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사람보다 낫다
89세의 할아버지와 86세의 할머니. 이들의 삶은 그들의 키우는 한 마리의 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단지 연관이 아니라 소가 없으면 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다. 그만큼 절대적인 동반자인 셈이다.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에게 소는 일생동안 할아버지의 다리가 되어준다. 나이들어 힘겨워하는 소의 모습과 소와 '동병상련'을 느끼며 나름의 불만을 토로하는 할머니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보았다.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에 주목한다. 서로에게 삶을 의지하는 모습에서 '인간 관계' 이상의 애틋함을 보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조금은 색다른 개인적인 소견을 내어놓다가 친구 내외에게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견해였다. 보통 우리가 '관계를 맺는다'고 함은 감정적인 교감이 빠질 수 없다. 동물이라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완견처럼 주인과 동물 사이에서 오고가는 '감정의 교류'가 있다. '영웅 삼국지'라는 책에서는 장수 '여포'와 적토마의 관계를 '교감'을 통해 다루었다.
영화 속 '할아버지'와 '소'는 어느 정도의 '감정적 교감'을 통해서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일까. 할아버지에겐 더없이 소가 필요하고, 소가 없는 삶은 상상을 못할 것이다. 소의 죽음은 할아버지에게도 큰 충격이자 '가슴 아픈' 일이었음이 틀림없고, 헐값을 소를 내다파느니 차라리 데리고 있겠다면서 우시장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이제 소의 관점과 할머니의 관점에서 영화를 다시 보자.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 역시 늙고 지쳤다. 움직이는 것도 더디고, 더욱이 농사일도 힘에 부친다. 소도 이제 그만 쉬고 싶었을지 모른다.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계속 불만을 토로하셔서 다소 희극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을 시종일관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 소를 향해서 '너나 나나 늙어서 무슨 고생이냐'고 '동류 의식'을 호소하는 그 말엔 진실이 담겨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꼬치꼬치 영화를 향해 캐물음 감이 없지 않지만.
영화와 관련해 소가 실제로 눈물을 흘리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흔히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눈빛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과의 거창한 '관계 설정'은 차치하고라도,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인간과 다름없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 한없이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작은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