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7. 17:27
꼬마 철학자, 알퐁스 도데 도서2009. 7. 7. 17:27
반가운 이름 알퐁스 도데. 서점에서 배회하던 중, 아련한 추억속의 설레였던 소설 '별'을 떠오르게 하는 알퐁스 도데라는 이름이 먼저 반가웠고, '꼬마 철학자'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철학을 생각하는 꼬마라고 한다면 우선 '천재'라는 단어를 떠올릴지 모르나, 엄연히 '꼬마'와 '철학'은 서로 매치가 되지 않는다. 왠지 '철학'이라는 학문은 천재성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다. 세월의 흐름과 경험, 오랜시간의 사색을 통해서 얻어지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펼쳐들기 전에 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제멋대로인 꼬마 녀석을 상상했더랬다. 마치 어른인 척 갖은 폼을 재나, 결국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에 불과한.
실제의 내용은 '엉뚱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게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시와 철학을 좋아하는 작고 왜소한 체구의 '나'를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벌어진 일들, 감내해야할 고통, 자신에게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소한 체구만큼이나 여리고 나약한 감성의 소유자로, '현실'이라는 가혹한 무대 위에서 번번히 좌절을 맛본다. 비웃음과 조롱, 배신을 감내하지 못한다. 다니엘은 되돌아갈 둥지도 없이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책의 내용 중에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했는데, 그것이 곧 다니엘의 여린 마음과 힘겨운 생활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약한 면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고, 돌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고, 공장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갔던 로빈슨 크루우소도 훗날 자기가 살던 무인도를 찾아보기 위해 수천리가 넘는 바닷길을 항해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낯선 마을의 누추한 여관 침대에 홀로 걸터앉은 나는, 위대한 꼬마 철학자라는 자부심도 내팽개친 채 미어지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삶이 무섭게 느껴졌던 것이다. 삶 앞에서 나 자신이 무기력하고 허약하게 느껴져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없이 눈물을 쏟고 있는데, 별안간 가족들의 얼굴이 내 눈앞을 줄지어 지나갔다. 버려진 집과 어머니는 이리, 아버지는 저리,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내겐 가족도 집도 없다.
다니엘의 형 자크. 어렸을때부터 항상 울음이 그치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고 자랐다. 항상 울고만 있었다는 것은 '똑똑'한 느낌을 주지는 못하지만, 다니엘만큼이나 순수하고도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꼬마'에 불과한 다니엘에게 인간적인 사랑을 베푸는 인물은 3명인데, 형 자크와 제르만느 신부님 그리고 피에로트씨이다. 그 중 자크형은 다니엘에게는 절대적인 존재로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 가족애를 보여준다. 자크는 다니엘이 실의에 빠져 있을때도, 용기를 잃고 망설일때도 옆에서 늘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의 아픔을 보이지 않고 밝은 모습을 연출해내는 '아버지'의 역할을 해낸다. 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묵묵히 자신의 짐을 떠맡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의 '희생'을 볼 수 있다.
제르만느 신부와 피에로트씨 역시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정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니엘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대가없이 손을 내민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다니엘 에세트. 소심하고 답답하고, 때론 어리석으며 순수한 꼬마 철학자다. 그 특징중 하나는 늘상 회한에 사로잡힌다는 것인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번번히 벽에 부딛히다보니 항상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결국 형의 '거룩한 희생'을 댓가로 다니엘은 새 삶을 얻었다. 더이상 과거를 부여잡고 회한을 늘어놓지도 않을 수 있고, 집안을 일으켜세워야 한다는 강박과 늘상 찾아오는 '외로움'을 마주할 일도 없게 되었다. 소중한 경험과 희생이 과연 그를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
실제의 내용은 '엉뚱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게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시와 철학을 좋아하는 작고 왜소한 체구의 '나'를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벌어진 일들, 감내해야할 고통, 자신에게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소한 체구만큼이나 여리고 나약한 감성의 소유자로, '현실'이라는 가혹한 무대 위에서 번번히 좌절을 맛본다. 비웃음과 조롱, 배신을 감내하지 못한다. 다니엘은 되돌아갈 둥지도 없이 결국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책의 내용 중에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했는데, 그것이 곧 다니엘의 여린 마음과 힘겨운 생활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약한 면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고, 돌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고, 공장도 좋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갔던 로빈슨 크루우소도 훗날 자기가 살던 무인도를 찾아보기 위해 수천리가 넘는 바닷길을 항해하지 않았던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낯선 마을의 누추한 여관 침대에 홀로 걸터앉은 나는, 위대한 꼬마 철학자라는 자부심도 내팽개친 채 미어지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삶이 무섭게 느껴졌던 것이다. 삶 앞에서 나 자신이 무기력하고 허약하게 느껴져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없이 눈물을 쏟고 있는데, 별안간 가족들의 얼굴이 내 눈앞을 줄지어 지나갔다. 버려진 집과 어머니는 이리, 아버지는 저리,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제 내겐 가족도 집도 없다.
다니엘의 형 자크. 어렸을때부터 항상 울음이 그치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고 자랐다. 항상 울고만 있었다는 것은 '똑똑'한 느낌을 주지는 못하지만, 다니엘만큼이나 순수하고도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꼬마'에 불과한 다니엘에게 인간적인 사랑을 베푸는 인물은 3명인데, 형 자크와 제르만느 신부님 그리고 피에로트씨이다. 그 중 자크형은 다니엘에게는 절대적인 존재로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 가족애를 보여준다. 자크는 다니엘이 실의에 빠져 있을때도, 용기를 잃고 망설일때도 옆에서 늘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의 아픔을 보이지 않고 밝은 모습을 연출해내는 '아버지'의 역할을 해낸다. 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묵묵히 자신의 짐을 떠맡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의 '희생'을 볼 수 있다.
제르만느 신부와 피에로트씨 역시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정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니엘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대가없이 손을 내민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다니엘 에세트. 소심하고 답답하고, 때론 어리석으며 순수한 꼬마 철학자다. 그 특징중 하나는 늘상 회한에 사로잡힌다는 것인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번번히 벽에 부딛히다보니 항상 자신을 보살펴주는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결국 형의 '거룩한 희생'을 댓가로 다니엘은 새 삶을 얻었다. 더이상 과거를 부여잡고 회한을 늘어놓지도 않을 수 있고, 집안을 일으켜세워야 한다는 강박과 늘상 찾아오는 '외로움'을 마주할 일도 없게 되었다. 소중한 경험과 희생이 과연 그를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