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민들레처럼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12. 9. 12:27

이모집에서 있을때, 작은 누나 방에서 우연히 찾은 카세트테잎 속에 이 노래가 들어있었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흥얼거리긴 했지만, 이 노래를 부를 입장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활발했던 학생운동의 종말을 고하는 그 마지막 세대에 대학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나약한 자아를 탓하며 행동하는 양심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자의든 타의든 내 역할을 없었다. 스스로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그 어떤 용기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갑자기 용감해지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그저 묵묵히... 천천히... 지금의 나는 그렇다.

성경의 '노아의 홍수'로부터 전설이 내려오는 민들레는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꽃인데, 그 전설 덕분에 낮에는 꽃을 피워 하늘을 우러러보고, 밤에는 오므라드는 것을 빗대어 그 꽃말처럼 하늘에 감사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모진 겨울바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나 다음 봄에 또 꽃을 피우기 때문에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지 못한 내가 어떤 뚜렷한 방향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지만, 이미 그러는 사이에 사회에 발을 디디었고, 조금씩 나아가면서 곧 그 방향을 찾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본다. 아직 풋내기 신입직원인 나에게 방향을 주시고자 하는 고마운 말씀을 들었다. 스스로가 아쉬운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여기서 굳이 끝까지 가고자 한다면 그 길이 가깝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는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박노해 <민들레처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