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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1. 14:34

Into the society... 일상2007. 7. 21. 14:34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시시각각 너무도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모든 일들에 관심을 가지기엔 시간적, 정신적 한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모른척 외면하고 살자니, 타인과 '공유'할 관심사가 없어진다. 동시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고등학교 다닐때 논술을 쓰면서 언제나 설득하는 글을 쓸때는 '감정에 호소'해서는 안되며, 항상 '논리적인 전개'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많은 방법,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여러 자세 등등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고 표현하는 것에는 '정도'가 없다. 어쩌면 '논리적으로 옳은 소리'만 백번 해대는 것보다 그냥 '감정에 한번 호소'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게 비겁한 일인가? 아니다. 그럼 잘못한 일인가? 아니다.

싸이의 병역 비리가 요즘 연예계의 가장 큰 이슈가 아닌가 싶다.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서 '병역특례'라는 제도를 이용했고, 근무실태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나로서는 제대로 '병역복무'가 되었을까 싶다. 더 큰 이슈는 바로 '싸이의 재입대' 문제인데, 소송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니,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볼때 사뭇 흥미로운 진전이기도 하다. 싸이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연예인들이나 '가진 자'들이 병역법을 위반하고, 일반 대중들이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위법'을 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어쩌다 재수없이 걸린 싸이가 다소 '상대적인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개인의 심경 문제이기 때문에, 싸이의 문제를 되짚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틀렸다고 해서 틀린 것을 옳다고 할 수 없을진대, 일부의 문제를 가지고, 개인이 억울함을 호소할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법'을 위반한 대상은 병무청도 마찬가지고, 싸이도 마찬가지다.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마땅히 '위법 사항'이 있다면 '형사 처벌'이 이루어져야 맞다. 그건 양측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문제는 '싸이의 재입대'가 과연 '병역복무 실태'가 '복무 인정'으로 해주기 어렵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부당하게 '병역특례 업체'에 들어갔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자라면 병무청에서 '재입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보고, 후자라면 '재입대'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병무청에서 전산 착오로 '현역 대상'이 '공익 근무'를 했다고 해서 다시 재입영 청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일단 정당하게 이루어진 '복무'에 대해서는 당연히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다음은 요즘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프카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이다. 21명의 젊은 사람들이 선교 활동을 벌이다가 피랍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납치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곳이라면 '여행 제한'이 아닌 '여행 금지'의 조치가 진작부터 취해졌어야 하지 않나 싶다.

준전시상태인 곳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떠나기 직전에 '유서'까지 쓰고 선교활동에 나섰다는 한다. 사실 이 사건은 몇년 전의 '김선일씨 참수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 '종교 단체'와 연결이 되어 있어 '논란의 소지'도 많이 안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종교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분쟁'과 '반목'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는 어떠한 특정한 종교적인 활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부수적인 결과에 대한 동기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결과가 좋았을때 좋게 보이고, 결과가 나쁘면 안 좋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후자 쪽이다. 무사히 선교활동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난 그 사실도 모른체 그냥 지나갔겠지만, 어찌되었든 사회적으로 이슈를 만들고, '안 좋은 입장'에 처하게 되었으니, '종교적인 목적에서의 그 동기'가 어찌하였든 굉장히 '이해불가'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난 굳이 선교활동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종교든, 사상이든 사람들마다 신념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선교'라는 것 역시 종교활동의 포괄적인 목표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가끔 지나친 선교활동이 가져오는 거부감 같은 것들은 있을 수 있고, 그럴때는 물건을 팔려고 광고하는 '영업'과 무어 다를 바 있는가 라는 마음이 들때도 있지만, 다분히 종교라는 것이 그보다 한차원 높은 것이라는 막연한 존중 때문에, 그 신념과 활동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기에 관련 지식도 너무 부족하고.

이번 사건의 핵심은 '선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왜 굳이 그곳에서 '선교'를 하려고 택했느냐는 점이다. 준전시상태인 곳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수십번 경고를 했고, 그곳은 더구나 다른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한 곳이다. 매년 해온 일이라고 할지라도, 올해는 피해갈 수 있는 일이고,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선교할 수 있는 곳은 많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종교인들도 이번 선교활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 굳이 위험한 곳에 '유서'까지 써 가면서까지 '선교를 목적으로 한 자원봉사활동'을 강행했는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국민의 신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최대한 외교적인 협상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가지 만전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제한'이라는 것이 따르면, 그것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용된 자유'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만, 꼭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언제나 모든 사회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난 이번 사건의 봉사들에게 감히 '이기적인 분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행위, 즉 스스로 옳다고 믿는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때때로 대단히 존경스러워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민본'의 입장에서, 공동체 속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이기적인 행위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주말에 쉬어야 할 수많은 정부기관 관계자들이 외교적인 루트를 찾고 협상을 준비하기 위해 고생을 하고 있다. '아, 우리 국민이 어려움에 처했으니,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거다'라고 생각해야 할까? 정부가 거액의 협상금액을 지불하고, 그분들을 다시 모셔올때는 국민의 '혈세'가 우리와 상관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단체'에 '테러자금'으로 활용이 된다. 그곳의 민중들처럼, 그토록 오랫동안 다른 종교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에게 그 신념을 바꾸라는 이야기하는 시도 자체가 굉장히 가능성이 희박하고, 그 지역에서도 원하지 않았던 일일 것이다. 누굴 위해서? 결국 결론은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 신념이 비록 '다른 사람들과 인류를 위해서'라고 주장을 하지만, 진정 그것이 이타적인 것인지 혼란스럽다.

간단히 두가지 사건만 생각을 해도 머리가 아프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도 명료하고 간단해보이는 문제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복잡하기도 하며, 또 터무니 없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나 '이견'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모두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래서 때론 '인간사회'가 활기가 넘치고, 또 그러한 이견을 자양분 삼아 발전을 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하고, 내 생각이 존중받아야 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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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