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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7. 21:04

[드라마] 하얀 거탑, 김명민 방송2009. 9. 27. 21:04

연기자 김명민을 '명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품드라마'이다. 한번쯤은 볼 기회가 있겠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었고, 한번 접했을 때도 초반부에서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연기를 '연기'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면도 다소 있었다. 김명민이 인간적으로 어떤 면모를 지닌 사람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미디어에 비추어진 '연기자' 김명민에게 호감을 느끼다 보면, 설령 그가 악역을 맡았다고 할지라도 그의 '성공'을 기원하게 되는 '도덕적 불감증(?)'에 시달리게 된다. 이건 악역을 맡은 연예인이 간혹 길거리에서 봉변을 당하는 사건의 가해자로서 내가 '고위험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위험스러운 발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물론 내 입장에서 항변하자면, '정서적 공감'을 갖게 되는 대상은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의 연기자'라는 것이다. 김명민이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프로 정신을 갖추었고, 비호감을 가질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기 때문에 그의 '출연 드라마'와 '그의 연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김명민이 연기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얀 거탑'의 장준혁이라는 인물의 여러 부정적인 모습까지 포용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진다면 곤란하겠지만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닌 연기자 실제의 인간적인 면모, 올바른 생각 등이 시청자의 '작품 선택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는 보편적인 가치들이 사회의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와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관객으로서의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들은 '좋아하는 배우(적어도 부정적이지 않은)와 스토리, 코드', 이렇게 삼위일체가 되는 것들이다.
 
드라마의 전반부는 대학병원 외과 과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를 다루었다. '善'의 역할을 맡은 최도영이라는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의사는 스토리 전개에서 다소 중심에 서질 못했고, 이주완 과장 편과 장준혁 편으로 갈리어 암투가 전개되었다. 공명심이 있고, 욕심이 많다는 이유로 장준혁은 여러 동료들에게 인간적으로 외면을 받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위해서 노력했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추었다. 암투는 '천사'와 '악마'의 다툼이 아닌 권력의 냄새를 맡은 하애애나들만이 득실거리는 진흙탕에 불과했다. 이주완 과장은 퇴임을 앞두고 장준혁 부교수와 의견충돌이 있고, 또한 퇴임 후까지 고려하다 보니 장준혁이 아닌 다른 인물을 후임자로 물색하게 된다. 욕심이 많고, 공명심이 있다고 하나 장준혁에게는 다소 가혹하다는 판단이 되었다. 전반부 과장 선거때까지는 줄곧 '드라마 속 장준혁'의 편에 서서 흥미롭게 보았다. 

과장된 후 장준혁의 모습은 많이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힘들게 얻은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야욕만이 앞섰다. 한번 권력의 '먹이사슬' 안에 발을 들이게 된 이상 도망갈 길도 막연했다. 단지 최고가 되고 싶고, 그럼으로써 인정받고 싶었던 '소박(?)'한 마음이 '권력의 속성'과 맞물려 담대한 야심으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환자 사망 사건에 연루되면서 장준혁은 비열하면서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사실 재판과 관련된 후반부는 안보고 대부분 지나쳤다. 장준혁이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굳이 20편까지 끌고가야 할 스토리로 생각되지도 않았다. 

빈틈없이 치열하게 살고자 했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과욕을 부리면서까지 억울했던 지난날 '가난의 한'을 풀어보고자 했던 장준혁의 삶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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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16. 00:13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방송2009. 9. 16. 00:13

극본 '노희경'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그 배경에는 '굿바이 솔로'라는 그녀의 또다른 드라마가 있었고,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시가 있었다. 그 둘을 제외하면 사실 노희경이라는 작가가 어떤 글을 쓰는지는 잘 모른다. 일상에서의 가벼운 일탈이 가져다주는 상쾌함이랄까, 다소 자유분방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과 상황들에서 뿜어져나오는 매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굿바이 솔로'와 '그들이 사는 세상'은 비슷한 면이 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의 '이서우' 작가는 노희경 본인을 투영시켜 놓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드라마의 장면은 김민철 국장이 배우 윤영의 집 앞에서 15년동안 마음에 간직했던 자신의 사랑과 미련을 쿨하게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그 말을 하기까지의 머뭇거림과 그 말들을 배열하고 정리하는데 들였을 정성과 고민 등등이 그 담담한 어투 안에 숨겨져 있을테고, 승낙을 받고 나서 어린아이처럼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은 그의 나이와 묘하게 중첩이 되면서 감동이 있었다.

흔히들 마음을 비우면 얻는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결국 사랑을 버려야 사랑을 얻는다는 말도 성립하는게 아닐까. 김민철 국장 역시 어느정도 자신의 사랑을 버림으로써 사랑을 얻었다. 고집스러운 사랑은 자기자신뿐만이 아니라 상대방도 힘들게 한다. 사랑을 하면서 사람들이 당연하게 마주치는 것은 바로 '룰'이다. 보편적인 사회적인 합의에 그 토대를 두고 있겠지만, '룰'은 많을수록 개인을 속박한다. 사람의 감정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제멋대로이고, 그 감정의 범위가 대양처럼 넓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룰'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극중 정지오는 그 '고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헤어지고 다시 만났지만, 왜 헤어졌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자신만의 '룰'에 충실했다고나 할까. 어찌보면 영문도 모른채 주준영은 정지오에게서 큰 상처를 받았지만,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려 스스로를 추스리지 못하고 다시 정지오의 품으로 갔다. 비정한 사랑의 '먹이 사슬'이다. 주준영은 사랑 앞에선 나약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오히려 자기 주장이 과도한 면이 보였다. 상대가 남자면 '여자라는 이유로', 상대가 선배이면 '후배라는 이유로', 상대가 배우이면 '감독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을까봐 초조해한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엄밀히 말하면 '겁이 많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거창하게 정신분석학을 들먹이며 주준영의 가정사까지 파고들 필요는 없을테고.
 
모두가 자신만의 상처를 품고, 때론 고집스럽고 때론 물렁물렁하게 어울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라는 이유로 때론 가식적이기도 하고, '괴리'가 느껴지는 면도 있지만, 인간적이어서 좋다. 아무리 입에 뾰족한 침을 물고 있어도, 결국은 모두가 '인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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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8. 17. 17:31

결혼 못하는 남자, 지진희, 엄정화 방송2009. 8. 17. 17:31

초식남. 요즘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다. 초식남이 늘어나고 있고, 인기가 많다고 한다. 연애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밑도 끝도 없는 '자기애'를 발휘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는데 주저함이 없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여성 컬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명명했다고 한다. 과거 남자다움을 상징하는 '육식'과 대비되는 단어로써 '초식동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초식남과 짝지을 만한, 여성에게 명명해줄 수 있는 말로는 '건어물녀'가 있다고 한다. 사회에서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인정받으나, 정작 그 외의 시간에는 집에서 맥주나 마시며 쥐포, 오징어를 뜯는다는 의미이다. 

초식남과 건어물녀는 결코 갑작스럽게 유행처럼 등장한 단어는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고, 하나의 문화기이기도 하다. 이제 기술문명에서 우리의 뒤를 밟고 있는 여러 국가들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겪을 것이다. 앞세대와의 가치관 구분을 분명히 하면서, 똑같은 책임을 도맡음으로써 앞세대의 힘겨운 삶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도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기 자신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사회적 트렌드와도 결부된다. 

비록 일본의 드라마를 그대로 차용해오긴 했지만,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의 지진희는 결코 인기도 없고, 무능력한 찌질이가 아니다. 누가 봐도 번듯한 직업과 허우대, 때론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다른 사람의 어려움 앞에서 쩔쩔매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고, 잘 어울리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만큼은 그런 사람과 잘 어울릴 수 있고, 또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성격 장애'만이 그의 유일한 단점이지, 그것만 고쳐진다면 '세상에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된다. 그래서 초식남 지진희는 인기가 많다. 직업도 변변치 않고 능력도 없는 녀석들이 아무리 좋다고 들이대면 뭐하나, 어디 내놓기도 초식남은 번듯하니 마음에 든다. 워낙에 이성에 관심이 없는 축이라 한눈 팔 염려도 없고, 그럴듯한 거래인 셈이다. 

한번 언급한 적이 있듯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역시 초식남의 한 단편이다. 자신의 관심사에만 열중을 하느라 다른 사람들과의 인관관계는 뒷전이다. 차이가 있다면, 강마에는 다소 권위적이면서 카리스마가 있고 반듯하다. 반면 지진희는 자유분방하며 무언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어리숙한 면이 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하고, 실제로 그만큼 인정을 받는다. 비인간적이며, '성격 장애'라고 비난들을 해대지만, 초식남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받으면 거절하기 어렵다. 그것이 초식남의 매력이기도 하다. 

아침에 어떤 잡지에서 '초식남'과 '육식남'을 비교하며 뭐든지 극단으로 치우치면 좋지 않으니 '잡식남'이 되라고 충고했다. 두 부류의 특성을 잘 비교해 놓아서 흥미로웠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자신의 계획에 철저하게 생활하고자 하는 초식남과 다소 대충대충이면서 극한의 융통성을 보여주는 육식남. 적절히 중용의 묘를 발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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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아마도 오랜시간동안 양동근은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일수 밖에 없다. 아마 지금 상태로라면 평생 그럴 것 같다. 그만큼 강인한 인상과 여운을 남긴 드라마의 주인공은 그 캐릭터 안에서 계속 숨쉬고 있다. 김명민 역시 '강마에'라는 이름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하얀 거탑'에서의 김명민 역시 대단했다고들 하는데,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운 때문에 당분간 보다 중단한 '하얀 거탑'을 다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이번에 다시 보았다.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드라마의 초반 에피소드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우연히 2-3편을 훓어봤는데, 지난번에 다 보지 못한 부분까지 마저 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드라마에도 더 공감하고, 강마에라는 캐릭터에도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긴 했으나, 시종일관 너무하다 싶을만큼 냉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고, 인색한 강마에였다. 음악에 자신의 모든 것을 퍼부었고, 몰두하면서 오로지 실력만큼은 최고이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따뜻한 온기가 그립다는 것을 스스로도 깨닫지만, 결국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키고 싶어한다.

요즘 즐겨보고 있는 또하나의 드라마인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의 조재희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사이에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40살의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했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남일에는 별 관심이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데 인색하다. 두 드라마 모두 따뜻한 인간애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강마에가 이미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여러 감정을 두루 거친 후 다듬어진 인격이라면, 조재희는 '자연인' 그 자체다. 강마에는 억지로 사람들을 밀어내는 반면, 조재희는 밀어내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강마에를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만큼 차갑지만, 조재희는 따뜻한 마음이 들 정도로 순수하다. 전자가 사랑을 되찾는 과정이라면, 후자는 깨닫는 과정을 그린 셈이다.
 
강마에는 말한다. 외로움 그까짓것 조금만 견디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부대끼고 희망을 가지게 되면, 또 실망하고 괴롭고 번거로워진다고. 강마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털어놓으면서 독백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의 삶과 가치관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장면으로, 그 마음에 깊은 공감을 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강마에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 자신이 행복해하는지 가늠하기는 어렵겠지만, 자신의 인생을 주위에 구애됨이 없이 스스로 개척해나간다는 사실이다. 강마에가 지킬 수 있는 꼿꼿한 소신은 자신의 역량과 삶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가 세상사에 초연해질 수 있는 것은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주위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느닷없이 백제의 '계백 장군'이 떠오른다.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좋은 드라마를 보았다. 흥미로운 캐릭터와 소소한 일상에서 찾아오는 웃음들도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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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7. 6. 01:09

[드라마] 내조의 여왕, 김남주, 오지호 방송2009. 7. 6. 01:09

내조의 여왕. 처음 제목을 접했을때 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왠지 '내조'라는 단어는 이제 구시대의 유산 같은 느낌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만큼 스토리가 진지해질 개연성은 그만큼 적었고, 다소의 과장과 생뚱맞음, 코믹스러운 요소 등이 잘 버무러져 흥미로운 작품을 탄생시켰다.


나 역시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인기가 많은 드라마였다. 수술의 흔적인지 확실치 않으나 약간 어색한 모습으로 컴백한 김남주는 맡은 배역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밝은 캐릭터여서 마음에 들었고, 무식하지만 가벼워 보이기보다는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그 드라마속의 캐릭터로 '대한민국 아줌마' 역할을 패러디한 광고에도 출연하는데, 30초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을 보면서도 반가움이 묻어나왔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번쩍 정신을 차리면서 무조건 '3번, 3번!'하고 외치는 광고의 한 장면에 정감이 간다.
 
내조도 내조지만, 오지호-김남주 커플을 축으로 한 세 쌍의 커플이 전체적인 스토리의 핵심이 된다. 극중 한준혁 부장은 젊었을때 이혜영에게 거의 결혼사기(?)를 당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격분하지만, 결국엔 함께 지내온 시간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 연유와 결과야 어찌되었든, 실제라고 가정한다면 그 괴로웠을 심정이 이해가 간다. 어느 중요한 순간부터 삶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면, 살면서 순간순간 그 갈림길에 다시 서보기 마련이다. 그러한 미련과 노력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를 실감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며, 한평생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은소현-허태준 커플의 경우 처음엔 은소현이 처한 입장과 처지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관계를 억지로 이어붙이려는 시청자의 바램은 다소 성급했다. 어찌되었던 질곡의 시간들을 벗어던지고 각자의 자유를 찾은 두 사람은 보기 좋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은소현-온달수, 천지애-허태준으로 커플화되기를 바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매칭은 마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이론에 가장 근접한 듯 느껴지기도 하나, 경우야 어찌되었든 '스와핑'이라고 하는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구조와 연결됨으로써 작가 역시 무모한 시도를 벌이지 않았다. 결론내기도 쉽지가 않고, 여러모로 무난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 편에는 유재석과 박명수를 등장시킴으로써 '지금까지 본 드라마는 현실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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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