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9. 02:25
윌리스가 말하는, 말린스의 가장 인상적이었던 홈런 야구2007. 8. 9. 02:25
Shortstop wins Game 4, tilts '03 World Series in Florida's favor
By Tom Keller /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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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트렐 윌리스가 죽어서도 기억할 역사적이라는 홈런이 있다.
2003년 10월 22일 윌리스는 프로 플레이어 스타디움의 불펜에 있었고, 소속팀 말린스가 2승 2패를 이루기 위해 4차전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흥분된 마음으로 양키스와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동점인 경기는 연장 12회였다.
윌리스는 이미 그날 저녁에 팀의 승리가 날라가 버리는 것을 보았다. 3-1로 9회에 접어들었고, 말린스는 유게스 어비나를 올렸다. 어비나는 그 해 42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36번을 성공시켰고, 시즌 중반 말린스가 영입했다. 뉴욕의 뒷문을 막으려던 차에, 대타 루벤 시에라는 그 희망을 날려버렸다. 2사 후에 우익수 쪽 깊숙한 코너쪽으로 2타점 3루타를 쳐내며 게임을 동점으로 만들었다.
양키스는 연장전에서도 계속 위협을 했지만, 결승 득점을 올리진 못했다. 10회에는 2루, 11회에는 만루의 기회가 무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2회말, 윌리스의 동료의 타구는 낮게 라인드라이브로 날아가 좌측 펜스까지 날아갔다. 프로 플레이어 스타디움을 메운 관중들과 나라 전역에 텔레비젼을 통해 경기를 관전하는 시청자들이 하늘을 따라 그 공에 시선을 쫓았다. 그리고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과연 넘어갔을까?
하지만 윌리스의 시야는 팀동료인 브래든 루퍼가 그의 앞에 갑자기 뛰어드는 바람에 막히고 말았다. 루퍼는 글러브를 집더니 불펜 출구쪽을 향해갔다.
"그는 이미 홈런이라는 걸 알았던 것 같습니다." 윌리스는 말했다.
이것은 전혀 예상밖의 스토리였다.

그해 공동으로 리그 최고의 승률을 기록한 양키스는 스프링 트레이닝때부터 월드시리즈 우승의 강력한 후보였다. 말린스는 그해 19승 29패로 시즌을 시작했고, 그들의 감독을 해고했다. 단지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를 획득하기 위해서도 쉽지 않은 길이 남아 있었다.
그해, 양키스의 페이롤은 164M 달러였고, 말린스는 54M 달러였다.
4차전의 양키스 선발투수는 로저 클레멘스였다. 클레멘스는 미래의 명예의 전당 헌액이 예정된 선수였고, 그 경기는 그의 은퇴를 알리는 현역 마지막 등판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말린스의 선발투수는 칼 파바노였고, 정규시즌에 12승 13패를 거둔 투수였다.
하지만 말린스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들의 8번타자가 좌측 코너로 날려버린 라인드라이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뉴욕 양키스의 3루수 애런 분은 그 누구보다 그 공을 잘 바라볼 수 있었다. 공의 궤도를 바라보면서, 그는 몸을 좌측으로 기울인채로, 파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의 바램대로 되지 못했다. 다윗의 새총은 골리앗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공을 멀리 날려버렸다.
알렉스 곤잘레스는 홈런을 확인한 순간 완전히 행복에 도취되었다. 그는 끝내기 홈런으로 월드시리즈 게임을 끝내버린 13번째 선수가 되었다.

잠깐만, 지금 알렉스 곤잘레스라고 했던가? 그 알렉스 곤잘레스는 그때까지 포스트시즌에서 53타수 5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월드시리즈 13번의 타석에서는 한개의 안타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정규시즌을 돌이켜보면, 곤잘레스는 마지막 111번의 타석에서 단 한개의 홈런만을 쳐냈었다. 양키스의 투수 제프 위버가 그저 볼넷으로 걸어내보내지만 않으려고 애를 썼다던 그런 알렉스 곤잘레스였다.
그렇다. 알렉스 곤잘레스였다. 말린스의 유격수인 그는 시즌내내 말린스에서 가장 없어서는 안될 선수중 하나였다. .256의 타율에 18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수준급 수비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는 포스트시즌에서 너무도 부진했기 때문에, 플로리다의 감독인 잭 매키언은 그를 라인업에서 제외하라는 여론의 압력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맥키언은 곤잘레스를 기용했다. 곤잘레스는 선발진에서 밀려나 28일만에 첫 등판을 한 제프위버와의 풀카운트 접전 끝에 공을 좌측 330피트 사인이 있는 펜스 너머로 넘겨 역사적인 홈런을 만들어냄으로써, 맥키언 감독에게 100배로 보답했다.
"나는 그저 맞추어 잡으려고 했습니다." 경기 후 위버의 이야기다. "그는 그 이상을 해냈습니다."
윌리스는 루퍼를 뒤따라서, 축제를 즐기기 위해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불펜에서부터의 그 질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윌리스는 회상한다. "저는 그저 내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기처럼 글러브를 잡고 있었습니다."
곤잘레스는 베이스를 도는 중에 오른손 주목을 번쩍 지켜올리고 소리를 질렀다. 많은 곤잘레스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베네주엘라에서 와 있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베이스를 돌때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은 해낸건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신시내티 레즈 소속인 곤잘레스의 최근 말입니다. "그저 소리를 지르고, 홈플레이트에 도착해 축하를 받을 생각만 하면 되었습니다."
곤잘레스가 홈플레이트에 도착하자마자 선수들이 휩싸였다. 말린스 선수들은 열광속에서 뒤죽박죽 섞여 고함치며 서로 얼싸안았다.
"마이크 로웰의 목을 얼싸안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윌리스는 말했다. "우리는 너무 방방 뛰어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만화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렇게 됩니다."
말린스는 다음 두경기를 모두 승리해, 6차전에서 시리즈 우승을 거두었고, 11년의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두번째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윌리스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홈런으로, 곤잘레스의 첫번째이자 유일한 포스트시즌 홈런이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우리가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윌리스의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경기장에 있는 이유입니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말린스의 기억에 남을 홈런들
1997년 10월 3일, 캔들스틱 파크 : 윌슨 알바레즈로부터 디본 화이트가 6회에 뽑아낸 만루홈런으로 팀의 6-2 승리를 이끌었고, 그들의 첫번째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자이언츠를 상대로 스윕했다.
2003년 10월 22일, 프로 플레이어 스타디움 : 높은 패스트볼의 위협적인 공에 몸을 피한 직후, 20살의 미구엘 카브레라는 월드시리즈 4차전 1회에서 클레멘스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쳤다.
2005년 8월 31일, 돌핀스 스타디움 : 제레미 허미다가 메이저리그 첫 타석에서 대타 만루홈런을 쳐서,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