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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해당되는 글 149

  1. 2009.11.08 디스트릭트9, 닐 블롬캠프
  2. 2009.11.02 [뮤지컬] 싱글즈
  3. 2009.10.31 [애니메이션] 나인, 팀 버튼
  4. 2009.09.27 아홉살 인생, 윤인호
  5. 2009.09.20 국화꽃 향기, 장진영
2009. 11. 8. 22:14

디스트릭트9, 닐 블롬캠프 영화2009. 11. 8. 22:14

요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변신'에 아이들은 열광한다. 머털도사가 머리카락 하나로 자신이 원하는 동물로 변하는 것이나 각종 로봇이 합체하면서 또다른 형태의 변신로봇이 되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치 바라면 이루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창때의 아이들은 '변신의 꿈'을 버리지 못해, 때론 꿈속에서, 때론 상상속에서 그 '꿈'을 이루곤 한다.

괴물에 열광하고, 외계인에 무한한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신'하는 꿈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 왠지 우리는 무엇인가로부터 '변신'된 것 같은 색다른 개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면 다를수록 그 관심의 폭은 커지게 된다.

'이상한 모습이나 개체'를 호기심으로 바라보던 어린시절의 시각은 어른이 되면서 변화를 거듭한다. '이상한 것'은 단지 놀라운 신비의 대상이라기보다 해로운 것이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재인식된다. 하지만 종종 어른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어린아이의 '시선'을 갖고 싶어한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무섭다고 외치면서 한쪽눈을 가리는 어린아이들처럼 '해롭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각인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놀랍고 신비한 대상'의 등장을 환영하게 된다. 

영화 '디스트릭트9'에서 보여준 외계인들의 형상은 기존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이었다. 영화의 태생이 사회, 역사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이미지가 그다지 인간에게 친숙하지 못한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우리 머리속에서 머물던 상상속의 이미지를 탈피해 버렸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증폭한 것도 무시못할 것이다.
 
아무래도 시각적인 측면에서 가장 임팩트를 주는 면은 '인간'이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그 변이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여타 영화들에서의 '변이'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신체의 특정부위로부터 시작을 하는데, '디스트릭트9'에서는 그 부위가 손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의 '경악스러운 반응'보다는 차분하겠지만, 관객들 역시 '그 놀랍고 신기한 현상'에 대해 묘한 '감정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 영화 중간중간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몸을 한번씩 카메라에 담아줌으로써 관객들이 꾸준히 그 호기심의 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투명인간, 괴물, 외계인, 유령 등을 매개체로 관객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일명 'B급 영화'들이라고 불리는 작품들도 많은데 지난해 'D-War'를 놓고도 작품성 논쟁이 한참동안 진행되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의 이슈는 '스토리의 짜임새와 흥미'보다는 오히려 '플롯(plot)의 엉성함'이었다. '디스트릭트9'이 현재 어느정도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이유 역시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토리텔링'의 힘에 있다고 생각된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고 동족의 운명을 걱정하며 아버지와 아이의 인간적 교감을 외계인 세계에 불어넣으면서 관객으로부터 '정서적 유대'를 유도한 점이나, TV시사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듯한 시작과 함께 중간중간 인터뷰를 통해 현실감을 불어넣어 주는 등의 스토리 외적 노력도 관객들의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데 한몫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실제 케이프타운에 '디스트릭트6'라고 하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흑인들을 격리 수용했던 지역이라고 하는데, 아픈 역사가 영화 제작의 동기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특정나라(나이지리아)를 안 좋은 이미지로 등장시키거나, 영화 속 흑인과 백인의 역할 설정 등에서 이 영화가 또다른 편견과 차별을 잉태한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부조리한 역사와 부당한 현실을 영화 속에 투영시키려는 의도 자체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외계인이 3년만 기다리라고 한점, 그리고 완전히 외계인으로 변이가 완료되었음을 암시해주는 마지막 장면 등으로 인해 벌써부터 후속편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각적 효과'를 충분히 경험한 관객들을 충분히 만족시키기 위해선 더욱더 강력한 '시나리오'와 '특수효과'를 선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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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1. 2. 06:31

[뮤지컬] 싱글즈 영화2009. 11. 2. 06:31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다. 비록 '성공'의 매개체가 되진 못했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영화 '싱글즈'를 보았으나, 워낙 시간이 오래 지난 탓에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29의 나이가 노처녀라고 하기엔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29살 청춘'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결혼을 그렸다. 2시간의 짧다면 짧은 공연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스토리까지 잘 구성하여 보여주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계속 몰입할 수 있을만큼 즐거운 공연이었다.

스토리 - 안개 속을 걸어봐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빈가슴

오래된 노래지만, 왠지 '젊음의 노트'가 연상이 된다. 이미 사회에 진출해서 노트가 채워질만큼 채워질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왠지 아직 아무것도 채워진 것 같지 않았다. 순간순간 그들의 미래가 변해가고 있음을 느끼며, 새로운 일상으로 그 노트를 채우기 위해 부단했다. '젊음'이 '빈노트를 채우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29세의 나이에 새 노트를 구입한 셈이다. 

음악 

연극과 뮤지컬의 차이는 음악에 있다. 연극은 그로 인해 다소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끊임없이 대사가 이어지고, 어설픈 침묵은 공연 분위기를 저해하기 십상이다. 뮤지컬에서의 음악은 '공연의 쉼표'처럼 스토리를 한번씩 정리하는 느낌을 준다. '헝겊 인형의 꿈'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동네', '빨래' 등 주옥같은 뮤지컬 음악들이 공연을 한층 더 빛내주는 경우가 많다. '싱글즈'의 음악 역시 즐겁고, 흥겨운 공연의 깊이를 한층 배가시켜 주는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친근한 리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으며, 배우가 감성적인 음악을 부를때면, 그 감정을 공유하는 듯 했다. 

웃음 

시종일관 지루함이 없을 정도로 스토리의 전개도 빨랐고, 적절한 순간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가장 웃기면서 기억에 남는 포인트는 기침하듯이 '험험' 거리면서 할말을 하는 것이다. '험험.. 내 옷 주세요.. 험험' 이런 식이다.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는데, 재치가 번뜩인다. 구체적으로 일일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 외의 장면들 역시 웃음거리가 많았다.

명장면

2시간의 공연시간이 채 아깝지 않은 공연들은 매 순간이 명장면이라고 하고 싶다. 그래도 게 중에서 꼭 한 부분을 굳이 뽑아낸다면, 공연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동거하는 이성친구 둘이서 술을 마시고 취하는 장면이었다. 여자 이름은 '동미'인데, 남자 이름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술을 마시고 그들의 애잔한 '청춘과 사랑'을 내뱉는 모습에서 왠지 선입견일 수 있지만, '저게 바로 청춘이자 젊음이 아닐까' 싶었다. 사랑에 가슴아프고, 세상에 치여서 속상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 그 가운데 항상 함께하는 젊음들이 있고, 그야말로 '우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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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0. 31. 13:55

[애니메이션] 나인, 팀 버튼 영화2009. 10. 31. 13:55

팀버튼이 제작하거나 감독한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유령신부'는 참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고, 일반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에 비해 긴 시간과 까다로운 과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영화 속 곳곳에 그 '열정'과 '노고'가 묻어나오는 느낌이었다.

특히 스톱모션의 의미를 알고 나서 '유령신부'를 접했을때는 마치 멈춰 있는 인형들이 내 상상속에서 마구 활개를 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눈을 깜빡일때마다, 표정을 지을때마다 그 작은 움직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고, 몇번이고 감탄했다.
 
하지만 뭐랄까. 한계체감의 법칙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나 할까. 사실 '크리스마스 악몽'이나 '유령신부'는 영화 스토리 자체만 놓고 봤을때 흥미진진하거나 관객을 휘어잡는 '치명적인 매력'은 없었다. 종종 '팀버튼의 세계'를 논하는 관객들이 있긴 하지만, 관객의 대다수가 공감할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은 세계최초 '3D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나 어느정도 '한계체감'의 단계에 도달했다. 영상이 아름답다는 호평이 많이 있었지만, 다소 단순한 스토리에 이렇다할 '정서적 공감'은 없었다.

애니메이션 '나인'의 예고편에 기대가 컸었다. 색다른 캐릭터가 등장해서 신선한 '모험'과 '액션'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였다. 마치 작은 쥐 '데스페로'를 연상시키는 의기넘치는 주인공 '나인'의 표정엔 결연함이 넘쳐 있었고, 그에게 제작진이 어떤 스토리를 안겨줄지 궁금했었다.

무엇보다 스토리가 아쉽다. 인간이 창조한 기계가 인류를 파괴하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버리는 역설적인 상황 설정은 그동안 수없이 보여지고 읽혀졌던 다소 '지루한 설정'에 불과하고, '선'과 '악'의 분명한 대비를 통해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는 결론은 그 스토리가 단조로웠다. 어떤 특별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니메이션 '월E'에서 보여주는 따뜻한 웃음과 인간애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액션 씬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기엔 캐릭터들의 '카리스마'가 너무 부족했다. 

수많은 고심을 통해 등장했을 캐릭터 디자인과 그 움직임들이 단조로운 구성과 스토리 때문에 관객들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채 묻힌다는 것은 진정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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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27. 21:12

아홉살 인생, 윤인호 영화2009. 9. 27. 21:12

책으로 읽은지가 꽤나 오래되어서 내용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버린건지, '동심'이라는 것은 그저 막연한,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가 되었다. 마치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은 채, 태어날때부터 어른이었던 것처럼. 세월의 풍상에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바위처럼 사람들은 변한다. 나 역시 어린시절과의 감정적 교감을 더이상 하지 못하는 지금이 서글프기도 하다.
 
아홉살이라는 나이. 그 시간의 차이만큼이나 나에게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고, 내 곁의 사람들 역시 새로 생겨나기도 했고, 떠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한번 초등학교 5학년 때 쓴 일기장을 들추어 보았을때 느꼈던 낯설음은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아홉살 인생을 살고 있는 소설 속 그리고 영화 속 여민이는 아마도 또래의 아홉살쟁이 친구들과는 다른, 훌쩍 커버린 어른과도 같았다. 생각도, 말투도, 행동들이 마치 30년은 살아봤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이루어졌다. 마치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만 같은 그 담담한 태도는 순간 놀랍게 느껴지면서도, 이미 '어른'이 된 내 자신과 비교가 되기도 했다.
 
마냥 순수하고 꾸밈없는 '동심'을 간직해야 할 '아홉살 인생'에는 '인생'이라는 말에 담겨져 있는 삶의 무게가 있었다. 가난한 엄마와 무시하는 선생님이 있는 학교와 집, 그 어느 곳도 여민이가 쉴 곳은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무거운 현실을 정면으로 맞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아홉살 아이'다. 그 아이는 가난한 엄마를 동정하고 연민하며, 감정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여자 아이 앞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은폐시키지도 않는다.
 
보호받고 사랑받으면서 성장해야 할 어린 아이들이 차가운 현실에 내몰리는 일은 참으로 안타깝다. 영화 속 여민이는 꿋꿋하게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버티지만, 많은 경우 보호받지 어린 '동심'은 스스로 은신처를 찾는 그 절절한 '삶의 과정'에서 여러 모로 많은 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주게 된다. 지금 읽고 있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소설 속의 조지나도 여민이와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다. 아직도 두 아이의 입장에 처해있을 수많은 어린 '동심'들에게 항상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라며, 우리 사회가 그 아이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보살필 줄 아는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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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20. 06:58

국화꽃 향기, 장진영 영화2009. 9. 20. 06:58

얼마전 가슴아픈 소식이 있었다. 영화배우 장진영씨가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사인은 '위암'
 
사인이 '위암'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열연했던 영화 '국화꽃 향기'가 주목을 받았다. 영화 속에서의 장진영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영화 속에서 박해일이 있었듯이, 실제의 장진영 옆에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남자친구가 아닌 남편이라는 설도 있다.)

대부분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오는 '새드 엔딩(sad ending)' 영화의 큰 특징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대비효과를 노린다는 점이다. 나는 잭 니콜슨 주연의 '애정의 조건'이라는 영화에서 그 점을 절실히 느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일상적인 팍팍함이 있긴 하지만 천성이 발랄하고 생명력이 있었던 영화속 여주인공 데보라 윙거를 바라보다 그녀의 죽음에 큰 슬픔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서점을 배경으로 마치 연극 무대를 연상시켰던 영화의 첫머리 부분은 경쾌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 분위기가 계속 지속되어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 했으면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소 어색하고, '하하', '호호'거리는 느낌은 이야기가 시간에 따른 서술이 아닌, 어릴 적 풍경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액자 속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이랄까. 아마도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애정의 조건'에서와 같은 전, 후반부의 극적 대비는 사실 없었다. 영화 속 장진영의 관점에서 보면 한편의 '인간극장'처럼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그녀의 불행한 운명이 줄곧 그녀 곁을 맴돌았다. 행복은 잠깐이지만, 슬픔은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미처 관객에게 그 행복을 공감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못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운명'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담담하게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이왕이면 살 가능성이 높은 쪽을 택해야지'

영화 속 장진영의 생각이었다. 스스로 살기 위해 '아이'를 희생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그녀는 확고했다. 이기적 유전자론의 관점에서처럼 인간이 진정 유전자들의 존속을 위한 생존기계일 뿐이라면, 새로운 유전자(아이)를 탄생시키고, 그 양육의 책임은 다른 사람(남편)에게 떠넘김으로써 그 목적을 다한 것이 된다. 그녀가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큰 손해지만, 아이가 살아날 확률이 자신이 살아날 확률보다 높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아이로 대체하는데 조금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 이론에 따르면 장진영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이성 관점에서 보자면 '숭고한 희생'이나 이기적 유전자론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절차'가 되는 셈이다. 읽고 있는 책이 그런지라, 그런 흥미로운 생각도 들었다. 

살아있는 남편에게 '아이'를 남기고 떠나는 것이 훗날 남편에게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속 박해일이 훗날 아이에게서 장진영의 채취를 느끼면서 살아가도록 유도할 수 있겠지만, 박해일이 누구보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장진영이다. 아이를 희생시키고 스스로가 살아날 확률이 어느정도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살아날 수만 있다면 또다른 유전자 복제(아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기적 유전자론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없다. 그녀의 선택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죽어가는 그녀만큼이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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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