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라는 명제
'세상을 등지고 어느 산골에 가서 남 몰래 두 사람이 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한 남자와 한 여자로서, 민족이라는 굴레 같은 것 벗어던져 버리고 계급이라는 그따위 남의 일 관여치 않고... 민족이란 도시 무엇인가. 이것에는 다분히 허식이 있다. 자애(自愛)하는 이기심도 분명히 있다. 침해하는 쪽이나 침해당하는 쪽이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지? 민족이란... 결국 필요해 의해 흩어지지 않고 모인 집단, 무리를 짓는 동물과 같이 생존을 위한 집단이 아닌가. 다만 좀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간은 본능을 사랑이라 하고 진실이라고도 한다. 이런 불안정한 인간집단을 수용한 집단은 조국이라는 말뚝을 박아놓고 한 핏줄이라는 끈으로 묶어놓고 일방통행을 한다.
조국! 핏줄! 그것은 절대적인 것인가? 항구불멸의 것으로 이탈하면 안되는 것인가? 생존을 위한 공동체, 그것은 과연 공동체였던가? 민족을, 국가를, 그리고 소수를 위해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들 밑깔개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일본에 대하여 민족적인 분노를 느낀 것은 그것은 감정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그것처럼. 거의 이성은 아니다. 그러나 저 여자의 경우 감정보다 이성이 더 강한 것 같다. 만일 동족끼리 불륜으로 사생아를 낳았더라면 저 여자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그는 수모를 감내하면서 아이를 길렀을 거야. 버리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았을거야.
남자와 여자, 그리고 태어날 또 하나의 생명. 이들의 결합을 저해하는 것은 지금 민족이라는 명제다. 큰 것은 항상 작은 것을 말살하고 먹어치운다. 이 정당성, 논리는 끝이 없는 것일까? 끝이 없는 것이다. 끝이 없는...'
찬하는 담배를 붙여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