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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6. 00:37

김대중 잠언집 배움, 최성 엮음 도서2009. 10. 6. 00:37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라를 알고, 사회를 알게 된 이후에 늘상 들어왔던 이름이고, 역사적으로 봤을때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한번씩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하는 분이다.

잠언집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예상했던, 평소의 지론이 주를 이루었고, 종종 자기 의지를 피력하시는 부분들도 있었다. 직접 집필한 것이 아니고, 전 대통령님의 입밖으로 흘러나온 이야기를 취합한 것이기 때문에, 내면의 심리는 잘 드러나 있지 않았다.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어떤 원칙이나 신념, 소신이 담겨 있었다. 

누구에게나 신념과 소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두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풀이과정이 정해진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힘든 수많은 갈림길에 서보게 된다. 전 대통령님의 인간으로서의 많은 생각들과 행동, 나라의 수장으로서의 정책 등이 항상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처사도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도 많다. 하느님을 믿고 종교의 힘을 크게 느끼셨지만,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격'을 달리하는 '행동하는 양심'과 '불굴의 의지' 때문이다. 그러한 강인한 정신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 씌여졌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죽음 앞에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내면적 공포를 마주해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지킨 것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외심'을 느낀다. 그것을 '사명'이라고 느꼈고, '부끄러운 선택'에 대한 역사적 또는 종교적 심판을 두려워 하셨다고 한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현대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 양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과 '사명'을 가진다는 것.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후자를 취하면 전자는 당연히 뒤따라 올 것이라고 믿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요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종종 논란이 된다. 특정 범죄자의 유전자를 반영구적으로 보관하기로 했다고 한다. 유전자가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과 성질을 선천적으로 결정해주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역사적으로 극한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수많은 위인들의 삶을 접하다 보면, 인간이라는 것이 태어날때부터 이미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나의 몹쓸 유전자 덕분에 내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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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0. 5. 19:55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도서2009. 10. 5. 19:55

길지 않은 스토리에 어렵지 않은 문체,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적절히(?) 어린 아이의 시선. 그런 어린아이의 시선이었기 때문에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이 가능했을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일을 겪었음에도, 또 그 상황을 어느정도 이해는 하면서도 그 시선은 '절망'보다는 '희망'에 차 있다. 미래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고생하는 엄마를 돕겠다는 '따뜻한 마음' 등은 그 또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가진 것은 없어 보이나, 왠지 삶을 즐기는 듯한 느낌의 떠돌이 아저씨에게서 '배려'를 엿보게 된다. 가끔 눈에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는 삶은 껍데기 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다 보면 그것이 때때로 스트레스가 되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후회가 남는다. 떠돌이 아저씨의 삶이야말로 겉으로는 비록 초라해 보일지 모르나, 진정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처한 어려운 환경이 다소 해학적인 발상에 묻힌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어린 아이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항상 행운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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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지구촌'이라는 말로 포장된 '세계화'는 과연 인류에게 행복한 변화일까,

각종 TV화면이나 잡지를 통해 '함께하는 지구촌'을 자주 보여준다. 아프리카나 오지에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인종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섞여서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들, 우리들이 바라는 행복이 마치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소말리아에 사는 흑인 남자 어린이, 비록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있지만 해맑게 웃고 있다. 빈곤하지만 조만간 문명화된 사회로부터 문화와 기술이 보급되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지구촌'이라는 말은 오히려 반가운 느낌마저 든다. 전쟁과 잦은 분쟁으로 피와 고통으로 얼룩져있는 인류의 근현대 역사에 종언을 고하고, 화해와 상생, 협력으로 나아가는 장미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도 같다. '지구촌'이라는 말 주위에는 '따뜻한 기운' 감돌고, '세계화'라는 말에는 진취적 기상이 베어 나온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생활을 보다 윤택해졌지만, 현대인들은 많은 정신적 질병을 호소하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신적으로 매우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나누어 쓰기 바쁘고,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행복은 '남들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도 마음을 여유를 찾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류의 숙명'인 것 같기도 하고, '삶의 전제' 같기도 하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티베트 옆 라다크 지방에서 오래도록 살면서 그 문화와 삶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그 독특한 문화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지의 눈에 비친 모습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모두가 웃고 사랑하며 아껴주는 것으로,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그토록 바라는 삶이다. 서구의 물질문명이 조금씩 그들의 삶의 터전을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돈'의 노예가 되고 '경쟁' 속에서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과거에도 빈부의 격차는 존재했었지만, '화폐'의 발생으로 인해 그 격차는 가속화되었고, 구성원 모두가 그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를 받아 삶이 피폐해지는 것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호지는 그 해결책으로 '지역 경제'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화'는 그릇된 것이니 여기서 당장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 우리의 '인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운데서부터 밖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유통되는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공동체별로 그 문화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경제정책이 추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호지의 말처럼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안쓰럽다. 이런저런  사회경제적 제약과 강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배부를 줄 몰라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갈수록 많은 '현대판 노예'를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호지'의 주장이 비록 인간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고는 하나 '과거로의 회귀'를 일정부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공동체의 크기'이다. 공동체가 점점 커져서 지금은 전 지구를 하나로 묶게 되었고, 그 사이에 인구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지구촌'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호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든 인류가 위기 의식을 느끼는 순간 인류는 방향을 틀어 행진할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빈곤'이 덜했다고는 하나 '기회의 평등'을 잃고 '체념'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던 과거의 유산은 분명 떨쳐버려야 한다. '흙탕물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했던가, 적절한 인용일지 모르지만, 더 많은 길을 앞에 두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혔다는 점에서 분명 인류의 역사는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경쟁'을 인정하되,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는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어찌보면 돈을 어떻게 모으고, 분배하고, 쓰는 것을 고민하는 것에 앞서 인간 상호간의 '룰', 집단간의 '암묵적 규약'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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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09. 10. 2. 17:39

천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도서2009. 10. 2. 17:39

이 세상 모든 딸들이 읽어봐야 할 책

책의 뒷표지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문구이다.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하는 여성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밝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인간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굴곡이 많았지만, 그 역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물론 때론 후퇴도 하고, 어두운 시절도 있기 마련이지만. 역사의 흐름은 굉장히 더디기 마련이어서, 개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개인의 삶이 비로소 역사의 평가를 받듯이. 역사 교육이 소중한 이유다. 역사를 모르면 개인은 역사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두 여인의 우정과 힘겨운 삶을 그렸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적인 유대'를 잃는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유대'를 잃은 괴로운 환경에서 삶을 강요당해야 하는 고통. 인간이 만든 제도가 주는 억압. 그 모든 것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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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한비야님께서 '그건, 사랑이었네'라는 책에서 추천한 몇개의 도서 중 한권이다. '책만 보는 바보'라고 하는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막연히 '책'과 '바보'라는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을 떠올렸을 뿐인데, 머리말을 읽고나니 그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던 그는 늘 자신의 자그마한 방에서, 온종일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 가며 책을 보았다 합니다. 누가 깨우쳐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읽었기에,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얼굴이 어두워지고 그러다 문득 뜻을 깨치게 되면 혼자 바보처럼 웃기도 했답니다.

(중략)... 스물 한 살이면 한창 나이인데, 그는 왜 날마다 방에서 책만 보고 있었던 걸까요. 드러내 놓고 표현은 안하였지만 이덕무의 글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내가 너무 그의 마음속 깊이 들어간 걸까요?

이덕무는 이 책에 나오는 다른 벗들과 마찬가지로,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어디에도 낄 데가 없던 반쪽 양반의 핏줄이었지요. 글을 읽었으나 뜻을 펼칠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의 글에서 묻어나는 외로움은 그런 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봅니다.'

햇살을 따라 상을 옮겨가며 책을 본다는 구절을 읽을때는 햇살 비친 방에 앉아서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더불어 햇살의 따스한 느낌이 듬뿍 느껴지는 어느 한가로운 오후의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 처지가 처량한 면도 있었으나, 책과 함께하는 그 여유로운 느낌을 생각하니,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책의 부제가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덕무의 입을 빌었지만 같은 시대 그와 함께 '시대의 변화'를 꿈꾸었던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시대를 논하고, 친구처럼 격의없었던 일상을 말하고 있다.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홍대용, 박지원 등이 그의 벗들이었다.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관직에서 역량을 펼치는 이야기도 하게 되는데, 정조 대왕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정조대왕의 소소한 일화나 그 심원한 뜻을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신하의 목소리로 듣는 신선함도 있었다.

정조가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 때문에 평생 마음 아파한다는 내용을 볼때는 드라마 '정조 이산'에서 어린 정조가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를 몰래 찾아간 장면이 떠올랐고, 당파 싸움 속에서도 소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치세를 펼쳤지만 항상 긴장하는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내용에는 드라마 '한성별곡'에서의 '정조'가 눈에 어른거렸다.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안내상님의 연기도 인상적이어서, 정조대왕이 언급될때마다 그 이미지가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서자이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체념하고, 슬퍼하는 모습에는 '다모'에서의 '이서진'이 떠올랐다. 덕분에 드라마 2편을 다시 보면서 감회에 젖기도 했다. 하지원의 아역을 맡은 귀여운 꼬마아이를 다시 봐서 반가웠다.

정조대왕, 그리고 이덕무와 그의 벗들은 어렸을때 아버지를 잃은 아픔과 신분적 제약이라는 슬픔을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이덕무는 정조대왕이 겪은 그 고통과 그 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슬픔이 승화되어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와 그의 벗들 역시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고통없이, 슬픔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행복한 삶이지만, 고통과 슬픔마저도 잘 극복하고 승화시킨다면, 더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되는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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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