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서 피해자들을 만나고, 관련자들을 만나면서 가졌던 여러 심정과 고충을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 담았다. 불쌍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향한 인간의 동정은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부조리한 현실을 소설로 재구성해서 세상에 펼쳐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때로는 분개하고, 때로는 체념하며, 종종 작품 속 주인공들과 같이 고민하면서 읽었다. 답을 몰라서 갈팡질팡하는 것보다 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고통이 더하다. 우리는 언제나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번민하며, 도전과 안주 사이에서 심란해한다. 작가는 지극한 해피엔딩의 식상한 마무리를 피하는 반면, 너무도 당연하게만 배워왔던 보편적 가치들이 현실의 장벽과 나약한 심성 앞에서 갈길을 잃고 허둥대는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었다.
부조리한 현실과 신의 버림을 받은 것만 같은 암울한 이야기를 놓고, '희망'을 논하는 비평가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아마도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현실에서 따뜻한 마음이 여기저기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참한 현실과 야속한 세태를 굳이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세계관의 상실'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와 달리 현대인들은 정보의 홍수와 현실의 치열함 속에서 보편적 가치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발달된 의식과 철두철미한 다양한 이론, 단단히 무장한 자본주의의 무차별 공격은 우리들 개개인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판단하려고 들때, 어김없이 찾아와 그 감각을 마비시키고 만다. 안타깝게도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고, 그 강인한 신념과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은 '극단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척받고 만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엔 당연히 올-인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객관적인 시각은 당연히 중용을 의미하고, 그 중용은 당연히 사람들이 가지는 다양한 생각의 중간점을 의미한다고 여겨지는 시대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당연히 O라고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 시대에 X도 인정해야 한다고 외치는 부류들이 있다. 그들의 힘이 결국 '시대 정신'을 반영하기도 한다.
최근에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지금 나의 시기를 '제2의 사춘기'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삶'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물음에서부터 나는 다시 해답을 찾아야만 할 것 같다. 왜 사는지, 무엇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지, 역사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치는 우리의 삶에 어느 정도 반영해야만 하는건지...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머리 속에서 맴돌다가 이내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서로 얼마나 상대적인 개념인지, 딜레마에 빠졌을 때 우리가 가장 수호해야 할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