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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4. 16:55

[연극] 잇츠유 영화2009. 8. 24. 16:55

지난 몇년간 '연극'이라는 장르는 참 매력적이었다. 스크린을 통해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접하는 것보다 생동감이 있었다. 배우들의 즉흥적인 위트와 유머는 늘상 통쾌하기에 무료하게 느껴지는 일상에 더없는 청량제가 된다. 기회만 되면 대학로로 향했던 것 같다. 물론 그 기회라는 것은 극히 한정되어 있어 대략 횟수를 놓고 보면 '많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때론 운명적이기도 하고, 때론 헌신적이기도 하고, 극히 일부는 가학적이기까지 하다. 대부분 아주 '우연'하다고 느껴지는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서 사랑은 싹튼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사랑은 '첫 만남에서 오는 가벼운 떨림'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물론 그것마저 사랑이 시작되는 한 유형일 것이다. 연극 '잇츠유'에서 소개하는 사랑은 그런 기습적인 것이 아닌 가을의 단풍처럼 소리없이 물들어가는 사랑이다. 어쩌면 운명적이기도 하면서, 헌신적이며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수반한다. 

극 중 두 커플은 서로 다른 사랑을 한다. 한 커플은 다소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천천히 사랑을 싹틔워 나간다. 어느 한쪽으로의 기울임 없이 균형적인 사랑의 시소 위에서 그 떨림을 즐기기도 하고, 마음 조리기도 한다. 시나리오의 극적 요소인 '갈등' 파트를 제거하고 나면, '왜 이렇게 사랑하는 게 어렵냐'고 푸념을 쏟아내는 이 시대의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소주병을 집어던지고 싶을만큼 '탄탄대로'의 싹틈이다. 우연한 만남과 그 연장, 사소한 이야기와 잔잔한 호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적절한 계기로 끝맺음이 된다. 

다른 커플은 귀찮다 못해 지긋지긋할만큼 헌신적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 비로소 성취해내는 '고진감래'형이다. 개인적으로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 방법의 성공률은 아마도 채 5%도 되지 못할텐데도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1%의 가능성이 나의 길이다',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로 젊은 연인들을 현혹시킨 나폴레옹에게 이 책임을 물어야 할지, '자격지심'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찬미하는 대중매체를 탓해야 할지 난감하다.  

지난 몇년간 연극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은 바로 '멀티맨'의 등장이다. 관객에서 친숙한, 대부분 연극 시작전 공연안내 및 주의사항 멘트를 하러 나오는, 한 배우가 멀티맨 역할을 통해 스토리와 스토리를 잇는 적절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 과정에서 다소 익살스러운 캐릭터와 변화무쌍한 분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대개 멀티맨의 역할 설정을 잘 하면, 그 등장만으로도 관객들은 빵빵 터진다.

개인적으로 '잇츠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품은 주먹보다도 더 크게 만들어진 BMW라는 로고의 열쇠고리였다. 대화 중에 혹은 분장 중에 그러한 터무니없는 과장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비단 연극 뿐만 아니라 토크쇼, 스탠딩 코미디 등등에 모두 해당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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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tri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