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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해당되는 글 171

  1. 2010.01.11 '용산참사'에 대해...
  2. 2009.12.11 짧은 고민에서 풀려난 홀가분함 2
  3. 2009.09.22 바르게 살아가기
  4. 2009.09.18 가을이 오다
  5. 2009.09.07 평범하게 살고픈 번민
2010. 1. 11. 09:17

'용산참사'에 대해... 일상2010. 1. 11. 09:17

보상 합의가 끝이 나서 피해자니 가해자니 논할 필요가 없다?
- 보상금 합의해서 받고 끝났으면 되었지, 전철련을 왜 끌어들이느냐?
쌍방과실. 열악한 환경이 범법을 용인하는 건 아니다. (악법도 법이다)

저 사태의 본질은 '권리금 분쟁'인데,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권리금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그 난리를 친 것이 과연 옹호될 만한 일인가 싶네요.
권리금 분쟁 -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권리금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고 난리치는 것, 허용안됨.

세든 사람은 '약자의 권리' 자체가 없다.

그 무엇보다도 자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지켜야하는 것이 최우선 의무인 국가가 앞장섰고
그 결과로 자의던 타의던간에 인명이 희생이 됬다면 그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평당 2천원을 보상해도 보상은 된거겠죠.

말장난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말자구요.

법이 권리구제, 기존 시세나 권리금 구조등 현실반영을 제대로 못해온 고질적인 문제 + 법치주의 훼손
의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어딜봐서 돈좀 더받자고 뗑깡부리다 생긴 쌍방과실이라는건지... 납득이 안갑니다.

뭐 해결책이라도 제시를 하고 몰든가 해야지 구석으로 닭 몰듯이 몰아놓고는 몰린 닭들이 쪼울 태세를 갖추니까
공평하시게도 풀파워대 풀파워로 맞짱뜬거죠 그냥.

+) 우리나라의 '행정'이라는 개념과 '공익'이라는 개념의 함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봅니다.
-> 용산참사는 건설업자들과의 개발이익 분배의 형평성 문제가 아님.

 
'용산참사'라고 불리워지는 지난해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서 내가 즐겨가는 사이트에서 사람들의 여러 의견들을 모아 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낮 '구경꾼'에 불과한 나로서는 별다른 의견도 제시하지 못한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들은 참 다양하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무엇이 옳은 것일까...   

모두 함께 잘 살자고 입을 모아 외치지만 우리 사회의 작은 '단면'만 보아도 그런 꾸밈없는 기대는 '이상'에 불과한게 아니었을까, 하는 회의가 들때가 있다. 사람 위에 '법'이 있고, 사람 위에 '돈'이 있는 각박하고 삭막한 '삶의 현장'에서 치이고 대접받지 못하는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때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더불어 대접하지도, 대접받지도 못하는, 사회의 이방인처럼 남아지내는 '무기력'에 깊이 절망하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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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2. 11. 20:20

짧은 고민에서 풀려난 홀가분함 일상2009. 12. 11. 20:20

*
'알송'을 플레이시키니 처음 흘러나오는 노래가 하림이 부른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이다. 겨울에 들으면 마음 시리면서도 왠지 포근한 느낌이 드는 노래이다. 한때의 힘든 시간들을 겪었을 테지만, 그 아픔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되돌아보면서 지난 감정의 '부질없음'과 미래의 '축복'을 빌고 있다.
 
가끔 서운하니, 예전 그 마음 사라졌단게 예전 뜨겁던 약속 버린게 무색해진데도 자연스런 일이야

솜처럼 허약해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우리들의 젊은 마음은 세월을 넘고 넘으면서 바위처럼 단단해져 고집스러워질 것을 안다. 스스로 마음을 부여잡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슬픈 외침을 토해내던 시절들의 아픈 상흔과 쓰라린 기억 때문이리라. 경계하고 또 경계하다보니 어느덧 둥글둥글해져 어떤 풍파해도 끄덕하지 않는 볼품없는 바위가 될지도. 

** 
나의 삶과 미래에 대해서 여러 작은 고민들을 늘어놓아 보는 요즘이다. 그러다보니 저녁을 먹으면서 가볍게 들이키는 반주에도 기분이 알쏭달쏭해지는 게 묘한 구석이 있다. 큰 뜻을 품지 않으면 지금의 '하루살이' 인생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이제나마 '빈틈없이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럽게 해본다. 

인사이동과 관련해서 한번더 고민할 계기가 생겨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다소 어지러운 심사가 있었다.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마음을 가두는 족쇄에서 풀려난 홀가분함이 뒤따랐다. 

***
다음 문구는 어디에서 흔히 볼 수 있을까?

'한 발만 가까이 다가와 주십시요'

땡! 물론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남자화장실이다. 일주일동안 위탁교육을 받느라 강남으로 출퇴근을 했다. 문구를 접하고선 갑자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발만 더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문구대로 왼발만 더 가까이 내밀어 약 15도의 방향을 취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어 머리를 쳤다. 혼자였기에 망정이지 누군가가 내 행동이나 마음을 읽었더라면 그런 망신이 또 없었을 것이다. 손을 씻고 있자니 실소가 터져나왔다. 엉뚱한 녀석--;

****
어느덧 '본삼국지'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권 남짓만 더 읽으면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다. 삼국지도 삼국지지만 새롭게 책을 살 수 있고, 읽을 수 있어 기대가 된다. 주말에 삼국지를 완독하게 되면 아쉬운대로 집에서 읽을 책 하나를 물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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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22. 15:08

바르게 살아가기 일상2009. 9. 22. 15:08

인관이가 알려준 적이 있는 김광균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 시의 제목을 주고받으며 '패배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다보면 종종 '패배주의'에 젖어 있을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 무기력한 '패배주의'가 두텁게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 '희망'을 논할 이유도 없었다. '부질없음'과 '허무'의 늪에 조금씩 빠져들어가다보면, 자기 연민의 소용돌이와 만나게 된다. 내가 옳고, 세상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자만에서 오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판되었다. 자서전, 에세이 등을 비롯한 다소 개인적인 생각이나 신변에 관한 책들은 읽지 않는 편이나, '성공과 좌절'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은 꼭 한번 읽고 싶다. 무엇보다도 삶은 '이기'와 '탐욕'을 극복할 때 더 가치가 있다. 많은 경우에 책은 '지식'과 '재미'를 위해 읽게 되지만, 이 경우는 그 정신을 배우기 위함이다. 올해 두분의 전직 대통령이 운명을 달리하시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용서와 관용으로 한차원 높은 '인간애'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여주었고, 더불어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시대적 사명감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생존 기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할수록 그 예외는 '경이로움' 그 자체인 것이다.

어떤 책은 일주일을 붙잡고 있어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어떨때는 책을 양적으로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더디게 읽혀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이런저런 셈을 해보아도 1년에 100권은 참 까마득하다. 한달에 10권이면 일주일에 2권 이상. 20세부터 70세까지 50년을 기간으로 잡으면 만권이라면 1년에 200권을 읽어야 한다. 한달에 17권이고, 일주일에는 3-4권이다. 

장정동 목사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2만권이라는 이야기에서 과연 2만권의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한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에 이리저리 셈을 해보고, 또 읽어보고 하는 경험에서 나는 '2만'이라는 숫자에 일단 기겁을 한다. 그리고선 '불가능'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사람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주변의 사람들 중에 충분히 그럴만큼 책을 빨리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독파하면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는 사람들은 가능하다는 것인데, 왠지 재능의 부재로 좀처럼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외국어'처럼 독서에도 현격한 개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의 차이야 그렇다쳐도 '현격한' 차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힘이 쭉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바쁜 일상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다 보면 항상 빠른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항변해본다. 관심 분야가 아니거나 번역이 부자연스럽다거나 심지어 외국어로 된 서적을 읽는다면 그만큼 장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고려하면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냐고, 점점 자신은 없지만 짐짓 그렇지 않은 척 대꾸도 해본다.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2만권.... 가능해요"

스스로 위로를 받고 싶어했던 탓일까. 그 완고한 어투를 듣고 있자니 왠지 이 사람은 고집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도달해보지 않은 목표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확신'은 오히려 '거부감'을 자아내는 면이 있다.
 
요즘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생명의 기원'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창조론 vs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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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18. 10:06

가을이 오다 일상2009. 9. 18. 10:06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가을을 알려준다. 가을엔 더없이 행복하기도 하고, 또 더없이 슬프기도 했다. 감수성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쪽으로 튀든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항상 가을은 설레는 계절이다. 가을을 사랑하고, 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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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7. 13:02

평범하게 살고픈 번민 일상2009. 9. 7. 13:02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그 마음의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평범하게 살고픈 욕구와 그러기 위해서 희생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번민하고 또 번민하게 된다. 

회사 수첩을 그만 쓰기로 하고, 새로 얇은 노트 한권을 구입했다. 남은 4개월동안 쓰려고 함이다. 회사 생활을 한 이후에 쓴 나의 회사수첩들을 살펴보면, 정리되지 않은 지난 시간들만큼이나 어지럽고 난잡하다. 여유가 있을때는 한없이 여유롭다가도 금방 지쳐버리고 말았던 시간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소소하지만, 왠지 '어제'와 '오늘' 사이에 선을 긋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엔 잠깐 병현이를 만나서 맥주 한잔 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집에 있었다. 녀석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오랜만에 모처럼 푹 휴식을 취했다. 책 읽고, 드라마 보고, 인터넷을 배회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일요일을 마무리하는 시간에는 간만에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예전엔 뛰다보면 다리가 지친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에 앞서 숨이 차서 못뛰겠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땀흘리는 즐거움도 필요하다.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지만, 가끔 감성적으로 마음이 흐를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매몰차기도 하고 때론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다.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요즘 나의 마음은 설 곳을 잃고 방황할 때가 있다. 도망치기 바쁘다.  

오랜만에 동생이 주말에 집에 왔다. 집을 자주 오지 않는 것이 혹 형이 어려워서 그러는건 아닐까 괜한 걱정도 있었다.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없는 탓에 동생을 챙겨주진 못한다. 더욱이 올해는 공부하는 녀석에게, 또나름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을 녀석에서 경제적인 부담을 주려고 한 것 같아 더 애잔하다. 충분히, 어쩌면 나보다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을까. 이제 나의 뜻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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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