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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 선생님의 편지, 남쪽으로 튀어 중에서

retriever 2007. 5. 20. 18:30

우에하라 지로에게.

안녕, 잘 지내니?

가족이 모두 오키나아로 이주하셨다더구나.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선생님은 놀랐단다. 이별 모임도 열어주지 못하고, 미안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모두 아쉬워하고 있어.

그쪽 생활은 어떠니? 선생님도 학생 때 오키나와에 가본 적이 있는데, 투명한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또 가보고 싶어, 선생님도. 그때는 꼭 이리오모테 섬에도 갈게.

선생님은 지로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있단다. 수학여행때 납부금에 관한 문제야. 언젠가 지로 아버님께서 지나치게 비싸다는 항의를 하셨을때, 선생님은 수학여행은 일반 패키지여행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어. 그리고 지로에게 그 일로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시는 건 삼가해달라는 얘기도 했었지.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선생님도 그 비용에 대해서는 내심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다른 선생님도 분명 똑같은 생각이었을거야. 하지만 뭐랄까, 귀찮은 마음이 들어서 되도록 그 문제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선생님들이 출장을 가거나 할때, 그 여행사에 부탁하면 몹시 싼 가격으로 해주곤 했어. 휴가 때 개인적으로 여행을 갈 때도 정가보다 훨씬 싸게 해 주었고, 요컨대 그 보상으로 학생들의 소풍이나 수학여행 비용이 비싸게 매겨졌던거야. 이건 흔히 말하는 바로 그 유착(이 단어의 뜻은 사전을 찾아보렴)이야. 여행사와 학교가 뒤에서 손을 잡고 학부모에게서 이유 없는 돈을 거둬들인 거지. 이건 도쿄의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하고 있는 부정행위야.

그러니까 지로네 아버지께서 하셨던 항의는 옳은 것이었고, 학교에서는 그런 말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겁을 냈던거야. 교장선생님의 당황하는 모습은 보기가 딱할 정도였어. 그 뒤로 주위에 이래저래 알아봤는데, 교장 선생님은 이전에 공짜로 하와이 가족여행까지 했었대. 그러니 당황할만도 하겠지? (웃음)

학교와 지로네 아버지 사이에 끼었던 선생님은 그때는 적잖이 괴로웠지만, 지금은 어째서 지로와 한편이 되어주지 못했는지, 몹시 후회하고 있어. 선생님은 학생보다 직장을 먼저 생각했어. 그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지로에게 옳지 못한 말을 하고 말았어. 교감 선생님이나 학생주임에게서 어떻게 좀 해보라는 재촉을 받고는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단다. 정말로 미안하다. 이제라도 교장선생님에게 옳은 소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직 신참인 선생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구나. 선생님, 정말 한심하지? 이제 더 이상 우리반 친구들에게 선생님이랍시고 잘난 척 떠들수도 없어.

지로도 어른이 되면 잘 알겠지만, 어른의 세계에는 이런 사기가 아주 많단다. 선생님은 이 자리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로네 아버지처럼 정정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은 백만 명에 한 사람 정도일거야.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다고 생각해. 조금 무섭긴 하지만. (웃음)

지로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때는 부디 올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서로 협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쁜 일에 협력해서는 아무 의미도 없겠지? 선생님도 앞으로는 조금씩 대항해볼거야. 우선 여행사에 미운 소리 한마디쯤 해줄까 생각하고 있단다.

너무 긴 편지라서 미안하다. 선생님은 나름대로 1년여 동안 지로와 잘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마지막에는 별로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단다.

자, 그럼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우리반 친구들에게 편지 보내줘. 안녕.  


                                                                                                                              미나미 아이코


지로는 잠시 편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가, 아버지가 옳았는가.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다'는건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가슴이 뭉클했다. 미나미 선생님이 사과를 해주셨다. 어른이 잘못을 인정해주었다....... 나카노를 떠나오기 전에 괴로웠던 학교에서의 기억이 단숨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