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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retriever 2009. 10. 4. 21:07
'지구촌'이라는 말로 포장된 '세계화'는 과연 인류에게 행복한 변화일까,

각종 TV화면이나 잡지를 통해 '함께하는 지구촌'을 자주 보여준다. 아프리카나 오지에서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인종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섞여서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들, 우리들이 바라는 행복이 마치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소말리아에 사는 흑인 남자 어린이, 비록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있지만 해맑게 웃고 있다. 빈곤하지만 조만간 문명화된 사회로부터 문화와 기술이 보급되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지구촌'이라는 말은 오히려 반가운 느낌마저 든다. 전쟁과 잦은 분쟁으로 피와 고통으로 얼룩져있는 인류의 근현대 역사에 종언을 고하고, 화해와 상생, 협력으로 나아가는 장미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도 같다. '지구촌'이라는 말 주위에는 '따뜻한 기운' 감돌고, '세계화'라는 말에는 진취적 기상이 베어 나온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의 생활을 보다 윤택해졌지만, 현대인들은 많은 정신적 질병을 호소하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에 비해 정신적으로 매우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나누어 쓰기 바쁘고,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행복은 '남들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도 마음을 여유를 찾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류의 숙명'인 것 같기도 하고, '삶의 전제' 같기도 하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티베트 옆 라다크 지방에서 오래도록 살면서 그 문화와 삶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그 독특한 문화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지의 눈에 비친 모습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모두가 웃고 사랑하며 아껴주는 것으로,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그토록 바라는 삶이다. 서구의 물질문명이 조금씩 그들의 삶의 터전을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돈'의 노예가 되고 '경쟁' 속에서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과거에도 빈부의 격차는 존재했었지만, '화폐'의 발생으로 인해 그 격차는 가속화되었고, 구성원 모두가 그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를 받아 삶이 피폐해지는 것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호지는 그 해결책으로 '지역 경제'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화'는 그릇된 것이니 여기서 당장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 우리의 '인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운데서부터 밖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유통되는 경제시스템이 아니라 공동체별로 그 문화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경제정책이 추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호지의 말처럼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안쓰럽다. 이런저런  사회경제적 제약과 강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배부를 줄 몰라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갈수록 많은 '현대판 노예'를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호지'의 주장이 비록 인간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고는 하나 '과거로의 회귀'를 일정부분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공동체의 크기'이다. 공동체가 점점 커져서 지금은 전 지구를 하나로 묶게 되었고, 그 사이에 인구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지구촌'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호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경우든 인류가 위기 의식을 느끼는 순간 인류는 방향을 틀어 행진할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빈곤'이 덜했다고는 하나 '기회의 평등'을 잃고 '체념'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던 과거의 유산은 분명 떨쳐버려야 한다. '흙탕물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했던가, 적절한 인용일지 모르지만, 더 많은 길을 앞에 두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혔다는 점에서 분명 인류의 역사는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경쟁'을 인정하되,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는 보장받고 존중받아야 한다. 어찌보면 돈을 어떻게 모으고, 분배하고, 쓰는 것을 고민하는 것에 앞서 인간 상호간의 '룰', 집단간의 '암묵적 규약'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