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스리기
자기방어기재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멍하니 아무 계획도 없이 스스로를 방치했을때,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기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어쩌다 로또를 바라는 마음처럼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 걸음씩 걸어나갈 생각을 해야 하지만, 그 걸음에는 분명한 '자기의지'가 동반되어야만 한다.
마음편하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자꾸만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 바로 오랫동안 스스로 형성시켜왔던 '자기방어 기재' 때문이리라. 그 형성의 시간이 꽤 길었던 만큼, 벗어나기도 쉽지가 않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감추려고만 했던 시간들을 벗어던지고,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리라는 결심에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스스로를 느끼고 있지만 아직은 그 변화의 폭이 꽤나 작은 것만 같다. 참으로 시간이 쌓아놓은 벽은 무섭고도 무섭다.
즐거운 일상이 사사로운 마음으로 자꾸 방해받는 것 같아, 모든 것이 귀찮다는 생각마저 든다.
회사 선배의 말처럼 10년 후를 바라보는 눈을 갖도록 하자. '사람을 보는 시각' 역시 의지하는대로, 또 원하는대도 달라질 수 있다. 맞다. 그말이 맞아. 조금이라도 달라지기 위해서 노력을 하자.
윤리와 도덕
연예인 박철과 옥소리가 이혼했다. 그 이혼의 사유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달전 토크쇼에 출연해서 두 분이서 했던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왠지 '이성친구'에 대한 서로의 시각차이가 분쟁의 소지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둘의 이혼에 대해서 내가 왈가왈부할 입장도 아니고, 또 실제로 그만큼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젯밤 늦은 저녁까지 친구와 그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핵심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기준'에 대한 것이다. 사회의 높은 윤리적, 도덕적 기준에 우리의 자유는 얼마만큼 침해를 당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사는 이 삶이 전부인가 아니면 나라는 존재는 그저 큰 집단 속의 구성원이자 유구한 역사 속에 시대가 요구하는 책임을 떠맡은 일원일까.
소설 '남쪽으로 튀어'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독특한 논리를 설파한다. 우리 시대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민주시민의 양성'이다. 곧, 그 사회에 가장 적합하고, 반항적이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내는데 그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런 목적에 동의하지 않는 소설속 주인공은 '공공교육'을 반대하면서 국가라는 큰 집단으로부터의 '개인의 독립'을 꿈꾼다. 어떻게 보면, 길들여진다고 해야할까.. 어쩌면 개인은 '누려야 할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저당잡히면서 사는 것은 아닐까.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