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조제 마우로 데 바르콘셀로스

retriever 2010. 6. 6. 08:09
왠지 모르게 '수레바퀴 밑에서'라는 책이 생각나게 한다. 물론 두 소설의 내용은 꽤 거리가 있지만 둘의 내용을 헷갈려 했던 개인적인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왜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라고 묻는 저자의 후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철든 아이들' 테마를 가진 책들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 아이들의 시각 속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삶의 이면들을 일찍이 경함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심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넓은 세상의 아주 작은 존재인 그 아이들은 아장아장 걸을때쯤의 아이들이 강아지와 과자를 나누어 먹는 류의 훈훈한 생각과 행동들을 드러내는 것 같다.

어제 상명이와 '감수성'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다는 말에 적잖이 실망한 모양인데, 글쎄.. 감수성은 그저 사람의 성격을 규정짓는 하나의 요소일뿐 인품과는 무관하다.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곧 냉혈한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감수성은 말그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흡수하느냐이다. '초속 5센티미터'라는 애니메이션을 두고 감수성이 풍부한 작품이라고 하는 이유는 스토리의 주제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지만 감독이 얼마나 풍부한 감수성을 지니면서 하나의 캐릭터, 또는 사물이나 대화에 그 감정을 삽입시키느냐도 중요하다.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면 실제 작품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가을밤에 거리를 걷다가 쓸쓸해보이는 낙옆 한잎과 함께 내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떨어졌다."

감수성이 풍부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의 감정도 풍부하게 담겨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각자 천차만별일 것이다. 실제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자와의 '감정적 공유'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사람으로서 역시 '감수성이 풍부하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이나 기쁨 같은 단순하고도 공통적임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새로울 일이 못된다. 남들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감정들을 공유할때라야만 비로소 '풍부'하다는 표현이 주어진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 아침 출근길, 버스 차창 너머로 노점상 리어커의 덮개를 치우고 장사준비를 하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울컥해졌다."

여러가지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버무려 다소 감수성이 느껴지는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매서운 바람에, 겨울 아침 추위에, 버스차창에, 리어커에 하나하나의 감정이 담겨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순수하고 따뜻하고 슬픈 소설이다. 읽을때마다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린다는 역자는 어떤 분일까. 단 한개의 작품으로 규정할 수 없는 일이긴 하나, 아마도 '낙옆 한잎'이나 '노점상할머니'에게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볼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제제가 가족들의 스트레스와 처지를 이해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실직자로서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지 못하는 아빠에게 철없는 말을 내뱉은 제제는 아버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다. 안타까우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뭉클한 대목이었다.

오랜만에 동심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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