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불안, 알랭 드 보통

retriever 2009. 8. 17. 08:51
사랑의 심리학과 철학을 절묘하게 조합한 알랭 드 보통의 두편의 책을 읽은 바가 있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사랑일까. 앞서 두권의 책에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아 또다시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번엔 사랑이 아니었다. 사회가 발전해감에 따라 오히려 가중되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사회적, 심리적 관점에서 관찰했다. 전체적으로 공감가는 내용들도 많이 있었지만, 사랑을 주제로 담은 책들보다는 색다른 면이 별로 없어 다소 지루함도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분히 '개인적'인 면이 적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는 보통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철학과 심리학에서 찾는다. 단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질문에 대해 독특하지만 일면 일리있는 관점의 해답을 제시하면, 나머지 선택의 몫은 독자 및 행위자에게 있다. 자고로, 인류의 역사를 털어봐도 '왜?'라는 질문만큼 쉬운 것도 없다. 그 원인의 분석은 각양각색이고, 또 수학처럼 명확한 정답을 소유한 것도 아니기에 누구나가 그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그에 아주 적격인 먹이감이다. 

하지만 아무리 심리학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이슈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원인의 분석에서 더 나아가 해결책에 대한 고민도 병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대에 따라, 또 문화에 따라 사람들이 '불안'한 심리를 갖게 되는 이유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자신의 일은 아니라는 듯이 멀리 떨어져서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치열하게 해부하고 또 치료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에 옳고 그르다는 분별은 모두 틀린 것이며, 그것은 시대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들의 미래를 품 안에서 내어 놓고 그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튀어가는지 지켜볼 뿐이다. 예를 들면, '평등'의 개념에 대한 가치 판단을 제쳐주고, 단지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사조의 등장으로 인간의 불안은 가중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뿐이다. '평등'의 당위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기 때문에 질문은 언제나 '어떻게'가 아닌 '왜'에 그칠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불안'해 하는 사람들은 에리히 프롬이 제시하는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톱니바퀴의 톱니가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그것은 곧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말하는 '지위'의 상실을 의미한다. '지위'가 상실되면 '대접'받지 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불안'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게 너무도 당연한 듯이 교육받고, 또 길들여진다. 우리가 좀 더 '우리만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가 재단하는 '지위'에서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더 불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흔히 과거에는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고민해야 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 때문에 현대인들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어쩌면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개인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산다고 해도 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더불어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부분들은, 여러 가지 법과 제도를 통해서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 도덕과 규범을 통해서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라는 말은 모호할 뿐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서 어느 시대에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했다고 단정지을 순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끊임없이 그 선택을 거듭하되, 법과 제도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욕구'를 조율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