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박경리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렸을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다짐은 항상 어떤 이유도 없이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흥미'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공부'하는 것과는 다른 일인데, 책임을 느끼다 보니 그것이 저절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 정점에 있었던 책이 바로 '토지'이다.
독서라는 것은 가끔 주어진 자유시간을 투자해서 힘겹게 얻을 수 있는, 일면 '기회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토지'는 많은 기회비용을 들이고 얻은 값진 수확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흥미와 재미보다도 우리나라 대하소설의 최고봉에 있는 작품이라는 이유로 마냥 붙잡고 있었다.
토지를 다 읽어서 굉장히 뿌듯한 마음이지만, 더불어 스스로가 일면 대견스러운 면도 있지만, 고등학교때 보았던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에서 받은 감동과 희열은 없다는 것이 다소 안타까운 점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 집중해서 책에 몰입하지 못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작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책의 내용을 잘 흡수하는 성실한 독자가 아닌 책의 스토리와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을라 치면 바로 토라져버리는 변덕스러운 독자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냥 좋은 작품이었고, 읽고 나니 괜찮으며, 박경리라는 작가분이 참 대단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언정. 읽고 있을때는 지루할 때도 많았고, 특히나 스토리의 전개 면에서 작가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표현이 너무 어려워서 작중 화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십중팔구 '지루한 독서'로 이어졌고, 더디게 진도가 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불성실하고, 위대한 작가의 문학적 소양을 충분히 이해해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독자로 규정짓고, 훗날 역작 '토지'를 다시한번 독파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물론 가까운 시일은 아니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그날, 난 토지 전권을 구입하고, 소장하며, 다시 읽고 그리곤, '토지의 위대함'에 대해서 여기저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다닐 것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리랑과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의 감동이 그 당시의 몇배로 부풀어져 있는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하달까.
토지를 읽고 참 하고싶은 말이 많을줄 알았는데, 그냥 담담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홀가분하고 마음에 먹었던 다른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반갑다.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지만, 책읽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더불어 분야와 장르도 좀 확대해 나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