 포장하고 과장이 있다고 해도 시사하는 바가 큰 내용인 것 같다. 과거엔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분들도 왠지 '나에게도 그런 일이?'라고 미묘한 심정적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너무 초점이 그 쪽으로 가 있어서 그런가ㅋ
인물별로 보고자 한다. 아내를 무시하고, 밖으로 나돌지만 결국엔 아내를 택하게 되는 남편이 있고, 가족에게 헌신하지만 하늘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아내가 있다. 그리고 주변인물로 며느리와 딸처럼 관계를 유지했던 남편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그 외 딸과 남편의 여동생이 등장하지만 별 의미있는 것들은 없고, 다른 동네사람들은 그냥 시간때우기 및 흥미요소 돋구기 정도의 활약을 했다.
수학이나 과학보다 세상사는 일이 힘든 이유는 풀이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다른 이에게는 나쁜 일도 되고, 설령 나쁜 짓이라고 판단이 된다고 해도 또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삶의 방향을 설정한 뒤 무엇이 가장 나의 삶의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그것이 전부인 것 같다.
사랑과 전쟁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편들은 사실 집안일만 하는, 주부인 아내를 띄엄띄엄 본다. 이 드라마는 전형적으로 바깥사람 남편과 안사람 부인의 관계를 다루었다. 고아로 태어나 가진 것 없이 시집온 아내. 결혼할 당시에는 그런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최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사랑의 유통기한이 끝나고 결혼에 익숙해지자 남편은 아내를 등한시하고 바람을 피우며, 걸핏하면 아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망각하고,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 아마도 아내에게 별일이 없었다면 계속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해서 온몸과 마음으로 헌신하는 아내. 먹을 거 안먹고 입을 거 안 입으면서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전형적인 주부다. 희생하는 부모, 희생하는 아내... 이런 말들 이제 우리 사회에서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희생'이라는 것, 물론 때론 거룩한 일이고, 값지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희생'이라는 가치관을 심어 우리의 부모들과 아내되는 분들을 궁지에 몰아서는 안된다. 물론 자발적으로 그러고 싶은 것을 어찌하겠는가, 라고 반문하겠지만 공동체에서 형성하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는 대학학비나 결혼비용까지 부모가 압박감을 가지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비용을 나몰라라 하는 부모는 심적 고통을 느끼고, 사회에서 바람직한 부모상으로 봐주지도 않는다. 엄마, 그리고 아내들이여 이제 그만.
흔히 나누는 말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남녀를 굳이 구분지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것 같고, 인간 관계라는 것은 하기 나름이다. 그것은 부모 자식지간, 부부지간, 사제지간 할거없어 모든 관계에 거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나온다. 다소 계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문제도 공부나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희생보다는 존경받는 부모, 사랑받는 남편, 아내가 되는 방법은 서로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 방법이야 그 상황과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시간을 많이 할애할수록 그 길이 쉽게 보일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내는 그런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시어머니의 태도에 대해서는 비난할 생각이 없다. 먼저 환자가 되어버린 며느리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요양원에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내용에서도 나왔지만, 굳은 의지와 마음가짐만으로 치매에 걸린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은 고역이다. 서로를 위해서도 그게 바람직할 수 있다. 문제는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인데, 이 부분 역시 당사자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소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95%가 이기적, 5%만이 이타적이라고 했던가. 무엇이 서로에게 가장 바람직한 길인지 당사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평생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사는 것, 스트레스 받으면서 억지로 참고 지내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선택. 아내의 소중함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아내를 지켜려는 노력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책임감이 동반되었겠지만, 그것보다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아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옆에서 같이 보던 엄마도 남편의 그런 태도를 칭찬했다.
삶을 살면서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일 등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인생을 두고 살얼음판을 걷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또 지나온 시간이 괜찮았다고 미래에도 그럴 보장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부분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한계, 그 일원으로서의 무기력감이 자주 나에게 인사를 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