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꾸러미
보다 성숙해지는 법
너무 기분대로 살다보니, 이건 오히려 정신연령이 낮아지는 것을 떠나 '개념'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다소 염려가 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에도 관대하지 못하고, 금방 자신의 감정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때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흥분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하는데서 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일들을 붙잡고, '나는 이런 문제를 참고 있지만은 않을거야!'라고 억지로 외치는 것만 같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보면, 결국 자신만 남게 되고, 스스로와 싸우는 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괜히 아무것도 아닌일에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을 경계해야겠다. 언제부터 나에게 '당연히'라는 부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붙어다니는지 모를 일이다. 생각을 열어가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 양식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더불어 내 자신의 즐거운 인생을 즐기면 된다. 타인과의 짧은 교감에서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해 선입견을 갖는 것은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 밖에 안된다. 어느정도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자유롭게 사는 것.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 이를테면 일정 시간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일정 시간이 되면 취업을 해야 하고, 또는 나이에 걸맞는 대화와 옷차림을 해야 하는 그런 것들. 결혼식과 장례식에는 갖추어야 할 복장이 따로 있으며, 명절 때 예절은 또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찾아보면 수도 없이 많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것은 보편적인 감정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그저 순응하며 또는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젠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자신만의 가치와 기준을 두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사회적인 관습과 시선을 거부하면서, 좀 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거부, 무조건적인 반발이 남기는 것은 그저 사회와 자신과의 괴리를 가져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스스로 사회적인 관습과 규범으로부터 의식적인 탈피를 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으로 '사회적인 기준'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스스로를 보호할 길이 없다. 내성을 갖어 무감각해질 줄도 알아야 하고, 적절한 타협의 선을 마련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그러고 있냐'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는 '반발심'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에도 굴하지 않고 그저 '허허'다. 오히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무안해진다. 진정한 자유는 그러한 '달관'이나 '무감각'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토익 점수 발표
지난 9월 토익점수가 오늘 발표되었다. 나름 시험을 잘 봤다고 생각했던지라 기대하고 있었던 날이었다. 토익점수를 잘 받기 위해 영어공부를 한 적은 몇년전 입대직전 몇달밖에 없지만, 영어를 잘하면 당연히 토익도 잘 나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토익 점수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때는 실망을 많이 했었다. 일단 이번에는, 목표점수에 도달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놀라운 성과다.
들어갈때와 나올때 마음이 다른게 사람이라던가. 물론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기회에서 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신경쓰는 게 듣기인데, LC가 작년 9월과 똑같다.
여하튼 이번 결과에는 만족. 적어도 목표로 삼았던, 회사에서 제공하는 '향상 보너스(?)'는 받을 수 있을만한 점수이기 때문이다. 거북이 걸음처럼 더디게나마 한걸음씩 올라가고 있다. 끝까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