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별 생각없이 그저 흥미롭게 읽어나갔는데, 책 뒷편에 부록처럼 딸려있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과 작가 인터뷰에 관한 글을 읽으니 머리가 아파온다. 그저 '재미'를 찾는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소화해내기도, 또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책을 읽고 난 후기도 마지막까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에필로그를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에필로그 하나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대극장의 개관과 개관 기념으로 열렸던 그날의 공연. 정작 공연보다도 극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취재기자와 공연에 초대된 문화예술인, 정치가,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의 짧은 인터뷰. 기적의 건축술이라는 둥 금세기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둥 우리 건축학의 수준에 세계가 놀랐다는 둥 언론의 유난스런 호들갑과 모든 공을 이름없는 한 벽돌공에게 돌린 건축가의 겸손. 그녀가 죽은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이쯤 되면 뭔가 훈장이라도 하나 추서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관리들의 관습적인 반응, 훈장을 주긴 주되 산업훈장을 줄 것이냐, 아니면 문화훈장을 줄 것이냐를 두고 벌인 부처간의 논쟁. 뒤이어 쏟아진 벽돌을 주제로 한 수많은 학술회의와 연구논문. 앞서 언급한 '여왕을 찾아서'란 탐사대의 조직과 벌에 쏘여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을 했지만 끝내 목숨을 잃은 한 탐사대원. 그의 어미니의 울부짖음. 이윽고 대극장을 지은 모든 원인을 제공한 남북회담. 그러나 호텔 직원이 방을 잘못 배치하는 바람에 극장이 보이는 반대편에 투숙하게 된 북쪽의 특사들, 그래서 실은 아무것도 못 보았다는 믿을 수 없는 후일담. 호텔 직원의 해고와 의전 담당자의 문책. 춘희와 벽돌에 관련된, 봇물처럼 쏟아져나온 서적과 드라마의 제작. 원래는 주인공의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이 넘지만 스타를 캐스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십팔 킬로그램으로 줄여야 했던 방송작가의 고민.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벽돌보다는 도자기가 더 예쁘지 않느냐고 해서 할 수 없이 춘희를 도자기를 굽는 주인공으로 바꿔야 했던 대대적인 윤색작업. 다시 이름이 촌스럽게 춘희가 뭐냐고 해서 마지못해 주인공의 이름을 애니로 바꿔야 했던 대대적인 수정작업.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직업이 씨팔, 가오 상하게 트럭 운전사가 뭐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제벌 2세 사업가로 바꾼 대대적인 밤샘작업. 그렇게 해서 결정된 사십팔 킬로그램의 가난한 도예과 여대생과 제벌 2세의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슬픈 로맨스. 시청률과 대중성의 법칙. 이미 예정된 드라마의 대히트와 대중들의 무의미한 눈물.....
'유쾌한 하녀 마리사'처럼 정말 아무생각없이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비유와 묘사와 같은 표현력이 때론 너무 기가막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스스로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소설은 소설만의 색깔이 있는 것 같다. 도무지 영화로도, 만화로도 각색될 수 없는 소설 그것만의 희열이랄까.
작가의 수상소감평도 동시에 싣고자 했으나, 책이 수중에 없는 관계로 없던 일로. 책은 '철가면'에게로 넘어갓다. 그 책이 그곳에서 다 읽힐 수 있을지 다소 걱정이 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