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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해당되는 글 171

  1. 2010.06.27 6.27 상념
  2. 2010.06.27 월드컵 이야기 1
  3. 2010.02.23 나의 하루는 누가 살고 있니
  4. 2010.01.26 새로운 경험, 새로운 도전
  5. 2010.01.13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는 어느 날
2010. 6. 27. 16:28

6.27 상념 일상2010. 6. 27. 16:28

오랜만에 느껴보는 주말 여유다. 음악은 더없이 감미롭고, 분위기는 너무도 평화로우며, 여름인데도 날씨는 잠시 무더위로부터 비켜 서 있는 듯 하다. 새벽에 열린 월드컵 16강 미국-가나 전을 본 탓에 어제 풀린 피로가 다시 쌓인 느낌이지만, 여유로움이 참 반갑다. 블로그 스킨도 새로 바꾼 마당에 어제 끄적이고 싶었지만 월드컵 이야기를 하느라고 다루지 못했던 몇가지 이야기를 마저 해보고자 한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애드윈 잭슨의 노히트-노런, 그러나...

어제 열렸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애리조나의 선발투수 애드윈 잭슨이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올해 오클랜드의 댈러스 브라덴이 퍼펙트 경기를 한 탓에 다소 빛이 바랜 감이 없지 않지만, 한 시즌에 한두번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 분명하고, 선수 개인에게는 선수 생활을 통털어 한번 달성할까 말까한 기록이다. 컨디션과 행운과 수비 선수들의 도움이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만 기대해볼 수 있을 정도로 힘들다. 선수 개인에게 더없이 축하를 보낸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의 투구수가 149개였다는 점이다. 현대야구에서 선발투수의 적정 투구수는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적으면 100개, 많으면 120개 정도이다. 야구는 매년 투수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스포츠로, 메이저리그에서는 마크 프라이어라는 촉망받던 유망주가 혹사 의혹이 있는 부상으로 그의 미래를 저당잡혔고,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는 기아타이거즈의 이대진 선수가 혹사 후유증으로 여겨지는 부상을 당해 오랜시간 재활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인지 '머니볼'로 유명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같은 팀은 젊은 투수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선발투수들의 투구수를 100개 내외로 제한하면서, 엄격한 선수관리를 한다. 모든 현대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야구 역시 오랜 경험과 전통을 바탕으로 꽤나 과학적인 '기준'을 정립해왔다. 투수들의 분업화, 벤치멤버의 강화, 투구수 조절 등이 그러한 '기준' 통해 생겨난 현대야구의 큰 특징이다. 한계투구수는 선수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감독들, 때론 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그 차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사'의 후유증이 보통 잠재기간을 거쳐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할때 무엇으로 선수들의 '한계투구수'를 개별적으로 측정한다는 말인가. 많은 투구수 이후 경기에서 여전히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고 하여, 그 투구수가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직은 그 개인차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과학적인 판단 기준이 미비하기에 선수보호 차원에서 꽤나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회 앞에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항준 감독의 유쾌한 언변

식사를 할때면 무심코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려보게 되는데, 케이블 재방송 채널을 주로 보게 된다. 그다지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토크 형식으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행여나 개그콘서트와 같은 '코메디' 프로를 만나면 '운수 좋은 날'이다. 

여느때처럼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유재석과 김원희가 진행하는 '놀러와'를 하길래 채널을 고정시켰다. 매번 판에 박은 패널들이 등장해서 식상해지기 쉬운 것이 예능 프로그램인데, 이 날은 다소 신선하게도 '영화감독'들이 패널로 출연해서 관심을 끌었다. 영화 '똥파리'의 감독이자 주연배우기도 한 양익준 감독의 '실제 모습'은 꽤 놀라웠다.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인상이 너무도 달랐다. 

다른 시청자들도 비슷했겠지만, 이날 관심을 끌고 좌중을 압도했던 패널은 '장항준' 감독이었다. 작품을 접한 적도 없고 해서 전혀 모르는 분이었지만, '언변'이 굉장히 뛰어난 분이었다. 처음에는 말투와 표정이 다소 특이해서 '어? 이 사람 왜 이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일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방송계는 '자기 색깔'을 갖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곳이다. 그 색을 소유하면서도, 거부감없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자질이 엿보였다고나 할까. 아니나다를까, 방송 후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꽤나 이슈가 된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개그맨이나 예능계 방송인들의 재치와 감각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웃음'을 유발해내는 과정 속에 묻어 있는 방대한 지식과 반사적인 연상능력이 부럽기 때문이기도 하고, '웃음'이 가지고 있는 긍정성과 낙천성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단순히 취미라고 하기엔 '생계형 방송인'도 많은 현실이지만,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와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싹튼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나 장항준 감독이 '영화감독이 되고픈 후배 예비감독'들에게 클로징 멘트를 할 때는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담아 진지하면서 또 조리있게 잘 표현해내는 그 언변에 그 내공이 스며있다고나 할까. 아이러니컬한 것은 장항준 감독이 만든 작품이 그다지 관객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작품'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의 내공은 한차원 높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표현방식에 있어서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일까. 친구녀석들인 S와 M을 떠오르는게 하는, 티격태격, 더없이 친근한 장항준 감독과 장규상 감독의 우정도 보기 좋았고, 보는내내 참으로 유쾌한 시간이었다.

반가운 애니메이션과의 만남, 그 뿌듯함

이젠 그 자취마저 가물거리는 일이지만, 한때 친구녀석이 비디오 테잎을 수집하던 적이 있었다.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였으며, 특히나 구하기 힘든 '명화'를 차지했을때는 마치 월드컵 무대에서 골이라도 넣은 양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의 예상처럼 그것은 '한때의 열정'에 지나지 않아, 몇해전 친구는 그 보물들이 '처치곤란'으로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때의 열정'이라고 표헌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찮다. 나는 그 '열정'이 여전히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긴 동면'을 취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도화선'에 불만 붙으면 또다시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각기 취향은 다를지언정, '수집욕'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우표를 수집하기도 하며,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은 종종 선수들 피규어나 버블헤드를 수집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은 꽤나 광범위한 '보편적 감정'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상태' 속에서는 일상의 무료함 또는 '정신적 허무'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어 보이는데, 그러한 탈출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그 중 하나가 '수집욕'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은 '서포터즈'가 되어 '좋아하는 팀'의 경기결과에 과도하게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클럽 회원이 되어 들여보내 주지도 않는 방송국 주위를 배회하기도 하며, 음식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은 남들이 맛있다고 하면 쫓아가서 먹어보지 않고는 못 베긴다. 때로 인생이 '집착'이라는 이름의 섬들을 여기저기 순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일게다.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하루라도 내 몸과 정신을 내맡길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마치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것이 '일상의 본질'이랄까. 

'집착'이라고 하니 다소 어감이 부정적인 의미로 함축하고 있는 듯 하지만, '집착'은 자연스러운 정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공동체 안에서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싶은 사회인이라면, 그 집착의 감정은 항상 'under control'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남모르게 욕구를 '배출'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던가. 법정 스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자기수양의 그 첫번째 덕목이 '집착을 버리는 것'이듯이 일생동안 줄곧 마주하고, 싸워야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소 엉뚱하게 흘렀지만, 나의 집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파서이다. 나에게도 몇가지 집착이야 있지만, 왠지 치부를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내는 것 같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생략하되, 나 자신도 그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지 헷갈리는 '한가지 소소한 관심 내지는 집착'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좋은 애니메이션과의 만남'이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기준은 오로지 '작화'에 있다. 스토리가 다소 엉성해도(사실 애니메이션은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잘 그려진 애니메이션은 일단 취하고 본다. 마치 예전의 친구가 명작 영화는 무조건 취하고 보듯이. 물론 '환상적인 작화'에다가 '취향에 맞는 스토리'까지 겸비된다면, '초속 5센티미터'처럼 '레전드' 혹은 '레알'급으로 격상된다. 

종종 시간이 남으면 '그림체 좋은 애니메이션 발굴'에 애써보곤 하는데, 그 결과 주말에 만난 반가운 애니메이션이 바로 '클라나드'라는 작품이다. 새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좋은 자원들이 고갈되어 가는 이 바닥(?)에서 기분좋은 성과다. 유화체 풍경은 그 자체로 잘 그려진 예술작품 상당수를 숨기고 있는 셈이며, 인물그림도 무난한 것 같다. 일상적인 내용이 담긴 스토리는 좀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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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6. 27. 02:53

월드컵 이야기 일상2010. 6. 27. 02:53

좀 전에 끝난 월드컵 16강전에서 우리나라가 우루과이에 1-2로 패해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시종일관 대등한 경기를 펼쳤기에 아쉬움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국가간 실력차는 과거처럼 현저하지 않다. 세밀하고 정밀한 플레이 한 두개가 게임의 승부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드는 생각 중 하나인데, 강팀과 약팀을 구분짓는 가장 큰 요소 중에 하나가 '골 결정력'인 것 같다. 찬스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을 결국 '골'로 연결시키느냐 못하느냐가 승부를 결정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번 월드컵에서 줄곧 아쉬웠던 것이 바로 '골결정력'이었고, 득점은 못했지만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언론 및 국민들은 '대등한 경기', '불운'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우리나라 축구가 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골결정력'을 키우고, 정교한 패스력을 중점적으로 기를 필요가 있다. 현대축구에서 전술은 'case by case'가 되었다. 패스의 정교함 같은 기본기는 하루아침에 갖추어지지 않는다. 거리에 무관하게 종종 예술의 경지 수준을 보여주는 강팀들의 패스력을 볼때면 경탄을 금치 못한다.
 
오늘 경기를 보면서 2002년 월드컵 16강전이 떠올랐다. 먼저 선취골을 넣은 이탈리아가 '걸어잠그기' 전략으로 시종일관 수비에 일관하다가 우리나라에게 뚯밖의 일격을 당해 침몰했던 기억이 난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지겨운 경구는 차치하고라도, 자꾸 두드리면 열리게 되는 것이 골문이다. 경기 초반 선취득점을 하고 수비에 치중하는 우루과이의 전략은 실패했다. 수아레스의 환상적인 슛으로 기사회생한 셈이지만, 동점골을 허용함으로써 '1골차 수성'에 실패했고, 경기의 분위기마저 상대팀으로 넘겨준 꼴이 되었다. 이청용이 상대편 골키퍼와의 1:1 찬스를 성공시켜 역전했더라면 우루과이는 이렇다할 공격 몇 번 해보지 못한채로 고국행 비행기에 오를 뻔 했다. 2002년에도 그랬지만, 전력상 갠곽적으로 열세에 놓여있지 않은 팀이, 아무리 경기의 중대성이 있다고 해도, 수비로 일관하는 전략은 이해하기 어렵다. 

몇몇 판정들이 석연치 않았지만, 판정 자체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진 않았다고 생각된다. 후반 패널티 라인 안에서 우루과이 수비 선수의 반칙성 플레이는 '패널티킥'을 줘도 무방했고, 전반 우리선수의 핸들링도 '패널티킥'을 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박주영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간 반면에, 수아레스의 두번째 골이 골대를 맞고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은 '행운의 여신'이 우루과이를 향해 웃었다고 할 수 밖에.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한 사람들은 '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다. 다만 패배는 종종 쓰라리고 가슴아프고, 분한 일이지만, 우는 모습은 반갑지 않은 것 같다. 스포츠는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인류의 '축제 행사'이기에 승리 후 '기쁨의 눈물'은 너무 기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샘이 넘쳐 흘러버린 '사건' 정도로 봐줄 수도 있겠지만, 패배 후 눈물은 너무 악착같은 느낌을 줘 마음이 편치 않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대이상의 성과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마음껏 자랑스러워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내셔널리즘'에 괜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 우리나라 경기도 꽤나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대학시절이나 프로스포츠 경기를 볼때 응원을 통해 일체감을 느껴본 적이 있기에 '선천적 무감증'은 아닐 것이다. 여튼 비오는 길거리에서 응원의 열기에 취해 '무아지경'에 빠져보지 못함이 때론 애석하기도 하다. 반면, 오늘같이 아쉬운 패배 후에도 분함을 못이겨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고 무감한 것은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오늘 경기와 별개로, 월드컵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까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페인과 칠레의 예선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던 중에 '눈쌀찌푸려지는 장면'이 있었다. 스페인의 간판 공격수 토레스의 '헐리우드 액션'이다. 언론을 비롯해 대부분의 팬들은 토레스의 '액션' 자체가 과도했고, 볼썽 사나웠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수비수와의 접촉이 있었다고 토레스를 옹호하고 있다. 화면을 통해서는 정확히 분간이 가지 않기 때문에 본인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상을 보았을때는 너무도 뜬금없는 '원맨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처럼 무의식 중에 '보기 싫은 것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치자. 백번 양보해서 토레스가 뒤따라 달려오는 수비수의 무릎과 접촉이 있었다고 해도, 그 뒤에 보여준 처사는 '스포츠맨쉽'과는 동떨어진 '저질 연기'였다. 굉장히 과도한 다이빙 동작이야 평소에도 워낙 '다이빙'에 능숙한 선수였다고 하니, 습관이라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해도, 중환자 연기는 너무도 비신사적인 행동이었다. 일차적인 책임이야 토레스에게 있지만, 심판 역시 명백한 '판단 착오'를 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이청용 선수도 준수한 외모와 수준급 실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소 수줍은 듯한 인터뷰 태도 역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도 '이청용 날라차기'로 검색해보면 관련 동영상들을 볼 수 있는데, 국내 프로리그에서의 비매너 플레이와 '남북한 친선경기'에서 북한 선수를 고의적으로 걷어찬 전력 때문에 여전히 내겐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 선수로 각인되어 있다. 어린 선수이기 때문에 좀 더 성숙해지면서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상스러운 짓'과는 거리가 멀어지기를 기대하지만, 축구든 다른 무엇이든 '실력'보다 '인격'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우리나라 경기를 시작으로 드디어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예선 경기는 체력비축, 부상방지, 전력차 등으로 다소 지루한 경기들이 많았는데, 세계적인 전력평준화 속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쳐야 하는 16강부터는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당장 30분 후면 가나와 미국의 16강 두번째 경기가 펼쳐진다. 개최대륙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16강에 오른 '검은별' 가나의 선전을 기대해본다. 아프리카 축구야말로 일면 현란한 개인기와 활기찬 플레이로 잔뜩 기대감을 심어주지만, 극악의 '골결정력' 때문에 번번히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이번 대회의 가나도 한계가 엿보인다. 하지만 공은 둥글고, 언제나 허망한 줄 알면서도 '무모한 기대'에 잔뜩 부풀어 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을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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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2. 23. 01:14

나의 하루는 누가 살고 있니 일상2010. 2. 23. 01:14

오늘 출근해서 오늘 퇴근하지 못하는 일이 근래에 벌써 두번째다. 그동안 회사에 입사해서 별로 일하지 못한 것을 되갚아 주기라도 하듯이 최근에는 일복이 터지고 있다. 일이라고 하기엔 대개 사소한 것들이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
사회 생활을 얼마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속, 그리고 직장속에서 맺어야 할 앞으로의 관계들에 왠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더 오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누군가를 매번 만나야만 하는 번거로운 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모여서 이사람 이야기, 저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 행복감을 느끼겠지만,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면 참으로 우울할 것이다. 

*
오랜만에 책을 구입했다. 주문한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서 배달되었다. 오후에 '당일배송'된다는 문자를 받으니까 빨리 집에와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집에서 '새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집에 돌아오는 길이 조금은 가볍고 기분좋게 느껴진다. 좀처럼 책읽을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틈틈히 시간을 내보자. 


삶이란 게 별거 있을까. 다들 관심을 갖는 것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필요가 없다. 모든 번뇌는 '집착'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을 바라볼때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서 보는대신, 절대적인 자아를 있는 그대로 대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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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1. 26. 23:04

새로운 경험, 새로운 도전 일상2010. 1. 2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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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파견근무 결정이 났다. 그다지 변화를 좋아하는 천성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의 무대인만큼 그 과정에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되, 스스로를 잃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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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스템이라고 할지라도 사용자 편의에서 생각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는 이유로 '사용자 편의'를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소비자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제품은 아무리 우수해도 사장되고 말듯이, 시스템 역시 자연스럽게 사용자 속으로 스며들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는 그 계층이 다양하다. 사용자의 수준과 눈높이에 맞아야 한다.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아도 일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어느정도 해소해줄 수 있다는 一念으로 하찮은 일도 기꺼이 하다보면, 큰 보람이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그 생각을 펼치는 손길 역시 중요하다. 이번주는 무조건 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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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현장르포, 동행'에서 접했던 '찜질방 아버지와 아들'은 한편으로 충격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많이 안타까웠다. 16살의 어린 '하석'이가 겪고 있는 현실을 우리 사회가 보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이 하늘 어느 곳에서 또다른 '하석'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그 현실을 함께 나눌 용기조차 갖지 못한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왜 이렇게 아둥바둥해야만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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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꿰뚫어보는 경제독해'라는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가 있었다. 그 문구가 저자에겐 꽤나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나 본데, 내게도 신선한 문구였다. 내용인즉, 아이들의 컨닝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유도를 해야지, 어린시절부터 '너와 나'를 구분하여 경쟁하고, 서로 뭉치기보다는 흩어지는 법을 배우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감가는 이야기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협동과 단결'을 배척하는 것은 아닌지. 개인을 단지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품'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아닌지. 말뿐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람에 대한 깊은 신뢰, 따뜻한 배려가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자라나는 아이들을 이끌어야 하는 것 아닐까.
 
*
요며칠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동안 다시한번 단호하게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뒤늦은 후회'를 경험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디플레이션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이는 올해 부동산이 폭등할 것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침체기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들은 후에 판단'하지 않고, '판단한대로 듣을'때가 많다. 경제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심술쟁이'이기에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모두가 일면 일리있는 이야기를 하기에 그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기가 참 어렵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 시대의 경제는 '돈을 나누고 또 나누어서 그 볼륨을 키우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억지스러움의 끝에 '버블 붕괴'가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불안요소들을 떠받치고서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경제'란 녀석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신기한 일이다. 거대한 세계 경제의 미로에서 어느 쪽에 비상구가 있는걸까.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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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1. 13. 01:31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는 어느 날 일상2010. 1. 13.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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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퇴근하는데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다. 덕분에 그야말로 오랜만에 '언 손을 따뜻한 물에 녹여'볼 수 있었다. 내 몸의 한 부분이 마비되어 있다가 조금씩 온기를 찾으면서 '몸의 일부'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오늘처럼 추운 날은 지하철역에서 밤을 지새우는 노숙자 분들에겐 더욱 차고 시릴 것이다. 을지로입구역에서 무료 급식이 있는지 밤 12시가 넘었는데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따뜻한 손길'에 잠시 마음이 갔으나, 집에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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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면 고생이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추운 사무실을 지켰던 이유는 '약속' 때문이다. 컴퓨터를 활용하면 5초도 안되어서 끝날 계산을 종이에 적어가면서 2-3시간을 했던 셈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또 누군가를 돕는 일,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보람차다는 데 진정한 이유가 있다.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묵묵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어 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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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법문집'을 읽고 있는 중인데, 문득 스님의 말씀 중에서 '살 날이 3년 남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살지 고민'해 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살아 숨쉬는 하루하루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다. 3년이 남았다면...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언뜻 그 '시간의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 알게 되었다. 그 3년이 매우 촉박하며, 또한 매우 슬플 것이라는걸. 가족은 애틋하지만 한편으론 무겁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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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지만 왠지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징후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그저 스스로의 '나이테'를 셈하는 것이 번거롭기에 '생의 길이'에 연연하진 않을 나이지만, 건강하지 못한 채로 '삶'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훌륭한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젊은 시절 안 좋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인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선례가 많다는 점이 위로가 된다. 


아침마다 식사할때마다 '인간극장'을 10분여정도 볼 시간이 주어진다. 이번주에는 얼마전 엄마를 떠나보낸 두 자매 이야기다. 그 아이들에게 닥친 '운명의 가혹함'은 안타깝지만, 두루 보살핌을 받아 어려움을 씩씩하게 헤쳐나가기를 응원해본다. 직간접적으로 우리 사회의 불쌍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자주 접하다보면 '무감'해지는 것이 아닐까.. 문득 걱정이 되었다. 보탬도 못되는 주제지만, 마음까지 잃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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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