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피아노의 숲, 코지마 마사유키
retriever
2008. 2. 16. 13:15

스포일링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바람
재미있게 본 전형적이면서 따뜻한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피아노 집안에서 태어난 어린 소년이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가서 천재 피아노소년을 만나 우정을 쌓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내용의 애니다. 숲속의 피아노라는 신비한 배경과 설정을 바탕으로, 그 비밀이 밝혀지고, 그 와중에서 스토리를 잘 버무려서 해피엔딩으로 잘 마무리해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고, 또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지만 그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실력이 좋은 노력형 인재와 태어날때부터 특유의 천재성과 감각을 타고난 선천적인 천재. 이 애니에서 노력형 인재로 등장하는 슈헤이는 시골소년 카이라에게서 천재성을 느끼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의 때문에 괴로워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음악을 즐기는 천재를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숙명 때문이기도 하다.
애니를 마무리짓는 결말 부분에서 슈헤이는 고향을 떠나며 독백한다. 그것은 곧 해피엔딩으로 애니를 마무리짖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카이라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평생 피아노를 싫어했을꺼야."
약간은 삐닥한 시선일 수도 있겠지만, 슈헤이는 평생 피아노는 싫어하지 않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피아노를 계속 친다면. 노력형 수재가 선천적인 천재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는지, 둘의 영역은 계급처럼 서로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는지... 그 해답을 찾기 쉽지 않겠지만, 애니에서 보여준 내용은 차이가 분명하다. 슈헤이는 평생 피아노에 매달려도, 카이라를 이겨내기가 어렵다는게 기본 전제다. 결국 슈헤이가 피아노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카이라를 만나지 않았다면, 곧 '노력의 곧 모든 결과의 산물'이라는 보다 더 '자기애'에 긍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튼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아직 천재적인 예술가를 현실에서 사귀어 본 경험이 전무한 터라, 진정 영화나 애니에서 보여지는 그 천재성이 우리 현실에 존재하는지, 그래서 예술과 같은 영역은 진정 '선천적 천재들만의 영역'인지에 대한 판단도 유보적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