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하루...
회사에서 할일이 분명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름 부담이 되었던 월요일이 잘 흘러갔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염려하지는 않았지만, 하루의 일정이 정해진채로 회사를 출근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시간'의 측면에서 보자면, 아까운 시간을 그냥 날려버린 면이 없지 않은 하루였지만, 특히나 시간이 가지 않는 월요일인데 짧은 하루를 보낸 점에서는 만족한다.
주말에 군대 선임이었던 친한 동생 녀석에게 영어 작문과 관련해서 도움을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성실하고 능력이 있어 언제나 믿을만한 녀석이다. 그래서 기꺼이 나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부탁을 했고, 결과적으로 그 믿음에 보란듯이 부응해주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도움만으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는 자세는 문제가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 또는 상황에 따라서 가까운 지인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서로 충분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물론 그 녀석이 내 부탁을 기쁜 마음으로 받았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난 그 결과물에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유독 부끄러워하거나, 자존심을 상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떤 면에서건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도움에 감사하고 또 보답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일은 그다지 어려워야 할 일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문득 저녁을 먹다가 녀석과 내가 하는 대화가 너무도 가볍다는 생각에 그 시간이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스개소리로 그 친구는 늘상 나랑 이야기하다보면 자신의 수준까지 낮아진다고 말한다. 하하, 물론 나는 그 말에 대해서 개미의 눈꼽만치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 수준이라는게 화제만 달라졌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들의 대화에서는 '수준'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
녀석은 상상도 못했겠지만, 그래서 나는 역사에 능통한 그에게 '정조 시대의 홍국영과 정후겸'에 대해서 물었다. 그 질문이 우리의 대화를 한층 격조(?)높은 것으로 만들어주리라는 믿음으로. 결과적으로, 나의 믿음은 틀렸다. 물론 그 질문을 통해 나는 홍국영과 정후겸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조금 알게 되긴 했지만, 그것으로 우리 두사람의 대화 수준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화엔 '수준'이 어울리지 않는다. 서로가 그렇게 엮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서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그저 마음편하게 말못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낄낄'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난 평생동안 우리의 '낄낄댐'이 유지되기를 바라지만, 언젠가 서로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힘에 겨울때가 되면 지금의 '낄낄댐'이 문득 그리워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음껏 즐기는 수밖에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