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빨강머링 앤, 루시모드 몽고메리

retriever 2009. 7. 16. 13:12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빨강머리를 가진 소녀. 그 재잘거림이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예비군 훈련 때 읽을 요량으로 작은 포켓북을 샀다. 애니메이션으로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지만, 내용은 가물가물하고 그 성우분의 목소리만이 잊혀지지 않고 기억속에 항상 살아있다. 애니메이션 역시 실제 소설을 별다른 각색 없이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성장과정을 크게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된 앤으로 그리고 있다. 최근에 더 어린 시절의 앤을 그린 소설과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 잠깐 맛을 봤는데, 영 어색한게 적응이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왠지 분위기가 다른 느낌을 준다.
 

기억에 많이 남으면서 공감할 수 잇는 파트는 바로 초록색 지붕집에 살 때의 앤이다. 빨강머리 앤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것은 바로 '순수에의 동경'이기 때문이다. 현실 때문에 솔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엉뚱한 상상을 감히 꺼내보지 못하는 우리들은 앤의 솔직함과 천진난만함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진난만 소녀에서 앤은 지정과 미모, 리더쉽을 겸비한 숙녀로 성장해 나간다.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는 같이 살고 있긴 하지만 남매관계로, 아이가 없이 혼자사는 사람들이다. 앤은 불우하게도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다. 외로운 사람들이 만나서 불완전하지만 하나의 가족을 형성하게 된다. 같이 지내면서 정이 들게 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마음 가득 품고 살게 된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어한다.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테고, 아이에게 온갖 애정을 쏟기도 한다. 아이에게 삶의 초점을 맞추는 셈이다. 

아이를 낳아서 키울 능력이 없는데도 무조건 아이를 낳는 사람들도 많다. 국가에서도 영아 충생률이 낮아져서 고민이 많고, 여러모로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마음놓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진 않는다. 적절한 보육시설이나 교육비 절감과 같은 대책이 없는 채로 빈부의 격차만 심해지고 있다. 충분한 배움의 기회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노력 또는 능력과는 별개로 그저 '사회의 구성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힘겹고 어려운 삶 속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가족애'와 '성취감'이 삶의 진수라고 이야기한다. 

매튜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는 집안일을 거들 남자 아이를 원했다.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준다는 의미보다 현실적으로, 감정적으로 결속할 수 있는 아이를 찾았다. 아이없이 살아온 삶이지만, 두 사람은 앤에게 여러 뒷바라지를 잘했고, 실제로 세 사람은 가족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강아지와도 정이 들면, 가족처럼 생각한다. 또한 낳아준 어머니, 길러준 어머니, 이렇게 구별을 많이 한다. 나중에 낳아준 부모를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지고 결국엔 감정적으로 기울게 되고, 뭐 그런 스토리랄까. 보통 핏줄은 속일 수 없다는 말로 드라마와 방송 매체에서 혈연의 결속력을 강조할 필요까 싶다. 우리 사회가 좀더 아름다워지기 위해선, 가족 중심주의, 혈연주의와 같은 해묵은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