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이야기, 이성강

'천년여우 여우비'라는 작품을 제작했던 이성강 감독의 작품이자, 몇년 전에 개봉을 앞두고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없을때라 당시에는 작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파스텔톤의 영상이 동화책 같은 느낌을 주는 탓에 애니메이션을 보는 와중에 '그림이 참 예쁘다'라는 말을 몇번은 되내였던 것 같다. '천년여우 여우비'를 볼때의 그 느낌처럼, 영상만으로는 이미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조금도 뒤질 것이 없다는 것이 애니메이션 기술적 지식이 전무한 문외한으로서의 짧은 생각이다. 다만, '마리이야기'라는 작품이 '대중성'과 흥행을 어느정도 겨냥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면, 다소 초점을 잘못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감독의 생각은 먼 곳에 따로 있겠지만.
애니메이션 '헷지'가 그러하듯이 이 작품 역시 유명한 배우들이 성우 역할을 했다.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굳이 애니메이션 성우를 하는 것에 대해 홍보를 비롯해서 나름의 장점과 특색이 있겠지만, 난 달가워하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 속의 등장인물에 실제 배우들의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실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현실감이나 진지함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역으로 이야기했을때 그럼으로써 애니메이션 속의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 같다. 실제로 작품 속 안성기의 목소리로 더빙을 한 '아저씨'의 경우, 안성기의 목소리가 전혀 어울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실제 배우와도 그다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건 배종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라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자체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운 면이 있다.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깊이 들이킨다는 점에서 봤을때 '초속 5센티미터'를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을 추억한다는 것은 언제나 잔잔한 느낌을 주고, 때론 흑백영화처럼 음울하고 침전되는 영상을 느끼게 해준다. 이 작품의 영화 속 주인공 남우 역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꿈을 회상하고 추억하고 있다. 이미 어린 시절의 순수를 동경한다는 점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세월이 많이 흘러버린 것에 대한 무기력함 등의 마음들이 담겨져 있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침울하게만 느껴졌다. 어린 남우는 그다지 현실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아이로 느껴졌고, 왠지 밝고 명랑한 어린 아이들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분위기에 묻혀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어린 시절을 들추어내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흔히들 그렇듯이, 감독은 일기를 쓰듯이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대중과 대화를 해야만 한다. 달리 말하면, 대중이 관심을 갖는 보편적인 부분과 자신만의 주관적인 부분을 조화시킬 수 있는 면이 필요하다. 결국 혼자서 독백하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면, 조금은 더 보편성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