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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15. 15:42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도서2010. 5. 15. 15:42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읽었을때 꽤 신선한 느낌을 받았었다. 스토리의 재미를 떠나(스토리 자체만 놓고 보면 어리둥절일지도), 그의 소설은 빠른 전개를 하고, 묘한 긴장감이 있다. 더불어 그가 쓰는 문체와 표현은 시종일관 독자를 책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상형에 가까운 이성을 만났을때와 같은 설레임을 안겨주는 소설이었다.

왠지 성석제 작가의 소설을 읽기 전에 그런 기대가 있었다. 두 작가는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문학'의 선두주자처럼 각인되었고, 그만큼 신세대적인 위트와 작문을 선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마음편하게, 유쾌하게 읽었던 최근의 소설은 위기철 작가의 '고슴도치'였다. 그래서 그런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문체는 다소의 집중을 필요로 했다. 성석제 작가의 고유 스타일이 있다고 하나 아직 한권을 읽고 그것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만 나름의 신선한 소재와 묘한 동경 내지는 부러움을 유발하는 주인공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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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5. 10. 06:45

부자경제학, 박경철 도서2010. 5. 10. 06:45

최고의 재테크는 부동산이나 금융상품에 투자하여 큰 수익을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하는 일에 대한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확률높은 투자이기도 하고, 가장 보람찬 재테크인 셈이다. 물론 과도한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는 많은 직장인들에겐 그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겠지만.

인생은 늘상 선택의 문제이며, 그 선택의 한 종류는 '현재'와 '미래'를 두고 하는 선택이다. 어렸을부터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수도 없이 들은 지금의 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기꺼이 현재를 희생한다. 평생동안 그들의 '현재'가 '미래'에 저당잡혀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실제로 그럴 확률이 높다. 생을 넘어서는 또다른 미래, 즉 2세의 삶을 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에는 이런 사회적 가치관이 변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 못지 않게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것은 어느정도 양적인 팽창을 이룬 시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선택이든 개인의 가치관이나 철학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삶은 스스로 가꾸고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법으로 재테크를 하라는 식의 이야기보다 재테크를 시작하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사실 어떤 문제에 대해 확고한 의지와 신념이 있고, 그것에 관심과 열정이 결부된다면, 오히려 문제는 간단해진다. 정답을 찾는 것이 어려울진 몰라도 그 과정은 지루하지 않고 훨씬 생산적이고 능률적일 것이다. 하지만 막연한 의무감, 내지는 대세의 편승이라면 굉장히 비효율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적으로 재테크에 매달리고, 분위기에 매몰되다보니 그 홍수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만한 책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이자,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오감'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것이야말로 다른 시각을 통해 세상을 접근하는 방식이고, 신이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근원적인 행복을 체감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달리 살아야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으지만, '오감'을 통해서 유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책의 끝자락에 있는 내용으로 그 마음을 대신하고자 한다.

사람의 표정을 보라. 웃는 사람, 우는 사람, 아픈 사람, 괴로운 사람이 보인다. 그것이 당신이 자주 접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지만 당신은 이미 그것의 의미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 이상의 이해가 가능한가? 누군가가 몸짓으로 또는 눈빛으로 당신에게 무슨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당신은 알 수 있는가? 사랑하는 이성이 고백을 하려 한다면 그의 혹은 그녀의 표정과 눈빛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는가?

굳이 고식적인 언어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소리나 색깔로 또는 격식과 문법이 사라진 시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당신의 오감은 살아 있는 것이다. 오감을 일깨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길을 걸을때 발바닥으로 전달되는 땅의 느낌을 느끼는가? 지금 살아있는 의자에 당신의 엉덩이가 닿아 있는 느낌을 이 글을 보지 않고서도 항상 느낄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뺨을 스치는 공기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 있는가?

지금 당신의 오감은 어떠한가? 어느새 당신은 그것들을 전부 활용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단순화된 수단으로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지금 당신의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가 폐를 거쳐 동맥을 타고 손가락마디와 발끝까지 흐르는 살아 있는 느낌을 당신은 느낄 수 있는가?

하지만 하나. 하기 싫은 일부터 시작하라는 저자의 생각에는 반대한다. 난 하고 싶은 일부터 하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펼쳐놓고 목적성을 갖고 선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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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5. 6. 14:48

포르토벨로의 마녀, 파울로 코엘뇨 도서2010. 5. 6. 14:48

코엘료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어떤 계기로 메모의 '관심도서'에 들어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사전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책 표지를 열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도 미약한 존재이기에 신앙과 철학은 인류의 역사에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것은 '완전성'을 향한 인간의 영원한 염원에서 출발한다. 각자 개념은 다르지만 '신'이라는 완전한 존재를 형상화시키고, 삶의 구원을 꿈꾼다.

여기 세상으로부터 '마녀'라고 낙인찍한 한 여자가 있다. 일명 신의 계시 내지는 신의 부름을 받아 인간의 불완전성에 어떤 '길'을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부류다. 우리나라에서도 '무당' 내지는 '무속인'이 바로 그런 부류에 해당한다.

멀쩡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른바 '신내림'을 받아 무속세계에 몸담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에 어떤 거대한 힘이나 법칙이 존재하는가 싶어 섬뜩하기도 하다. 그러한 막연한 두려움으로부터 강해지고자 하는 인류가 끊임없이 과학을 진보시키며 베일에 싸여 있는 세상의 비밀들을 캐어나가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사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르며, 혹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등장하는 그림자만을 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은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마녀'라는 단어가 담고 있듯이 그러한 신적인 존재와 영혼의 교류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남성과 여성의 눈에 보이는 생물학적 차이에서 시작하는 양자간의 비교 내지 분석은 언제나 사회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선 정신적인 차이는 어떤 보편성을 토대로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공감' '관계' '영혼'이라는 단어들이 과연 남성보다는 '여성성'과 더욱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것이 '신의 사자'로 적합한 조건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신'. 세상에는 다양한 신이 존재하고 이 문제는 종교적으로도 민감한 사항이다. '마녀사항'이라는 미명하에 공인된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군림하고, 대립하는 인간. 과연 진화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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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5. 1. 09:11

철학의 에스프레소, 빌헬름 바이셰델 도서2010. 5. 1. 09:11



못생긴 손과 커피 한잔. 무언가, 아마도 삶과 철학을 설명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제스처. 하지만 이런 은유적이고도 약간은 운치있는 책의 표지의 가시적인 부분과는 달리, 책읽기를 마친 이 순간에는 그 손의 주인공이 왠지 젊은 학생들과는 사유의 세계를 달리하는, 그럼으로써 졸음을 유발하는 재능을 가진 고루한 노교수가 아닐까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괴로운 책읽기였다. 언제나 첫페이지를 들춘 책은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보아야만 안심이 되는 종종 강박증 환자같은 증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불빛의 뜨거움을 모르고 뛰어들다가 타죽은 나방처럼 스러질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붙들고만 있다고 여겨지는 그 무력한 시간들이 혹시나 내 삶의 큰 기회비용은 아닌건지 내내 걱정이 되었다.

철학은 언제나 반가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어쩌면 '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머무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철학자들의 고유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에, 우리의 일상의 일분일초에 깃들어 있는 보편적인 학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책의 구성은 시대에 따라 34명의 철학자들을 나열하면서 그들의 삶과 사상을 담았다. 전반부에는 삶을 조명했고, 후반부에서는 그들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히 그 생각들은 열에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다만 그들의 삶은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철학자들 모두가 개개인의 특성이 있고 나름 개성있는 삶을 살았지만, 어떤 한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공통분모를 공유하지 않나 싶다. 바로 '고독'과 대면하는 순간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삶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존적인 의문을 싹틔우게 되는 것이다. 삶 자체에서도 일반인들의 영역을 넘어서 있어 일면 '영혼의 순수성'마저 느껴진다.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정석을 읽는 것 같은 시간이었지만, 좀더 쉽게 풀이된 책을 접하고, 그 생각들을 다시 이해할 기회를 가지게 될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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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
2010. 4. 21. 21:54

고슴도치, 위기철 도서2010. 4. 21. 21:54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위기철 작사님의 글은 '아홉살 인생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인데 모두 대만족.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위트있는 문구외 기발한 생각들을 곁들여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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