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느림의 미학
retriever
2009. 9. 4. 00:29
문득 연필을 발견했더니, 연필심이 뾰족하지 않아 깎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을 들어 어렸을때처럼 연필을 깎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 점심시간에 틈을 내어 연필 한다스와 칼, 그리고 지우개를 샀다. 당분간은 연필에 빠져 살지 않을까 싶다.
어렸을때 연필을 예쁘게 깎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었다. 연필심을 뾰족하게만 만들면 그만이었지만, 위에서부터 둥그렇게 이어지면서 연필심까지 가지런한 모양새를 만드는 것도 꽤나 중요했다. 오히려 연필심보다는 그 일에 꽤나 심혈을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마치 조각가라도 된 것처럼.
처음엔 다들 연필을 깎아서 썼지만 나중에 연필깎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제 심혈을 기울여서 모양새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연필깎이를 한번 거치면 좌우 대칭이 완벽하고, 아주 예쁜 모양새를 가진 연필이 된다. 경쾌하게 연필이 깎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일종의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연필깎이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샤프의 등장으로 연필을 설 자리를 잃어갔다. 조금만 쓰면 금방 뭉툭해지는 연필과 달리 샤프의 심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만큼 가늘게 유지되기 때문에 연필을 자주 깎아야 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샤프는 편리한 필기구임에는 분명하지만, 샤프의 등장으로 우리는 '연필 깎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연필 깎는 시간'은 단지 연필심을 가늘게 하고, 연필의 모양새를 다시 다듬는 시간이긴 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즐겼었다. 문명의 이기로 편리해진 우리의 삶은 우리들에게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 빠른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것은 무조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비웃는다. 돌아가기에 좀더 더딜 수는 있지만, 새로운 길에서 또다른 경치를 즐기고, 몰랐던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는데.
연필이 느림이라면, 샤프는 빠름이다. 0과1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의 삭막함을 피해 아날로그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잠시 우리를 옥죄어오는 빠른 길을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나는 그렇게 연필을 들었다.
어렸을때 연필을 예쁘게 깎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었다. 연필심을 뾰족하게만 만들면 그만이었지만, 위에서부터 둥그렇게 이어지면서 연필심까지 가지런한 모양새를 만드는 것도 꽤나 중요했다. 오히려 연필심보다는 그 일에 꽤나 심혈을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마치 조각가라도 된 것처럼.
처음엔 다들 연필을 깎아서 썼지만 나중에 연필깎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제 심혈을 기울여서 모양새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연필깎이를 한번 거치면 좌우 대칭이 완벽하고, 아주 예쁜 모양새를 가진 연필이 된다. 경쾌하게 연필이 깎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일종의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연필깎이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샤프의 등장으로 연필을 설 자리를 잃어갔다. 조금만 쓰면 금방 뭉툭해지는 연필과 달리 샤프의 심은 항상 우리가 원하는만큼 가늘게 유지되기 때문에 연필을 자주 깎아야 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샤프는 편리한 필기구임에는 분명하지만, 샤프의 등장으로 우리는 '연필 깎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연필 깎는 시간'은 단지 연필심을 가늘게 하고, 연필의 모양새를 다시 다듬는 시간이긴 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즐겼었다. 문명의 이기로 편리해진 우리의 삶은 우리들에게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 빠른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것은 무조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비웃는다. 돌아가기에 좀더 더딜 수는 있지만, 새로운 길에서 또다른 경치를 즐기고, 몰랐던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는데.
연필이 느림이라면, 샤프는 빠름이다. 0과1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의 삭막함을 피해 아날로그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잠시 우리를 옥죄어오는 빠른 길을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나는 그렇게 연필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