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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 25. 00:44

흐름을 꿰뚫어보는 경제독해, 세일러 도서2010. 1. 25. 00:44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대중 경제학 서적도 이만큼 이해가 쉽고 시원하지 않았다. '정책'이나 '철학'적인 관점이 아닌 다분히 현실적이면서도 경제 '본연'의 시각에서 풀어놓았기 때문인 듯 싶다. 특히나 그동안 개념을 잡지 못해서 막연했지만 따로 공부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던 용어나 현상들을 명쾌하게 이해시켜 주었다. 첫장을 시작하면서 '선물환 매도'를 다루었고(다른 책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았던 내용), 그 내용으로부터 가지가 파생되어 전체적인 내용도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금리'나 '통화량' 같은 기본적인 경제용어들도 전체적인 관점에서 알기 쉽게 설명했고, 어떻게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 현상과 연관되어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미네르바'처럼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던 분인 것 같은데, '정보의 바다' 인터넷의 등장과 IT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전문적인 지식 역시 '대학'이나 '전문가 집단'이 독점하지 않고 대중과 함께 숨쉬고 있는 셈이다. 누구도 전문가가 될 수 있고, '넘치는 정보'를 어떤 식으로 흡수하느냐에 따라서 '무한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이미 대중의 백과사전이 된 '위키피디아'가 그 흐름을 증명하고 있다. 

'세일러'라는 작가는 무료료 공유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이름을 알렸다. 그것이 기회가 되어 그는 '서적'을 출판해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구글이 '오픈 소스' 정책을 취해서 몸집을 불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인 뒤에 부가적인 수익 창출을 모색한 것과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자의 의도적인 목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고라'에 글을 올린 것이 단순히 흥미나 취미일 수도 있고,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유명한 경제학자나 대학교수가 쓴 책보다도 이해가 잘 되었다. 

경제라는 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보기엔 '정해진 해답'이 없는 '인간 활동의 한 영역'이기 때문에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들 한다. 전제를 깔긴 하지만, 그럼에도 경제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흐름'을 제시한다. 저자 역시 확신하고 있진 않지만, 어느 정도 향후 몇년간의 흐름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논리적인 개연성이 높다고 느끼도록 굉장히 잘 전개되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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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1. 20. 21:26

좁은문, 앙드레 지드 도서2010. 1. 20. 21:26

서점 안을 거닐다 보면 아무리 두께가 얇은 책이라도 고전에서는 왠지 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톨스토이의 '부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등등. 문학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과 애정을 차지하더라도, 이 정도 고전의 저자와 제목은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게 되었다. '고전문학'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랜 인고의 세월을 감내한 '老松'을 바라볼때의 경건한 마음처럼, 마주할때 특별한 감정이 존재한다.
 
알리사와 제롬이 두 주인공이다. 생을 깊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라면(그 중엔 '현재의 나'도 포함된다.) 소설 속 알리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거니와 소설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알리사는 현실에서의 사랑을 거부하고 '영혼의 합일'을 꿈꾸는 금욕주의자이다. 자신의 바램과 욕심을 짖누르고, 외면함으로써 진정한 '일탈'의 경지 또는 '영혼의 성숙'을 꿈꾼다.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엇갈림, 그 중에서도 '제롬을 향한 애정'이 언제나 그녀를 괴롭힌다. 늘 그녀의 주위엔 슬픔과 우울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으며, 끈기있게 그녀의 사랑을 기다리는 '제롬'이 있다.
 
종종 알리사와 같은 '현실 거부와 도피'는 완전성을 꿈꾸는 '높은 이상'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덕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가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것, 본의아니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실핏줄처럼 여린 감성의 소유자들에게 '세상의 불완전성'은 때때로 '거룩한 자기 희생'을 부른다. 순수함에서 시작했을 알리사의 '마음'은 현실에서의 여러 엇갈림에 좌절한 채, 스스로 지어 만든 번민과 고뇌의 감옥에 갇혀버린 셈이다. 

비로소 실타래가 풀어졌을때 알리사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오랜시간을 걸쳐 쌓아올린 '금욕의 성'이 그녀에게 '새로운 영혼의 길'을 안내한 셈이다. 때론 누군가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만 같은, 묵묵히 주어진 길만 걸어가는게 전부인 듯한, 얄궂은 운명이다.

나의 엉터리 결론은 이렇다. 저자인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허무주의의 늪에 빠진 금욕주의'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길이 있고, 그것만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알리사'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날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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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1. 17. 12:48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권문수 도서2010. 1. 17. 12:48

제목이 눈길을 끌어 구입하게 된 책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그 사랑으로부터 헤어나오게 되면 누구나 또다른 사랑을 일면 두려워하게 된다. '이별의 아픔'이 더 큰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사랑의 출현이 설레고 반갑다. 이 책에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프로세스에 고장이 났거나 브레이크가 걸린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사랑의 테라피스트'를 자처하고, 또 실제로 그런 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사랑의 실패' 내지는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고려할때, 그것이 하나의 '정신적 질환'으로도 확장될 수 있으며, 그래서 '치료 절차'를 밟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학문의 한 분야로 인정되어 더욱더 근원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랑... 

참 어려운 문제다. '사랑'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가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현대인들에게서 정신 질환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스토커'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이별의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고 있는 사례도 많다. 물론 개인을 위한 '테라피스트'의 존재 역시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정신적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여유'와 '소통'이다. 책에서도 소개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치료책은 '관심의 전환'이자 '주변인과의 소통'이다. 누구보다도 친한 친구의 존재, 같은 아픔을 공유한 사람들의 공동체 등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미 여러 시도들이 이루어졌겠지만, 사이버 공간이 하나의 '만남의 장'의 역할이나 '공동체의 광장'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이 '테라피스트'이자 '의뢰인'이 되는 셈이다.
 
'제목'에서 기대했던 바와 약간은 다른 방향에서 씌여져서 다소 아쉬웠지만, 기분전환 삼아 가볍게 읽어볼만 했다. '사랑의 유통기한'과 'Unbalancing'은 '사랑'을 먹고 사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자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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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1. 14. 00:19

[법문집] 일기일회, 법정스님 도서2010. 1. 14. 00:19

'무소유' 이후로 많은 책을 써내고 계신 법정 스님이지만, 스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은 한결같다. 마음을 비우고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않을 것, 인공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자연 환경을 보호할 것 ,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의 삶을 살아갈 것. 때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하고, 사회의 풍조를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큰 줄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저술과 매스컴을 통해서 이미 '스타 스님'이지만 그 생활만큼은 조촐하고 수수하다. 성북동 '길상사'라는 절에서 1년에 몇차례 법문을 하시지만, 사는 곳은 강원도 산골로 자연에 의지해서 살고 계신다. 스님께서 그 삶으로 만족하고 계신다면 그것으로 행복이고 또 깨달음이지 싶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고, 또 얼핏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진리이기도 하지만, 욕심을 부리는 만큼 괴로워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때로는 비우면 비울수록 얻는게 많아진다는 생각도 든다. 

자문하게 된다. 과연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이며, 얼만큼이 내게 주어진 몫일까. 내 행복의 물질적인 기준은 얼마나 될까. 냉정하게 생각해보건대, 더 많으면 좋겠지만 더많은 '물질'을 추구하기 위해서 잃게 될 '정신'이 더 소중하다면, 지금 가진 것의 범위에서 '행복한 삶'을 찾고 싶다. 때때로 '지난 과거'가 아쉬울때도 있지만, 다행스럽고 또 감사하게도 '행복'의 필요조건을 지금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늠하기 싫을 정도로 빠르게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때론 평생을 두고 경험과 지식을 쌓아도 굉장히 '소소'할 뿐이라는 생각에 '허무'한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보람찬 삶'에 대한 보상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적 탐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맑은 자연 속에서의 쾌적함 등. 무엇보다 '삶에 대한 관조'와 '여유'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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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1. 11. 00:54

철학콘서트 2, 황광우 도서2010. 1. 11. 00:54

철학콘서트 전편을 참 재미있게 읽었고, 책 전체에 흐르는 저자의 생각이나 담고 있는 방향에 공감이 되어서 2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어볼 마음을 먹었다. 

친구 曰

"나는 황광우 별로 좋아하지 않아, 생각은 거창한 듯 하지만 실상 비싼 학원비 받아가면서 학생들 돈 착취한 느낌이 들거든"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요즘 '대학 등록금이 싼 편'이라는 모대학 총장의 망언이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교육이나 학문을 경제적으로 '어떤 기준'에서 가늠해야할지 판단이 안서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비'에 힘들어하는 계층이 많아질수록 '교육의 사회적 비용'이 '높은 편'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듯 싶다. 그런 점에서 대학 등록금도 등록금이지만, 황광우씨가 세웠던 논술학원도 꽤나 '고비용'의 사교육기관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른바 '나눔의 실천'을 포괄하는 '공동체 정신'과 '개인 욕심'은 상충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이 가진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선사업에 뛰어들거나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존경'받을만한 분들이다. 민들레 국수집의 사장님이나 가수 김장훈처럼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칭송받아야 한다. 민들레 국수집 사장님의 집이 호화롭거나 김장훈이 명품 옷을 선호한다고 해서 그들의 '선행'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된다. 필요이상의 욕심을 절제하여 나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들에게까지 과도하게 '욕구자제'를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분들도 있다. 미국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실천하고 또 조성하는 대표적인 분들인데, 빌 게이츠의 저택을 보면 호화롭기 그지 없고, 그의 생활 역시 어느 재벌 못지 않다. 하지만 이 역시 그의 생활과는 별개로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다만 재산을 축척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불법적'인 투기나 비인간적인 착취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언론을 통해서 빌게이츠의 회사인 MS가 횡포를 부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기업간의 무한 경쟁'의 일환으로 판단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내막을 모르니,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되, 다만 '자산의 축적' 과정 역시 '자선 행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황광우님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저서 전반에 깔려있는 정서는 '노동의 가치가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고 보듬을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 분이 얼마나 그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고, 사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만으로도 '별 생각없이' 사는 많은 사람들이나 '사회 정의'를 외면하는 사람들에 비해선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황광우님처럼 생각하는 지식인 계층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친구가 지적한 것처럼 그의 재산 '축적 과정'에 대해 나는 별다르게 옹호해줄만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자라나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바른 생각'을 심어주고, '철학을 가진 삶'으로 인도해준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기인 하나, 그런 뜻깊은 일이 적정 수준 이상의 비용을 대가로 청구함으로써 다분히 '상업적인 행위'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책 내용과는 거리가 먼 횡설수설이 되어버렸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철학콘서트 2편 역시 내게는 '값진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통로였다. 저자의 주관적인 시각이 다소 강하게 반영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철학의 여러 면모'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볼 수 있는 훌륭한 '일반인을 위한 교양철학서'인 셈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철학'이 지닌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저자가 '철학'의 범위를 국한시키지 않고 다른 여러 학문이나 사회 저변으로 확대시킨 것처럼, 철학은 '과거의 역사'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에 꼭 필요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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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