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

« 2025/7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2009. 7. 20. 08:52

똥파리, 양익준 영화2009. 7. 20. 08:52

'똥파리'같은 영화다.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13개의 상을 수상했고, 네이버 평점은 무려 9점을 훨씬 상회한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 대한 어설픈 감상이 아니라면, 도대체 영화의 어떤 요소가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보면 안방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는 '인생극장'을 장소를 옮겨 좀더 리얼하게 보여주었다면 과장일까.
 

한마디로 '밑바닥' 인생이다. 누구나가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고 싶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간접 경험'만큼은 그다지 거부감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도 영화에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시기에 따라서 어떤 경우엔 공감하기도 하니까 이번 경우에 한해선. 영화 속 주인공은 한심스럽다는 말 이외 다른 표현이 어렵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애정, 즐거움이 없고, 가족에 대한 애증, 사람들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그의 삶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삶이 개인의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고 믿는 건 아니다. 비록 극복해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을 힘든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선택의 폭은 아주 좁았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현실의 한계를 마주하는 슬픈 삶을 바라보는게 거북스러울 뿐이다. 

'우리'라는 사람들이 각각 자신만의 이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하나로 통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 삶은 늑 '팍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식을 쌇고 다양한 식견을 넓힘으로써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고, 적어도 이 사회가 개개인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인 '민주주의'의 권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고 무지하고, 지옥의 늪에 조금씩 빠져들어가는 '똥파리 같은 인생'을 반복할 뿐이다.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다. 그건 가졌다는 것, 못 가졌다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다. 어렸을 때 배우는 것처럼,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에, 그 욕구를 충족시킬만큼 한정된 자원을 균등하게 분배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나마 실현하려고 한다면, 다수의 집단에 있는 사람들이 다분히 자신들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그 영역 밖에 있는 사람이다. 물 밑에 있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물 위에 있는 사람은 '힘들어도 열심히 사는 사람', 물 밑의 사람은 '힘들지만 제멋대로 사는 사람'.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그런건데,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 둘다 힘들게 사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다만 삶의 가치를 '미래'에 더 비중을 두느냐, '현재'에 두느냐 아닐까.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욕설'에는 확실히 어떤 '쾌감'이 있다. 미친놈 같은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언어 구사에 있어서 '욕설은 절대 금지'라는 어떤 한계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같은 것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감정이 격해져 있을때, 그것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보통 자신에게 표현할때는 미친듯이 '악~'을 질러대면 해결이 되지만, 타인에게 발설할때는 '악~'만으로는 쉽사리 성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무 고운말만 써야 한다고 스스로를 강박하지 말자ㅋ '절제'는 보통 아름다운 것들이 많지만, 때때로 자신을 해치는 경우도 있으니까.        
:
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