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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1. 17. 13:20

인간의 경제학, 이준구 도서2009. 11. 17. 13:20

정운찬 총리가 돌연 국무총리 후보에 오르면서 여러가지 논란과 잡음들이 있었다. 학자의 신분이었고 국내 최고의 대학 총장이었기에 그의 인격이나 청렴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나. 그의 삶의 여정 곳곳에서 드러나는 비리와 오점 때문에 모두가 크게 실망했다. 얼마 전엔 '731부대' 실언으로 인해 '역사 의식'마저 의심받고 있다. 

정 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한반도대운하' 및 '4대강살리기 사업'의 경제성에 대해서도 여러차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라는 직함을 둘러쓰고 변신한 그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막강한 권력 때문에 원칙과 소신을 버려야 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운찬 총리와 함께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분이 계셨으니 바로 이준구 교수이다. 그에게도 '감투'에 연연하는 인간 본성이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4대강살리기'와 '감세정책'등 여러 정부 정책들에 대해서 맹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생각 하나' 밝히는데도 힘이 드는 세상에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지 않는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라고 한다면 '자본주의'를 맹신하고,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국부의 증강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이 경제학자 본연의 업무인냥 각종 지표의 나열과 비교를 통해 '빵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보니 규제로 상징되는 정부의 개입을 싫어하고,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무한경쟁'을 부추긴다. 합리적인 인간들이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만 쫓다보면 결과적으로 '공익'이 실현되리니, 남들 사정이야 아랑곳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배 채우기'에만 충실하라고 독려한다. 

이준구 교수는 '36.5도씨 인간의 경제학'이라는 다분히 인간적인 책 제목을 달고, 행태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학 모델'을 소개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어왔던 내용이지만 저자도 이제 막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학문으로 그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을 뿐, 누구나가 쉽게 경험했던 내용들이다. 심리학 서적을 통해서, 혹은 주위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통감하곤 한다.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에 적용해 보려는 의지는 신선하다. 경제학이 디지털이라면 심리학은 아날로그다. 우리는 '인간의 심리'를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요즘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보편성'에 기댄 통계를 활용해 어떤 법칙을 이끌어내고, 수치화하여 경제학 이론과 접목시키다 보면 언젠가 저자가 말하는 '행태경제학'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행태경제학'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전통경제학의 헛점을 다음 두가지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1. 인간은 때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2. 인간은 항상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그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책에서는 그러한 경우를 사례로 들며, 그것이 전통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적 인간'과 대치된다고 이야기한다. 

1. 종이를 50번 접었을때의 두께에 대해서 인간은 짧은 시간 안에 합리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2. 워렌 버핏은 전 재산의 85%나 되는 36조원의 거금을 빌게이츠 부부가 만든 자선사업재단에 기부했다. 

휴리스틱 : 현실의 상황을 판단하는 일이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단순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먹구구 원칙.
대표성 휴리스틱 : 사람에 대한 묘사가 특정직업의 전형적 특성을 얼마나 잘 대표하는지에 따른 판단법.
가용성 휴리스틱 : 사용할 수 있는 기억. 기억에 떠오르는 사건 및 상황을 고려해 판단하는 방법.

랜덤한 100개의 봉투를 집을때 가장 큰 금액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37번째까지의 가장 큰 금액을 기억한 뒤에 38번째부터 그보다 더 큰 금액이 나오면 선택하는 것이다.

닻내림효과 :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자 그 부근에서 맴돌게 됨.
부존효과 : 어떤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
틀짜기효과 : 똑같은 상황이라도 여러가지 다른 인식의 틀이 있음.
심적회계 : 어떻게 생긴 돈이고 어디에 쓸 돈인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기록한다고 보는 개념.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 - 자제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자유를 포기하는 고전적 사례

'나를 단단하게 묶어 주게. 그래서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족므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말이지. 내가 풀어 주기를 간청하면 더 많은 끈으로 더욱 단단히 묶어 주게.'

현상유지편향 :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꺼려하는 습성.
기정편향 : 사람들이 귀찮음을 싫어하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것을 그대로 따르려는 경향.

몫 나눌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한 사람이 몫을 나누고 다른 사람이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할인율 : 미래에 주고받을 금액을 현재의 가치로 계산하는 것.
효율시장이론 : 모든 투자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주식 가격은 기초가치 수준에 맴돌아 대박이 어려움.
투자방법 : 쌍둥이주식 공략, 가치주전략, 모멘텀전략

주식프리미엄의 수수께끼 : 주식의 수익률이 채권수익률보다 현저히 높았으나 투자비율은 그렇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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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1. 15. 23:26

거인의 정원, 오스카 와일드 도서2009. 11. 15. 23:26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가 끝나면 거인의 정원에 가 놀았다. 그 정원은 푸른 잔디가 깔린 넓고도 매력적인 정원이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꽃이 되었고 별이 되었다. 12그루의 배나무가 있어 봄에는 분홍빛, 진주빛 꽃망울이 터졌고 가을에는 달콤한 과일이 열렸다. 새들은 나무에 앉아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고 그 노래를 듣곤 하였다.
"정말 행복해!" 아이들은 서로서로 외쳤다.

어느 날 거인이 돌아왔다. 그는 7년전 친구인 코니시 가(家)를 방문했었고 거기에 머물렀었다. 그 7년간 그는 모두에게 말했다.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야만 하겠다고. 그리고 그러기로 결심하였다. 그가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정원에서 놀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하는거야?" 거칠게 소리 질렀고 아이들은 도말쳤다.

"내 정원은 나만의 정원이야. 나외에는 아무도 놀 수 없어.".

그래서 그는 정원 주위에 높은 담을 쌓았고 게시문을 붙였다.
[무단침입자는 고소함]
그 거인은 매우 이기적이었다.

이제 불쌍한 아이들은 놀 곳이 없었다. 길에서 놀려고 했지만 너무나 더럽고 돌 투성이였다. 그래서 길을 좋아하지 않았다. 방과후에는 높은 담 주위를 배회하며 저 안의 아름다운 정원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저기가 좋았었는데."

그리고 봄이 왔다. 대지는 작은 꽃과 작은 새로 찼다. 아직도 이기적인 거인의 정원만은 겨울이었다. 아이들이 없기에 새들도 노래하려 하지 않았고 나무도 새순을 터트리는 것을 잊었다.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머리를 내밀었으나 그 게시문을 보고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결국 땅속으로 되돌아가 다시 잠들어 버렸다. 좋아하는 자들은 오직 눈과 서리뿐이었다.

"봄은 이 정원을 잊었나 봐. 우리는 1년 내내 여기서 살 수 있어." 눈과 서리가 말하였다.

눈은 거대한 외투로 잔디를 덮었고 서리는 모든 나무를 은빛으로 칠했다. 그리고는 함께 살자고 북풍(北風)을 초대하였다. 모피로 감싼 북풍이 왔고 하루종일 정원에서 포효하였다. 그래서 굴뚝 통풍구가 굴러 떨어졌다.

"멋진 곳이야. 우박보고 오라고 해야겠다." 북풍이 말했다.

그래서 우박이 왔다. 매일 3시간씩 저택의 지붕을 두들겼고 대다수 지붕 슬레이트가 깨졌다. 다음에는 있는 힘을 다하여 정원에서 뛰어다녔다. 우박은 은색 옷을 입었고 그의 숨결은 얼음과 같았다.

"봄이 왜 이리 늦는지 모르겠어." 거인은 창가에 앉아 얼음투성이의 정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절의 변화가 있었으면" 그러나 결코 봄은 오지 않았다. 여름도. 가을은 많은 정원에 황금빛 열매를 주었으나 거인의 정원에는 오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이기적이야." 가을은 말했다.

그래서 그 곳은 항상 겨울이었다. 북풍과 우박과 서리와 눈이 나무에서 나무로 춤을 추었다.

어느 날 아침 거인이 어떤 사랑스러운 음악을 들었을 때 그는 막 깨어나 있었다. 그 소리는 너무나 달콤했다. 왕의 음악대가 지나가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소리의 주인공은 그의 창밖에서 노래하는 정말로 작은 방울새 한 마리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정원에서 새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거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러자 우박이 그의 머리 위에서 춤추는 것을 멈추었고 북풍이 포효를 멈추었고 열린 창을 통해 향기가 들어왔다.

"마침내 봄이 온 것 같아." 거인은 침대에서 뛰쳐나와 밖을 보았다.

무엇이 보였는가?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해 아이들이 기어 들어와 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었다. 모든 나무마다 작은 어린이가 한명씩. 아이들이 다시 와 나무는 무척 기뻤다. 그리하여 나무는 꽃으로 덮혔고 가지는 아이들 머리 위로 우아하게 물결쳤다. 새들이 주위로 날아와 환희에 울부짖었다. 꽃도 푸른 잔디에서 나와 미소 지었다. 사랑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한쪽 구석은 아직 겨울이었다. 정원의 외진 구석이었다. 거기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그는 매우 작아 나뭇가지에 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슬피 울면서 나무 주위를 맴돌기만 하였다. 불쌍한 나무는 아직도 서리와 눈으로 덮혀 있었고 매서운 북풍에 몸을 떨고 있었다.

"올라와, 꼬마야." 나무는 말하면서 오를 수 있도록 가지를 내려 주었으나 아이는 너무나 작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거인의 마음은 녹아내렸다.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 왜 봄이 찾아오지 않았는지 이제 알겠다. 저 불쌍한 아이를 나무에 올려 줘야지 그리고 담을 허물어야지. 내 정원은 영원히 아이들의 놀이터가 돨거야..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진정 뉘우쳤다.

그리하여 그는 계단을 내려가 아주 조용히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를 보고 깜짝 놀라 도망을 쳤으며 정원은 다시 겨울이 되었다.

단 한 아이만 우느라고 거인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에 도망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몰래 그의 뒹로 다가선 거인은 친절하게 아이를 잡은 다음 나무에 올려 주었다. 그러자 나무는 꽃이 피기 시작했고 새들이 와 노래하였다. 작은 아이는 팔을 활짝 펴 거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키스하였다. 거인이 더 이상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본 아이들은 다시 뛰어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봄도 돌아왔다.

"이젠 너의 정원이란다. 작은 꼬마야." 말하고는 큰 도끼를 가져와 담을 부쉈다. 사람들이 12시에 장보러 갈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서 거인이 아이들과 노는 것을 보았다..

긴 하루를 날마다 정원에서 지내고 날이 저물면 거인에게 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 작은 아이는 어디 있자? 내가 나무 위에 올려준 아이말야."

그 아이가 키스를 해 주었기에 거인은 그를 가장 사랑하였다.

"우리도 몰라요. 그 아이는 멀리 가 버렸어요." 아이들이 대답하였다. "내일 여기 오라고 꼭 말해 줘."

그러나 아이들은 그를 모르며 전에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거인은 매우 서글퍼졌다.

오후만 되면 학교가 끝난 아이들은 와서 거인과 함께 놀았다. 그러나 거인이 사랑한 작은 아이는 결코 오지 않았다. 거인은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했다. 그는 아직도 그의 첫사랑 작은 아이를 보았으면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며 가끔 말하곤 했다.

"그를 다시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말하고는 했다.

여러 해가 흘렀고 거인은 나이가 많아져 쇠약해졌다. 더 이상 놀 수 없어서 큰 팔걸이 의자에 앉아 정원을 보곤 했다. "정원에는 이쁜 꽃이 많지만 아이들이야말로 진정 이쁜 꽃이야."

어느해 겨울 아침 거인은 옷을 입다가 창밖을 보았다. 이제는 겨울이 싫지 않았다. 봄이 잠을 자고 꽃이 휴식을 취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기에.

갑자기 그는 놀라서 자신의 눈을 부볐다. 그리고 보고 또 봤다. 정말로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정원 저편에 사랑스러운 하얀 꽃이 만발한 나무가 보였다. 가지에는 금색, 은색 과일이 달려 있었고 그 밑에는 그가 사랑하는 작은 아이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거인은 너무나 기뻐서 밑으로 정원으로 달려 내려갔다. 급히 잔디밭을 가로질러 아이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섰을 때 그의 얼굴을 분노로 달아 올랐다.

"누가 감히 너를 다치게 했느냐?"

아이의 양 손바닥에는 두 개의 못 자국이 그리고 작은 발에도 그랬다.

"누가 감히 너에게 상처를. 말해 봐. 나의 긴칼로 그 녀석을 베어버릴테니까." 거인이 소리를 질렀다.

"안돼요. 아것은 사랑의 상처에요."

"누구시오?" 신비한 경외심이 그를 엄습하여 작은 아이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미소지으며 말하였다.
"그대의 정원에서 나를 놀게 해 주셨으니 오늘은 나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나의 정원으로. 낙원으로."

그날 오후 아이들이 왔을 때 거인은 하얀 꽃에 뒤덮힌 채 나무 밑에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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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1. 15. 21:28

아홉살 인생, 위기철 도서2009. 11. 15. 21:28

'동심'이 흐르는 곳엔 언제나 잔잔한 웃음과 감동이 있다. 가끔 '동심'이 아름답다고 호들갑떠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과연 내 '어린 시절'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의아해질때도 있지만... 어쨌든 어른들의 삶과 일상이 아이들의 그것보다 팍팍한 건 사실이다. 물론, 아이들 입장에선 그 의견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논리야, 놀자(?)'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위기철'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가만히 기억을 끄집어내보니 유명한 작가 '공지영'의 첫번째 남편이었던 분이다. 좋은 글들을 쓰고, 글 속에 녹아있는 깊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인데, 역시 '결혼의 성공'이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양귀자의 '희망'을 읽을때처럼 읽는 도중 웃음이 나왔다. '아홉살 인생'은 이번이 책으로 두번째 접하는 것이며, 얼마전에 영화를 보았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시기에 따라서 다가오는 의미와 재미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소설 속 주인공이 여민이이긴 하지만 소설속의 화자는 아홉살의 여민이라기보다 스물아홉살의 여민이, 혹은 스물아홉 여민이의 추억 속에 있는 여민이다. 그런 화법을 통해 단순히 이 이야기가 '허구' 속의 상상이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이자, 현실 속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난이 성숙을 낳는다'는 말처럼 어려웠던 집안환경 때문에 여민이는 또래의 어린아이들보다 한층 더 성숙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성숙은 마치 좌우측의 높이가 맞지 않는 수레바퀴처럼 위태로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곤 한다. 이를테면 왠지 그런 생각이 대견하지만, 알고보면 현실성이 없는.. 진지해 보이지만, 엉뚱한 결론에 이르는 이야기 말이다. 허황된 친구의 말에 어른스럽게 코웃음치다가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이르러서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어린아이같은 해맑은 질문을 던지다가도 이내 그럴듯한 생각을 펼치곤 하는... 직접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메모해두었던 책 속의 몇 내용들이다.

'얘야, 너도 어른이 되어 보면 세상에 화가 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해하게 될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화를 내게 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결국 자신한테 화를 내는 거란다. 자신이 밉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미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그 속물적인 여자를 미워할 수 없는 속물적인 내가 나는 진저리쳐지도록 미운 거야!' - 골방철학자, P108

교장 선생님은 큼큼 헛기침을 했다. 
"너는 상상력이 아주 좋구나. 그것두 중요한 일이지. 얘, 그런데 너희 집을 그렸다면서 어째서 그림 제목을 '꿈을 따는 아이'라고 붙였니? 제목이 아주 근사한걸!"
어?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여운이가 밥 먹으러 안 오고 꾸물대는 모습을 그려 놓고 제목도 '꾸물대는 아이'라고 붙였는데, 내 형편없는 맞춤법이 그만 제목을 근사하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실토하자 교장 선생님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참 이상한 일이야. 뭔가 아쉽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데 사랑을 하면 더욱 아쉬워지게 되거든. 그래서 때때로 악당이 되어 버리지. 공연히 트집을 잡고, 화를 내고....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야.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속만 부글부글 끓이다가 그것 때문에 자존심 상해하지.' - 윤희누나, P163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잘해주든 못해주든, 한번 떠나 버린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슬픈거야.....' - 아버지, P173
아아, 아버지의 그 말은 얼마나 내 고민의 정곡을 찔렀으며, 나를 얼마나 슬프게 했던지! 내 눈에서는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늘 우리는 창 넓은 찻집에서 다정스런 눈빛으로 천천히 살아온 나날처럼 따뜻한 커피를 우아하게 마시지만, 내일은 돼지처럼 뚱뚱한 수사관에게 끌려가 곰팡이 냄새 푹푹 나는 지하 밀실에서 똥오줌 질질 싸며 고문을 받을 수도 있다. 험상궂은 세상의 낭만이란, 허망하게 깨지기 쉬운 마른 낙엽 같은 것.... 빠작
!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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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1. 15. 14:49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도서2009. 11. 15. 14:49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개의 찬란한 태양'도 읽어봤지만, 개인적으로 호세이니의 소설 두 편을 비교한다면 '연을 쫓는 아이'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때는 약간 '막장스러움'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인 면에서 스토리 구조가 탄탄하게 느껴졌고, 흥미진진했다. 더불어 범인들의 감정과 인내심을 뛰어넘는 하산의 '한결같은 마음' 때문에 때때로 가슴 뭉클함이 느껴졌다. 

저자는 평범하고 속물적인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그 주변에 '이상적인 인간상'을 등장시켜 더욱 돋보이는 존재로 만들었다. 주인공 아미르는 우리들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인간을 대변한다. 두려움 때문에 때로 불의를 참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친구를 모른 척' 한다. 가진 것을 혹시나 잃게 될까봐, 혹은 안락한 생활이 혹시나 끝이 날까봐 조마조마해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악을 상징하는 아세프와 선을 상징하는 하산 사이에 관찰자인 아미르를 등장시키면서 '선악의 대비'를 더욱더 분명하게 하고 있다. 아미르는 하산의 믿음을 져버리고, 항상 마음속에 '죄책감'을 지니고 살게 된다. '카츄사'에 대한 죄책감으로 남은 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한 부활의 '네흘류도프'에게서 느꼈던 묘한 정서가 아미르에게서도 느껴졌다. 내가 계속 관심을 끈을 놓치 못하고 소설속으로 걸어들어갔던 이유도 줄곧 아미르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존재하는 '동정'이나 '연민'은 인간의 사회성을 결정지어주는 아주 위대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감정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삶의 밑바닥에서 힘겨운 생을 근근히 이어가는 불쌍한 자화상을 바라보는 '동정'하는 눈길이 아닌, 자신의 삶의 이상과 꿈에 다다르지 못해 항상 주변을 맴도는 주변인으로서의 쓸쓸한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말한다.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을 지키지 못하고, 떳떳하게 살리라 마음먹었던 다짐도 세월의 풍상속에 묻히게 되고... 침잠과 무기력의 그 끝에 바로 '자신에 대한 연민'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아미르의 아버지인 바바가 느꼈을 '자신에 대한 연민' 역시 그 무게가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미르는 결국 아버지를 닮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젊었을 때 세상을 향해 죄를 짓고, 그런 과거를 마음에 두고 항상 '속죄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바바의 인격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꽤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바는 그 속죄하는 마음을 통해 세상을 향한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그것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삶의 무게일 수도 있고, 삶의 의미일 수도 있다. 아버지를 따라 아미르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배워가고 있다. 아마도 소랍은 남은 평생동안 아미르가 비춰보아야 할 '마음의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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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1. 11. 08:43

철학 콘서트, 황광우 도서2009. 11. 11. 08:43

철학을 이해할 깜냥은 전혀 못되지만, 가볍게 풀어씌여진 철학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기도 하고, 생각을 달리 해보기도 한다. 하루하루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일견 하찮게 느껴지기도 하고, 좀더 원대한 꿈과 이상을 품어보고픈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사진 한장을 음미해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닌, 1초에 수십여장의 필름들이 자취를 감추는 '초속'의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사고하고 사색했던' 옛 철학자들을 한번씩 만나는 경험은 분명 차분하다 못해 평화롭기까지 하다. 

대학 입시를 치르던 시절 당시 논술이 큰 이슈였다. 과거 학력고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대체하면서 분별력이 예전같지 않았고, 학생들의 다양한 '가능성'과 '능력'을 가늠해보는 잣대로 '논술'과 '면접'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매김하던 시기였다. 곳곳에 논술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난 후 모두들 논술과 면접에 매진하였다. 광주에 '플라톤 논술학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동생이 꽤 오랜시간 그 곳에서 공부를 했다. 당시 아마도 학원 원장선생님이 이 책의 저자이신 황광우 선생님이셨을 것이다. 뵌 기억이 없는 분이라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다소 어색하지만, 동생은 학원의 수업에 꽤나 만족하였던 듯 싶고, 영향도 많이 받은 듯 싶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살펴보다가 '철학콘서트'라고 하는 책을 발견했고, 저자를 확인하는 순간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렵고 난해한 책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 책은 왠지 마음편하게 한번 읽어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크라테스에서 노자까지 총 10명의 철학가 내지는 사상가들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다. 곳곳에 저자의 생각이 스며들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었던 문구들을 정리해본다. 

'여러분은 덩치가 크고 혈통이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크고 굼뜬 말입니다. 이런 말에게는 착 달라붙어 괴롭히는 등에가 필요합니다. 나, 소크라테스는 여러분의 등에인 것입니다.' - 소크라테스, P38

'나는 언제나 나의 이성적 사유에 입각하여 가장 올바른 것으로 판단되는 원칙만을 따르며 살았네. 이 원칙 준수의 결과가 사형 선고일지라도 나는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네.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설득하듯 투옥과 재산 몰수, 죽음으로 나에게 압력을 가하더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야.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유가 중요한 것이지. 어영부영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eu) 아름답게(kalos) 올바르게(dikaion) 사는 것이 중요한 것야.' - 소크라테스, P42

'어이,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내가 닭 한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 - 소크라테스, P47

'친구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네(Friends have all things in common). 아무도 생필품 이외의 사유재산을 소유해서는 안되네. 만일 집과 땅과 돈을 사유한다면 통치자의 지위를 포기해야 하네." - 플라톤, P65

'죄수와 횃불 사이에는 무대 높이의 회랑이 동굴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다. 이제 이 회랑 뒤에서 누군가가 인형극 놀이를 한다고 상상하자. 돌이나 나무로 만든 동물 모형, 사람 모형을 담장 위로 들고 지나가는 것이다. 죄수는 횃불에 의해 투영되는 모형의 그림자만을 볼 뿐, 실재의 모형을 본 적이 없지. 인형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대사를 읽을 경우, 죄수는 모형의 그림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인식할 게야.' 

'이제 죄수의 손목을 이끌어 동물 밖으로 연결되는 가파른 통로로 안내해봄세. 햇빛이 찬연히 부서지는 곳으로 그의 몸을 끄집어낸 순간, 죄수의 눈은 너무 밝은 광채 앞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야. 그가 지상의 사물을 분별하려면 상당한 적응 기간이 필요해." - 플라톤, P70

'제자들이여, 나는 너희가 집착을 여읠 수 있도록 뗏목의 비유를 들어 설하겠다. 어떤 사람이 긴 여행을 하다가 강가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이 언덕은 위험하지만 저쪽 언덕은 안전하다. 뗏목을 만들어 저쪽 언덕으로 가자.' 뗏목을 만들어 안전하게 저쪽 언덕에 이른 뒤 생각했다. '이 똇목은 나에게 큰 공을 세웠다. 이 뗏목을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은가? 나는 이 뗏목을 머리 위에 이고 가겠노라.' - 석가, P84

'자공 :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이옵니까?'
'공자 : 옛 현인이시다'
'자공 : 그들도 인생을 후회했을까요?'
'공자 :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무슨 후회가 있었겠느냐?', P119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으면 이것이 군자의 마음이 아닌가?" - 공자, P125

'3일 동안이나 나와 함께 있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이들을 보노라니 내 마음이 아프다. 아무것도 먹이지 않고 이대로 돌려보내면 집으로 가는 길에 쓰러질까 걱정된다.' - 예수, P141

'오늘 밤 수탉이 울기까지 세번 너는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예수, P145

'동호의 배 위에서 나누었던 정이 꿈결 속에 되살아나니, 봉은사까지 따라와 묵은 하룻밤의 뜻이 더욱 깊게 느껴집니다. 서로 취해 말없이 바라보며 천리의 이별을 다 이루었습니다. 손수 쓰신 편지와 아울러 시 한편을 받으니, 마치 다시 얼굴을 대하는 듯하여 참으로 위로되고 다행스러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 퇴계, P153

이슬 머금은 풀잎 곱게 물가에 피어나고
작은 연못 깨끗하여 모래 한 점 없다네
구름 노니는 하늘에 새가 나느니
지지배배 제비야 물결 일지 말거라 - 퇴계, P155

'사람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하는 요인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양입니다. 예전에는 얌전하고 조금씩 먹던 유순한 양들이 이제는 무서운 식욕으로 사람까지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 토마스 모어, P180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에 대해 열심히 일합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의 소유이므로 결핍의 공포가 없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돈이 사라졌고, 아울러 돈을 벌려는 열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돈으로 인한 많은 범죄가 사라졌습니다. 금전 사용은 종말은 사기, 절도, 강도, 말다툼, 분규, 반란, 살인, 배신, 독살 등 많은 범죄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돈이 사라지면 돈으로 인한 불안, 긴장이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가난, 그것이 돈의 결핍을 의미한다면 화폐의 소멸은 가난의 소멸을 의미할 것이다.' - 토마스 모어, P193

'물론 그는 공공의 이익을 추진하려 하지 않으며, 그가 어느정도 공공의 이익을 추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외국 산업보다 국내 산업을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그가 국내 산업의 생산물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것도 아직 자신의 이득을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많은 경우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추진하게 되는 것이다.' - 애덤 스미스, P205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1. 그 불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리라는 것이 합당하게 기대된다. 2. 그 불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에 결부되어야 한다.' - 롤스(정의론), P218

'거미는 직포공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며 꿀벌의 집은 많은 건축가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가장 서투른 건축가라도 가장 훌륭한 꿀벌보다 뛰어난 점은, 그가 집을 짓기 전에 미리 자기의 머리속에서 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노동 과정의 끝에 가서는 그 시초에 이미 노동자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노동자는 자연물의 형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목적을 자연물에 실현하는 것이다.' - 마르크스(자본론), P228

'세상에 다시 없이 착한 것은 물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도우면서 다투지 않는다. 사람들이 머물기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 - 노자, P273

'나에게 애지중지하는 보물 세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애요, 둘은 검소요, 셋은 감히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 노자,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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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