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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6. 09:53

이브의 시간, 요시우라 야스히로 애니2011. 1. 16. 09:53

인류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오랜기간 호기심을 가져왔다. 여러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유기적으로 구성된 우리의 신체는 그렇다 치고,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은 오랜 탐구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걸까. 

과거 읽었던 책에 나온 내용 중 하나로,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의 그러한 사고와 행동양식은 모두 프로그램된 것들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인간의 뇌가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창조적이라는 것도 실상 프로그램의 결과값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스스로 ' 만물의 영장'임을 자부하는 인간은 그런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 당연하다. 삶의 '주체'에서 '객체'로 전락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며, 모든 인류의 문화는 '인류 의지의 발현'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로봇이라는 것이 있다. 아직도 과학기술 한 영역에선 인간의 뇌를 프로그래밍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신이 인간의 '두뇌'를 프로그램했다는 과거 철학자들의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류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 '새로운 두뇌'를 창조하고자 한다. 인간의 지성 및 감성까지도 포괄하려는 인류의 시도는 조금씩 그 결과물을 얻고 있으며, 과연 얼마나 인간을 닮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브의 시간'은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을 그렸다. 사실 로봇을 소재로 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넘치고도 넘친다. 그래서 로봇이 그 형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 그 감정까지도 닮아간다는 단순한 시나리오 가지고는 관객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기 힘들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브의 공간'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상정하여 '인간화'되어 가는 로봇들의 내면적인 아픔을 그렸지만, 다른 애니메이션들과의 차별성이 크지 않아 그 한계가 분명하기도 했다. 더구나  주인공이 로봇을 '하나의 주체'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자못 진중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접한 많은 관객들은 이미 '인간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로봇들을 이미 여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많이 접했다. 너무나 진지하고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주인공의 '꽉 막힌 마음'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차라리 식상하긴 하지만 유쾌한 에피소드를 많이 가미하거나, 인간생활을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로봇을 그리면서 사람들과의 '교감'의 과정을 좀더 극적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로봇의 역할은 인간들을 보좌하는 역할로 한정되었다. 누구나가 '일종'의 하인을 하나씩 두는 셈이다. 로봇은 음식을 하고, 차를 타고, 각종 심부름을 한다. 일정한 역할로만 '프로그래밍'되었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생각'하는 존재들로 그려지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다. 

외국의 한 로봇전문가(?)는 로봇 여자친구를 만들었다. 아직도 여전히 미완성인 그 여자친구는 조금씩 '인간화'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앉아있기도 버거웠는데, 이제 서 있을 수 있고, 몇가지 원초적인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든 조각품과 사랑에 빠진 현대판 피그말리온이다. 어느 홈페이지에서는 여자친구 로봇을 판매하기까지 하고 있다.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는 로봇은 앞으로도 그 영역을 넓혀갈 것이 분명하다.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심각하게 침해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인간의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지금, 로봇과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전에 '인간적인 가치'를 새롭게 재정립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위기의식이 고조되면, 그런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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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