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좁은문, 앙드레 지드

retriever 2010. 1. 20. 21:26
서점 안을 거닐다 보면 아무리 두께가 얇은 책이라도 고전에서는 왠지 그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톨스토이의 '부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등등. 문학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과 애정을 차지하더라도, 이 정도 고전의 저자와 제목은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게 되었다. '고전문학'이라고 해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랜 인고의 세월을 감내한 '老松'을 바라볼때의 경건한 마음처럼, 마주할때 특별한 감정이 존재한다.
 
알리사와 제롬이 두 주인공이다. 생을 깊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라면(그 중엔 '현재의 나'도 포함된다.) 소설 속 알리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거니와 소설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알리사는 현실에서의 사랑을 거부하고 '영혼의 합일'을 꿈꾸는 금욕주의자이다. 자신의 바램과 욕심을 짖누르고, 외면함으로써 진정한 '일탈'의 경지 또는 '영혼의 성숙'을 꿈꾼다.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엇갈림, 그 중에서도 '제롬을 향한 애정'이 언제나 그녀를 괴롭힌다. 늘 그녀의 주위엔 슬픔과 우울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으며, 끈기있게 그녀의 사랑을 기다리는 '제롬'이 있다.
 
종종 알리사와 같은 '현실 거부와 도피'는 완전성을 꿈꾸는 '높은 이상'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덕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가 반대의 결과를 낳는 것, 본의아니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실핏줄처럼 여린 감성의 소유자들에게 '세상의 불완전성'은 때때로 '거룩한 자기 희생'을 부른다. 순수함에서 시작했을 알리사의 '마음'은 현실에서의 여러 엇갈림에 좌절한 채, 스스로 지어 만든 번민과 고뇌의 감옥에 갇혀버린 셈이다. 

비로소 실타래가 풀어졌을때 알리사는 '이미 늦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오랜시간을 걸쳐 쌓아올린 '금욕의 성'이 그녀에게 '새로운 영혼의 길'을 안내한 셈이다. 때론 누군가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만 같은, 묵묵히 주어진 길만 걸어가는게 전부인 듯한, 얄궂은 운명이다.

나의 엉터리 결론은 이렇다. 저자인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허무주의의 늪에 빠진 금욕주의'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길이 있고, 그것만으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 '알리사'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할 날이 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