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느껴보는 주말 여유다. 음악은 더없이 감미롭고, 분위기는 너무도 평화로우며, 여름인데도 날씨는 잠시 무더위로부터 비켜 서 있는 듯 하다. 새벽에 열린 월드컵 16강 미국-가나 전을 본 탓에 어제 풀린 피로가 다시 쌓인 느낌이지만, 여유로움이 참 반갑다. 블로그 스킨도 새로 바꾼 마당에 어제 끄적이고 싶었지만 월드컵 이야기를 하느라고 다루지 못했던 몇가지 이야기를 마저 해보고자 한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애드윈 잭슨의 노히트-노런, 그러나...
어제 열렸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애리조나의 선발투수 애드윈 잭슨이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올해 오클랜드의 댈러스 브라덴이 퍼펙트 경기를 한 탓에 다소 빛이 바랜 감이 없지 않지만, 한 시즌에 한두번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 분명하고, 선수 개인에게는 선수 생활을 통털어 한번 달성할까 말까한 기록이다. 컨디션과 행운과 수비 선수들의 도움이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만 기대해볼 수 있을 정도로 힘들다. 선수 개인에게 더없이 축하를 보낸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의 투구수가 149개였다는 점이다. 현대야구에서 선발투수의 적정 투구수는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적으면 100개, 많으면 120개 정도이다. 야구는 매년 투수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스포츠로, 메이저리그에서는 마크 프라이어라는 촉망받던 유망주가 혹사 의혹이 있는 부상으로 그의 미래를 저당잡혔고,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는 기아타이거즈의 이대진 선수가 혹사 후유증으로 여겨지는 부상을 당해 오랜시간 재활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인지 '머니볼'로 유명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같은 팀은 젊은 투수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선발투수들의 투구수를 100개 내외로 제한하면서, 엄격한 선수관리를 한다. 모든 현대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야구 역시 오랜 경험과 전통을 바탕으로 꽤나 과학적인 '기준'을 정립해왔다. 투수들의 분업화, 벤치멤버의 강화, 투구수 조절 등이 그러한 '기준' 통해 생겨난 현대야구의 큰 특징이다. 한계투구수는 선수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감독들, 때론 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그 차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사'의 후유증이 보통 잠재기간을 거쳐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할때 무엇으로 선수들의 '한계투구수'를 개별적으로 측정한다는 말인가. 많은 투구수 이후 경기에서 여전히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고 하여, 그 투구수가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직은 그 개인차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과학적인 판단 기준이 미비하기에 선수보호 차원에서 꽤나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회 앞에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항준 감독의 유쾌한 언변
식사를 할때면 무심코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려보게 되는데, 케이블 재방송 채널을 주로 보게 된다. 그다지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토크 형식으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행여나 개그콘서트와 같은 '코메디' 프로를 만나면 '운수 좋은 날'이다.
여느때처럼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유재석과 김원희가 진행하는 '놀러와'를 하길래 채널을 고정시켰다. 매번 판에 박은 패널들이 등장해서 식상해지기 쉬운 것이 예능 프로그램인데, 이 날은 다소 신선하게도 '영화감독'들이 패널로 출연해서 관심을 끌었다. 영화 '똥파리'의 감독이자 주연배우기도 한 양익준 감독의 '실제 모습'은 꽤 놀라웠다.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인상이 너무도 달랐다.
다른 시청자들도 비슷했겠지만, 이날 관심을 끌고 좌중을 압도했던 패널은 '장항준' 감독이었다. 작품을 접한 적도 없고 해서 전혀 모르는 분이었지만, '언변'이 굉장히 뛰어난 분이었다. 처음에는 말투와 표정이 다소 특이해서 '어? 이 사람 왜 이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일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방송계는 '자기 색깔'을 갖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곳이다. 그 색을 소유하면서도, 거부감없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자질이 엿보였다고나 할까. 아니나다를까, 방송 후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꽤나 이슈가 된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개그맨이나 예능계 방송인들의 재치와 감각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웃음'을 유발해내는 과정 속에 묻어 있는 방대한 지식과 반사적인 연상능력이 부럽기 때문이기도 하고, '웃음'이 가지고 있는 긍정성과 낙천성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단순히 취미라고 하기엔 '생계형 방송인'도 많은 현실이지만,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와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싹튼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나 장항준 감독이 '영화감독이 되고픈 후배 예비감독'들에게 클로징 멘트를 할 때는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담아 진지하면서 또 조리있게 잘 표현해내는 그 언변에 그 내공이 스며있다고나 할까. 아이러니컬한 것은 장항준 감독이 만든 작품이 그다지 관객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작품'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의 내공은 한차원 높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표현방식에 있어서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일까. 친구녀석들인 S와 M을 떠오르는게 하는, 티격태격, 더없이 친근한 장항준 감독과 장규상 감독의 우정도 보기 좋았고, 보는내내 참으로 유쾌한 시간이었다.
반가운 애니메이션과의 만남, 그 뿌듯함
이젠 그 자취마저 가물거리는 일이지만, 한때 친구녀석이 비디오 테잎을 수집하던 적이 있었다.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였으며, 특히나 구하기 힘든 '명화'를 차지했을때는 마치 월드컵 무대에서 골이라도 넣은 양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의 예상처럼 그것은 '한때의 열정'에 지나지 않아, 몇해전 친구는 그 보물들이 '처치곤란'으로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때의 열정'이라고 표헌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찮다. 나는 그 '열정'이 여전히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긴 동면'을 취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도화선'에 불만 붙으면 또다시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각기 취향은 다를지언정, '수집욕'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우표를 수집하기도 하며,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은 종종 선수들 피규어나 버블헤드를 수집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은 꽤나 광범위한 '보편적 감정'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상태' 속에서는 일상의 무료함 또는 '정신적 허무'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어 보이는데, 그러한 탈출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그 중 하나가 '수집욕'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은 '서포터즈'가 되어 '좋아하는 팀'의 경기결과에 과도하게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클럽 회원이 되어 들여보내 주지도 않는 방송국 주위를 배회하기도 하며, 음식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은 남들이 맛있다고 하면 쫓아가서 먹어보지 않고는 못 베긴다. 때로 인생이 '집착'이라는 이름의 섬들을 여기저기 순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일게다.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하루라도 내 몸과 정신을 내맡길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마치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것이 '일상의 본질'이랄까.
'집착'이라고 하니 다소 어감이 부정적인 의미로 함축하고 있는 듯 하지만, '집착'은 자연스러운 정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공동체 안에서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싶은 사회인이라면, 그 집착의 감정은 항상 'under control'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남모르게 욕구를 '배출'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던가. 법정 스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자기수양의 그 첫번째 덕목이 '집착을 버리는 것'이듯이 일생동안 줄곧 마주하고, 싸워야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소 엉뚱하게 흘렀지만, 나의 집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파서이다. 나에게도 몇가지 집착이야 있지만, 왠지 치부를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내는 것 같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생략하되, 나 자신도 그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지 헷갈리는 '한가지 소소한 관심 내지는 집착'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좋은 애니메이션과의 만남'이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기준은 오로지 '작화'에 있다. 스토리가 다소 엉성해도(사실 애니메이션은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잘 그려진 애니메이션은 일단 취하고 본다. 마치 예전의 친구가 명작 영화는 무조건 취하고 보듯이. 물론 '환상적인 작화'에다가 '취향에 맞는 스토리'까지 겸비된다면, '초속 5센티미터'처럼 '레전드' 혹은 '레알'급으로 격상된다.
종종 시간이 남으면 '그림체 좋은 애니메이션 발굴'에 애써보곤 하는데, 그 결과 주말에 만난 반가운 애니메이션이 바로 '클라나드'라는 작품이다. 새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좋은 자원들이 고갈되어 가는 이 바닥(?)에서 기분좋은 성과다. 유화체 풍경은 그 자체로 잘 그려진 예술작품 상당수를 숨기고 있는 셈이며, 인물그림도 무난한 것 같다. 일상적인 내용이 담긴 스토리는 좀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접해볼까 한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애드윈 잭슨의 노히트-노런, 그러나...
어제 열렸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탬파베이 레이스의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애리조나의 선발투수 애드윈 잭슨이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올해 오클랜드의 댈러스 브라덴이 퍼펙트 경기를 한 탓에 다소 빛이 바랜 감이 없지 않지만, 한 시즌에 한두번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 분명하고, 선수 개인에게는 선수 생활을 통털어 한번 달성할까 말까한 기록이다. 컨디션과 행운과 수비 선수들의 도움이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만 기대해볼 수 있을 정도로 힘들다. 선수 개인에게 더없이 축하를 보낸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의 투구수가 149개였다는 점이다. 현대야구에서 선발투수의 적정 투구수는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적으면 100개, 많으면 120개 정도이다. 야구는 매년 투수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스포츠로, 메이저리그에서는 마크 프라이어라는 촉망받던 유망주가 혹사 의혹이 있는 부상으로 그의 미래를 저당잡혔고, 가까이 우리나라에서는 기아타이거즈의 이대진 선수가 혹사 후유증으로 여겨지는 부상을 당해 오랜시간 재활기간을 거쳐야 했다. 그래서인지 '머니볼'로 유명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같은 팀은 젊은 투수들을 조심스럽게 다루는데 선발투수들의 투구수를 100개 내외로 제한하면서, 엄격한 선수관리를 한다. 모든 현대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야구 역시 오랜 경험과 전통을 바탕으로 꽤나 과학적인 '기준'을 정립해왔다. 투수들의 분업화, 벤치멤버의 강화, 투구수 조절 등이 그러한 '기준' 통해 생겨난 현대야구의 큰 특징이다. 한계투구수는 선수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감독들, 때론 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그 차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사'의 후유증이 보통 잠재기간을 거쳐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할때 무엇으로 선수들의 '한계투구수'를 개별적으로 측정한다는 말인가. 많은 투구수 이후 경기에서 여전히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고 하여, 그 투구수가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직은 그 개인차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과학적인 판단 기준이 미비하기에 선수보호 차원에서 꽤나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회 앞에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욕심을 부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항준 감독의 유쾌한 언변
식사를 할때면 무심코 이리저리 TV채널을 돌려보게 되는데, 케이블 재방송 채널을 주로 보게 된다. 그다지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토크 형식으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시청한다. 행여나 개그콘서트와 같은 '코메디' 프로를 만나면 '운수 좋은 날'이다.
여느때처럼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유재석과 김원희가 진행하는 '놀러와'를 하길래 채널을 고정시켰다. 매번 판에 박은 패널들이 등장해서 식상해지기 쉬운 것이 예능 프로그램인데, 이 날은 다소 신선하게도 '영화감독'들이 패널로 출연해서 관심을 끌었다. 영화 '똥파리'의 감독이자 주연배우기도 한 양익준 감독의 '실제 모습'은 꽤 놀라웠다.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인상이 너무도 달랐다.
다른 시청자들도 비슷했겠지만, 이날 관심을 끌고 좌중을 압도했던 패널은 '장항준' 감독이었다. 작품을 접한 적도 없고 해서 전혀 모르는 분이었지만, '언변'이 굉장히 뛰어난 분이었다. 처음에는 말투와 표정이 다소 특이해서 '어? 이 사람 왜 이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일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방송계는 '자기 색깔'을 갖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곳이다. 그 색을 소유하면서도, 거부감없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자질이 엿보였다고나 할까. 아니나다를까, 방송 후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꽤나 이슈가 된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개그맨이나 예능계 방송인들의 재치와 감각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웃음'을 유발해내는 과정 속에 묻어 있는 방대한 지식과 반사적인 연상능력이 부럽기 때문이기도 하고, '웃음'이 가지고 있는 긍정성과 낙천성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단순히 취미라고 하기엔 '생계형 방송인'도 많은 현실이지만,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따뜻한 인간애'와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싹튼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나 장항준 감독이 '영화감독이 되고픈 후배 예비감독'들에게 클로징 멘트를 할 때는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담아 진지하면서 또 조리있게 잘 표현해내는 그 언변에 그 내공이 스며있다고나 할까. 아이러니컬한 것은 장항준 감독이 만든 작품이 그다지 관객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작품'의 범주에 속하는 영화의 내공은 한차원 높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표현방식에 있어서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일까. 친구녀석들인 S와 M을 떠오르는게 하는, 티격태격, 더없이 친근한 장항준 감독과 장규상 감독의 우정도 보기 좋았고, 보는내내 참으로 유쾌한 시간이었다.
반가운 애니메이션과의 만남, 그 뿌듯함
이젠 그 자취마저 가물거리는 일이지만, 한때 친구녀석이 비디오 테잎을 수집하던 적이 있었다. 직접 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모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였으며, 특히나 구하기 힘든 '명화'를 차지했을때는 마치 월드컵 무대에서 골이라도 넣은 양 어쩔 줄 몰라했다. 그때의 예상처럼 그것은 '한때의 열정'에 지나지 않아, 몇해전 친구는 그 보물들이 '처치곤란'으로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때의 열정'이라고 표헌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찮다. 나는 그 '열정'이 여전히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긴 동면'을 취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도화선'에 불만 붙으면 또다시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각기 취향은 다를지언정, '수집욕'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우표를 수집하기도 하며,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은 종종 선수들 피규어나 버블헤드를 수집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은 꽤나 광범위한 '보편적 감정'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상태' 속에서는 일상의 무료함 또는 '정신적 허무'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어 보이는데, 그러한 탈출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고, 그 중 하나가 '수집욕'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들은 '서포터즈'가 되어 '좋아하는 팀'의 경기결과에 과도하게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클럽 회원이 되어 들여보내 주지도 않는 방송국 주위를 배회하기도 하며, 음식을 좋아하는 미식가들은 남들이 맛있다고 하면 쫓아가서 먹어보지 않고는 못 베긴다. 때로 인생이 '집착'이라는 이름의 섬들을 여기저기 순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일게다.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하루라도 내 몸과 정신을 내맡길 대상을 찾지 못하면, 마치 '살아있어도 죽은 것처럼' 무기력해지는 것이 '일상의 본질'이랄까.
'집착'이라고 하니 다소 어감이 부정적인 의미로 함축하고 있는 듯 하지만, '집착'은 자연스러운 정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공동체 안에서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싶은 사회인이라면, 그 집착의 감정은 항상 'under control'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남모르게 욕구를 '배출'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던가. 법정 스님이 항상 말씀하시던 자기수양의 그 첫번째 덕목이 '집착을 버리는 것'이듯이 일생동안 줄곧 마주하고, 싸워야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소 엉뚱하게 흘렀지만, 나의 집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파서이다. 나에게도 몇가지 집착이야 있지만, 왠지 치부를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내는 것 같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생략하되, 나 자신도 그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지 헷갈리는 '한가지 소소한 관심 내지는 집착'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좋은 애니메이션과의 만남'이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기준은 오로지 '작화'에 있다. 스토리가 다소 엉성해도(사실 애니메이션은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잘 그려진 애니메이션은 일단 취하고 본다. 마치 예전의 친구가 명작 영화는 무조건 취하고 보듯이. 물론 '환상적인 작화'에다가 '취향에 맞는 스토리'까지 겸비된다면, '초속 5센티미터'처럼 '레전드' 혹은 '레알'급으로 격상된다.
종종 시간이 남으면 '그림체 좋은 애니메이션 발굴'에 애써보곤 하는데, 그 결과 주말에 만난 반가운 애니메이션이 바로 '클라나드'라는 작품이다. 새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좋은 자원들이 고갈되어 가는 이 바닥(?)에서 기분좋은 성과다. 유화체 풍경은 그 자체로 잘 그려진 예술작품 상당수를 숨기고 있는 셈이며, 인물그림도 무난한 것 같다. 일상적인 내용이 담긴 스토리는 좀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접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