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retriever
2008. 4. 9. 21:45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를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찍 깊숙히 늪으로 발을 옮겼다.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를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찍 깊숙히 늪으로 발을 옮겼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다. 총선 덕분에 지난주 휴가에 이어서 꿀맛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어제 저녁 이 시간쯤 군대에서 만난 후임 녀석으로부터 들은 이 시가 다시 떠오르는 밤이다. 어제 그 녀석은 '패배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사회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물론 나도 그에 동의했다.
패배주의. 문득 오늘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도 패배주의의 일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 추구하는 가치관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딴 곳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할때, 그것을 두고 '패배'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어떤 경기를 공명정대하게 치른 것이 아니고, 그저 내 생각이 그랬다는 것일지언정, 엄연히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기지 못했다는 의미로 달리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기력'과 '패배감'일 수밖에. 그리곤 타협의 손길이 매혹적으로 다가올 때, 쉽게 그 손길을 '무기력의 탈출구'쯤으로 반가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메이저리그를 좋아할 때였다. 뉴욕 양키스라는 팀은 당시 최강이었고, 또 마음만 먹으면 돈과 그 명성으로 어떤 선수든 데려올 수 있었고, 다시 강한 전력으로 월드시리즈의 문을 두드렸다. 난 조그만 도시를 프랜차이즈로 삼고 있는 가난한 팀,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선전하는 팀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번번히 거대한 벽, 양키스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처음엔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다가 점점 '아무리 용을 써도, 태생적인 차이를 극복해내지 못하는구나...'라는 패배감에 젖게 된다. 즐기려고 야구를 보는데, 왜 나는 야구를 보면서 답답할까...
그러다가 결국 양키스를 응원하려고 마음먹어 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강한 팀이었고, 팬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안겨줄 수 있었기에 그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야구를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그저 스포츠를 즐기는 한 야구팬으로서 느꼈던 감정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 야구를 보는 것은 책임이 아니며 선택이고, 그저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넓게 분류할 수 있다. 정치와 사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터전의 많은 일들을 좌우하게 되는 아주 근본적인 것들이다. 가끔은 민주주의 사회의 다수가 선택하는 그 주류에 머무르지 못함이 새삼 안타깝게도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을 한다고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패배감.
그리고... 젊은이들의 보수화. 보수와 진보가 어떤 의미이며, 정녕 젊은 이들에게 그 이념이 중요한 것일까 라는 반문이 고개를 들지만, 안타까운 생각부터 든다. 보수와 진보의 의미를 모를수록 오히려 더 '나는 진보다'라고 외치는 것이 젊음의 피 아니였을까. 마치 우리나라에서 어느 회사가 제일 좋은 회사인가라고 물을때 '삼성전자'라고 인기투표를 하듯이 정당투표를 하는 것만 같다.
뭐 어쩌겠는가, 민주주의의 선택이 그렇다는 것을. 왠지 낯선 마음이 든다.
그와 별개로, 참 똑똑하고 영리한 녀석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가웠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탁상공론일망정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반갑고 즐거운 일인가. 위의 시도 그렇지만, 만날때마다 그 녀석에게도 많은 것을 배운다. 짐짓 어린 아이들의 서로 어른인 척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우리들의 대화는 참 길게도 이어졌다.
좀처럼 상대방을 칭찬하는 거짓말을 꾸며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정말 진심된 마음으로 그 녀석을 높게 평가한다. 무엇보다 그 똑똑함과 성실함 때문에, 나중에 크게 될 수 있는 재목이라고.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우리는 시청역 지하철 갈림길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다. 총선 덕분에 지난주 휴가에 이어서 꿀맛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어제 저녁 이 시간쯤 군대에서 만난 후임 녀석으로부터 들은 이 시가 다시 떠오르는 밤이다. 어제 그 녀석은 '패배주의가 만연한' 지금의 사회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물론 나도 그에 동의했다.
패배주의. 문득 오늘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도 패배주의의 일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 추구하는 가치관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딴 곳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할때, 그것을 두고 '패배'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록 어떤 경기를 공명정대하게 치른 것이 아니고, 그저 내 생각이 그랬다는 것일지언정, 엄연히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기지 못했다는 의미로 달리 해석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것은 '무기력'과 '패배감'일 수밖에. 그리곤 타협의 손길이 매혹적으로 다가올 때, 쉽게 그 손길을 '무기력의 탈출구'쯤으로 반가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메이저리그를 좋아할 때였다. 뉴욕 양키스라는 팀은 당시 최강이었고, 또 마음만 먹으면 돈과 그 명성으로 어떤 선수든 데려올 수 있었고, 다시 강한 전력으로 월드시리즈의 문을 두드렸다. 난 조그만 도시를 프랜차이즈로 삼고 있는 가난한 팀,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선전하는 팀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번번히 거대한 벽, 양키스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처음엔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다가 점점 '아무리 용을 써도, 태생적인 차이를 극복해내지 못하는구나...'라는 패배감에 젖게 된다. 즐기려고 야구를 보는데, 왜 나는 야구를 보면서 답답할까...
그러다가 결국 양키스를 응원하려고 마음먹어 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강한 팀이었고, 팬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안겨줄 수 있었기에 그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야구를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그저 스포츠를 즐기는 한 야구팬으로서 느꼈던 감정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 야구를 보는 것은 책임이 아니며 선택이고, 그저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넓게 분류할 수 있다. 정치와 사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터전의 많은 일들을 좌우하게 되는 아주 근본적인 것들이다. 가끔은 민주주의 사회의 다수가 선택하는 그 주류에 머무르지 못함이 새삼 안타깝게도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을 한다고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패배감.
그리고... 젊은이들의 보수화. 보수와 진보가 어떤 의미이며, 정녕 젊은 이들에게 그 이념이 중요한 것일까 라는 반문이 고개를 들지만, 안타까운 생각부터 든다. 보수와 진보의 의미를 모를수록 오히려 더 '나는 진보다'라고 외치는 것이 젊음의 피 아니였을까. 마치 우리나라에서 어느 회사가 제일 좋은 회사인가라고 물을때 '삼성전자'라고 인기투표를 하듯이 정당투표를 하는 것만 같다.
뭐 어쩌겠는가, 민주주의의 선택이 그렇다는 것을. 왠지 낯선 마음이 든다.
그와 별개로, 참 똑똑하고 영리한 녀석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가웠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탁상공론일망정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반갑고 즐거운 일인가. 위의 시도 그렇지만, 만날때마다 그 녀석에게도 많은 것을 배운다. 짐짓 어린 아이들의 서로 어른인 척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우리들의 대화는 참 길게도 이어졌다.
좀처럼 상대방을 칭찬하는 거짓말을 꾸며내지 못하는 나로서는 정말 진심된 마음으로 그 녀석을 높게 평가한다. 무엇보다 그 똑똑함과 성실함 때문에, 나중에 크게 될 수 있는 재목이라고.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우리는 시청역 지하철 갈림길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