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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3. 13:17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도서2009. 9. 23. 13:17

아침을 먹을때 TV를 본다.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인간극장'이나 '세상에 이런일이(재방)'. 두 프로그램은 우리들의 일상을 취재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지만, 들여다보면 반대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현실 속의 지극한 현실스러움과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각각 하고 있는 셈이다. 보통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이성적, 과학적 사고로는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힘든 일을 말한다. 과학이 비현실적인 사건들의 원인을 100% 규명해내지 못하는 이상(물론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마법에 홀리듯 신비롭고 경이적인 스토리에 빠져들어갈 것이다.
 
어제 아침 '세상에 이런일이'의 주인공은 일본의 한 애완견이었다. 이미 일본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바가 있다고 한다. 이른바 '수학천재' 강아지인데, 덧셈, 뺄셈, 곱셈 등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보고 있자니 몹시 신기했다. 로그와 같은 복잡한 계산은 못했지만 기본 계산을 하는 것만으로도 경이적인 일이었다. 애완견의 주인은 잠시 후 더 놀라운 소리를 했다. '천재' 강아지를 '초능력' 강아지로 격상시키는 발언으로, 주인이 마음 속에 간직한 숫자를 읽는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마술만 보고도 신기해마지 않는다. 관객들이 눈치채기 힘들 정도의 재빠른 손놀림과 몸동작으로 마치 비현실적인 현실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저 '천재' 강아지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주인이 다소 욕심을 부린 것 같다. 사람도 읽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강아지가 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결국 그것은 '마술'이라고 확신한 제작진의 집요한 조사 끝에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강아지가 짖을때 주인이 머리를 살짝 머리를 쳐드는 행위를 함으로써 강아지에게 사인을 주는 셈이다. 그것으로 그 행위가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려울 듯 싶다. 마치 기도하듯이 간절히 애완견이 그 숫자를 맞추기를 기대하다보면, 내 마음을 읽는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이야기는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는 소리다. 어쩌면 제작진의 누군가는 다분히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사람이기에 반드시 다른 원인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는지 모른다. 이를테면 '인류의 탄생과 진화'에 대해 양분되는 주장에 비유를 하자면 '진화론' 쪽에 가깝다고나 할까. 갑작스럽게 무엇인가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고, 그 과정은 항상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태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모든 생물체들에게서 발생하는 행위들을 아우르는 이론이 가능할까.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이지만, 수많은 미스테리와 예외 현상 때문에 반론 내지는 불신이 존재한다. '동물학'과 '생물학' 등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진 끝에 '진화론'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이론으로 도킨스의 '유전자론'이 생겨났다고 한다. 저자는 책의 제목을 '이기적 유전자'로 명명했지만, 여러차례 '이기적'이라는 용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면서 의미하는 뜻은 아니라고 밝힌다. '자기 복제'를 통해서 종의 번식을 우선시하는 유전자의 '행위 알고리즘'을 살펴보다 보면 결과적으로 마치 '이기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처럼 인식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기적'이라고 하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매번 행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유전자에게 있어 '이타적'이라고 하는 말은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 역시 마치 '이타적'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일뿐, 유전자의 자기복제와 자기보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번식에 도움이 된다면, 공생도 하고, 서로에게 도움도 준다는 논리다. 

특히나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들의 형체는 그저 '생존 기계'일 뿐이고, 그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들의 껍데기 역할만을 한다는 주장은 꽤나 신선하다. 사람이 과연 이성을 가진 '생각하는 존재'인지, 아니면 유전자에 의해서 '프로그램된 로봇'과 같은 존재인지에 관한 철학적인 물음까지도 접목되는 논의이기도 하다. 철학적인 주제를 과학적인 분석과 논리로 증명해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 역시 큰 범위에서 동물이라고 한다면 여러 동물들의 사례는 가히 충격적이기도 하다. 인간은 그저 '이성의 통제'를 통해서 스스로의 '운명'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가진 존재일 뿐, 인간의 본성 자체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인간만은 예외로 적용할 수 밖에 없다고 느꼈던지 저자는 '밈'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키며, 문화를 만들어가며 시대와 시대를 엮는 인간들만이 가진 '異色'을 유전자인 '진'과 대비히 '밈'이라고 명명했다. 문화와 책 등을 통해서 그 기억을 공유하며 유전자가 지배하는 육체와는 또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때로는 '진'과 '밈'이 충돌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며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논리 전개에서 다소 경계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과정이 '추측' 내지는 '가정'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고, 수학적 계산을 동원하지만 샘플과 표본 집단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통계의 오류'를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또한 역사적 결과를 두고 끌어맞추다 보면 그럴듯한 스토리가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하면 안된다. 여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씌여진 '픽션 아닌 픽션' 다빈치코드를 읽는 것과 같은 긴장감이 뒤따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난해한 용어들과 다소 어려운 번역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이해력도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읽어보고 매끄럽지 못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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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20. 23:19

육일약국 갑시다, 김성오 도서2009. 9. 20. 23:19

육일약국이란 일주일동안 6일동안만 문을 연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남은 하루, 즉 일요일은 항상 '주님을 위한 날'이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기독교가 이래저래 여러 이슈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곳곳에는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보탬이 되는 분들이 많다. 어떤 종교인가를 떠나,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사랑을 베풀고, 또 자비를 베푸는 분들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육일약국 갑시다'는 조그만 변두리 약국인 '육일약국'을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삼기 위해 김성오 부사장님이 택시를 탈때마다 했던 말이라고 한다. 처음엔 큰 용기가 필요했겠지만, 결국 '기발한 아이디어'는 꾸준한 실천력을 등에 업고 성공을 했다. 약국을 하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고,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노력을 하며, 가난한 와중에서도 기부를 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약국 경영에 성공을 거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김성오 부사장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 기업가도 아니다. 부와 명예의 사이에서,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의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을 줄 아는 분인 것 같다. 오히려 이타적인 면모를 이롭게 활용한다고나 할까.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때, 삶의 '좋은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책의 중간중간에서 엿보이는 평범한 고민들 때문인 것 같다.

약국을 포기하고 교육 사업에 뛰어든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나, 경영자로서 직원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직원의 입장에서 그런 경영자를 만나는 것도 큰 복인 듯 싶다. 경쟁하고 변화하는 것이 스스로를, 그리고 집단을 발전시키는 훌륭한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채찍을 들고 '처벌'하는 것과 '칭찬'을 하며 마음 속에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저마다 기업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성공 전략'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단순히 손놀림이 빨라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고 하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한다면, '멍든 고래'보다는 '춤추는 고래'에게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공동체를 사는 '사회적'인 우리들은 누구도 '공멸'을 원하지 않는다. 무한한 욕구와 한정된 자원을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타주의' 또는 '희생'을 하나의 미덕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탐욕스럽고, 비열하겠지만, '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개체가 많을수록 공동체는 안정적이 된다. 하지만 '성직자'나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무조건적인 희생'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바람직한 인간상은 김성오 부사장님처럼 '이타적인 면모를 이롭게 활용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그런 활용이 하나의 '룰'이 되도록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공헌을 많이 하는 기업이 결국엔 수익이 더 늘어나게 되거나, 소신을 갖는 정치인이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윈-윈' 전략인 셈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사회 공헌'을 하는 기업을 '기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옳지 않다. '윈-윈' 전략이야말로 모두에게 바람직하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 시스템의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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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13. 08:15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 도서2009. 9. 13. 08:15

책을 끝까지 읽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내,,,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공감'을 강조하지만, 정작 책 안에는 어떤 '공감'도 없었다.

티핑 포인트 : 소리소문없이 확신되는 무언가로 인해, 어느 순간 극적인 변화상황이 연출되는 것. 70년대 미국 북동부에 살던 백인들이 밀려드는 흑인들을 피해 어느 순간 교외로 모조리 빠져나간 현상을 가리키는 도시인구사회학의 용어. 경제심리학적 용어로는 어떤 아이디어나 상품이 소리소문없이 스며들어와 어느 순간 시장을 잠식해버리는 양태.

다섯살 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창의성'을 가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어떤 선입견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각이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불어 어느정도의 경쟁이 있어야만 창의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어느정도 일리있는 말이지만, 사실 무리하게 '경쟁'과 '창의성'을 연계시키는 것은 '경쟁'이라는 요소를 다소 강조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경쟁을 통해 일의 능률이 오를 순 있지만, '창의성'과 관련해서 직접적인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를 예로 들었는데, 1부리그의 최하위 2팀이 2부리그로 전락하는 절박함 때문에,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우리나라 리그에 같은 규정을 적용하면 '창의적인 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창의적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뛰는 것이다. 뭐든지 더 열심히 하려고 할때라만 '창의적인 생각'도 떠오르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면 그 열심이라는 말을 두가지 의미로 해석해보겠다. '경쟁'을 통해 심리적인 압박 때문에 생기는 '열심'과 열정으로 인한 심리적인 자유 때문에 생기는 '열심'으로.

'인문'과 '경영'이라는, 왠지 뜻을 같이할 것 같으면서도 거리감이 있는 두 분야의 만남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참 궁금했는데, 자기계발서 한권을 읽은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항상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며 과거에 어떤어떤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바를 성취했다는 식이다. 모든 분야가 큰 차이는 없지만, '경영'은 특히나 성공한 자의 역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성공한 기업'과 '성공한 개인'의 성취 요소에 대해서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똑같은 과정으로 다른 결과를 낳은 사례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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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9. 11. 09:06

경제학 카페, 유시민 도서2009. 9. 11. 09:06

여러 유용한 정보들이 많은 책이었다. '지식 소매상'이라고 자칭하는 저자의 말처럼 여러가지 경제 현상을 쉽게 풀어썼고, 경제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담았다.

흔히들 케인즈 학파니 시카고 학파니 하면서 경제학파를 논하지만, 실상 복잡한 경제 현실을 감안할때 사안에 따라 그 의견이 다양하게 개진될 수 있다고 본다. 정치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도 '이분법'을 좋아한다. '보수적인 색채' 혹은 '진보적인 색채'가 있는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보수 또는 진보적인 의견이기에 뜻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대체할만한 더 완벽한 경제시스템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자본주의 테두리 안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제학자, 또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모두 공감하는 바이다. 결국 경제정책을 주관하는 정부가 어느정도의 시장 개입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춘 시장은 빈부의 격차를 발생시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성장'의 시장에서 가장 못사는 사람이 '분배'의 시장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보다 더 잘 살게 되는 날이 온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일까. 설령 만에 하나 그런 결과가 도래한다고 해도, 경제 주체의 행복과 삶의 질은 단순히 절대적인 '부의 양'에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의 상대적 차이에서 오는 박탈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우리가 '공동체'에 살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공동체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서로 사회적 관계를 가지며, 서로의 삶에 심정적, 물질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곳이다. 모두가 할 수 없을때는 문제가 안되지만, '너는 되고 나는 안된다'는 차이에서 오는 허탈감을 무시할 순 없다.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던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경제적인 가치를 따질때 '비용-수익' 계산이 반드시 뒤따르지만, 일반적으로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환경'이라는 미래 가치는 '간과'되기 마련이다. 아직까지도 환경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삶의 복지도 '자연의 생태'를 거스르는 방향이 되어서는,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자 '유시민'이 향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판타지'를 등에 업고 또다른 센세이션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의 미래가 어느 곳으로 흐를지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다. 그가 미래의 대통령으로서의 역량을 갖추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에 대해 판단할 길이 없지만 다만 경제학자로서 책에서 보여주는 균형잡힌 시각만큼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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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양비론'이라는 게 있다. 황희 정승의 '니(A)도 맞고, 니(B)도 맞다'가 '양찬론'이라면, '니도 잘못했고, 니도 잘못했다'가 양비론이라고 할 수 있다. 황희 정승의 일화는 '중용'의 미덕을 잘 보여준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양비론을 잘못 전개하면 욕만 먹고 실속은 없다. 그것은 자칫 판단 유보를 통해 책임 회피를 하는 것을 비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 하루를 온통 투자했을만큼 관심을 갖고 읽었다. 경제에 관해서는 빈한한 지식이지만, 저자의 논리를 잘 이해하고, 또 어떤 맹점은 없는지 차분하게 살펴보려고 애썼다. 물론 이게 아니다 싶어도, 아직은 저자의 논리를 반박할 만한 지식과 논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서 내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 

진보세력을 향해 이런저런 쓴소리를 많이 했지만, 저자는 진보의 입장에 서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교묘하게 양다리를 걸친 모양새지만, 이런 사람이 더 사악'하다고 성토할 만하다. 경제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논리를 접해볼 수 있어 유용한 시간이었다. 

지식을 쌓는 것은 추운 겨울에 두텁게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추위를 견딜 수 있을만큼 더 강인한 체력을 기르는 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그런게 아니라면 옷을 사서 입는게 좋다. 지식이 없는 채로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지식을 쌓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다. 종종 '효용성'을 두고 회의에 빠질때도 있겠지만, 우리 삶의 순간순간은 결코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임을 잊지 말도록 하자. 

이런저런 이론과 수식을 통한 기술적인 분석을 해내는 경제학도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경제주체로서 '경제의 흐름'을 등한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3대 자질 중 하나로 '경제 지식'을 꼽았다. 지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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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